하루는 불러주는 이 아무도 없던 오후, 늦은 점심 겸 이른 저녁을 먹으려고 츄리닝에 슬리퍼 차림으로 하숙집 앞 밥집을 찾아갔다. 오늘의 일용할 양식은 무엇으로 할까. 왕돈까스냐, 된장찌개냐, 혹은 김치볶음밥을 먹을 것이냐. 남들이 보기엔 별 것 아닐지 몰라도 배고픈 자의 입장에서는 중요한 문제였기에 심각한 내적 갈등에 빠졌다. 걸어가는 내내 자못 깊은 고민을 하다가 마침내 결정을 내리고서 밥집 문을 여는데,
안쪽 테이블에 익숙한 얼굴이 앉아있는 게 보였다. 3년 아래 후배인 L이었다. 익숙하다 했지만 실은 신입생 대면식 때 한번 보고는 거의 마주친 적 없었던 후배였다. 군대를 다녀와서 복학한 아저씨 따위들이 감히 낄 자리가 아니었는데, 파릇파릇한 새내기들과 한 번 놀아 보겠다는 괜한 욕망에 부풀어서 참석한 대면식. 그 자리에서 우리는 결국 새내기는커녕 매번 보는 복학생들끼리 모여 앉아 술이나 진탕 퍼먹었더랬다. 우리가 신입생이었을 때 그렇게나 꼴불견이라 욕했던 복학생들의 모습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우습고도 슬픈 꼴이었다.
L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아니, 알아봤지만 아는 척하기 싫어서 외면했을 수도 있다. 술김이라 기억도 가물가물한 첫인사를 나눈 뒤 아무 교류가 없던 선배와 무슨 대화를 이어 갈 수 있겠나. 주고받는 대화는 오롯이 메밀로만 만든 국숫가락처럼 툭툭 끊기고 어색한 침묵의 공기만이 둘 사이에 무겁게 가라앉았을 게다. 못 알아봐서 다행이다.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멀찌감치 떨어진 테이블에 앉았다. "여기 왕돈까스 하나요!"를 외치며 깊었던 고민의 결과물을 주문하고 음식이 나올 때까지 가게에서 틀어놓은 TV를 봤다. 이제는 종영했지만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던 프로그램 <도전! 골든벨>이 방송 중이었다.
골든벨에서는 으레 그렇듯이 중반부에 이르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탈락한다. 그날도 그랬다. 아직 10 몇 번대였는데 쉬운 문제였음에도 불구하고 절반이나 되는 학생들이 자신이 적은 오답에 머쓱해하며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정답을 맞히는 데 실패한 무리들이었다. 그 장면을 보고 있던 L이 갑자기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쟤들 진짜 한심하다. 저런 것도 몰라서 떨어지나?"
밥때가 아니기에 가게가 텅 비어 있어서 그런가. 그 한마디는 이상하리만치 소리가 컸고, 그걸 들은 나는 무언가 무거운 것에 머리를 얻어맞은 듯 멍해졌다. 너와 나, 우리는 사범대에서 공부하고 있는 교육학도들인데, 가르치고 함께해야 할 아이들을 그렇게 생각해도 되는 걸까. 고작 한심한 존재 따위라니.대상에 대한 애정까지는 강요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비아냥거리지는 말아야지.
비단 L 뿐만은 아니다. 우리 과의 선배, 동기, 후배들 중에서도 그 자리에 있었다면 똑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거다. 관악구에 있는 S대에 입학하려면 당연히 반에서 1, 2등 혹은 전교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만큼 공부를 잘했을 테니까. 문제의 정답을 맞히고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일에는 이골이 났고 살면서 '실패'라는 걸 거의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교과서에 나오는 기본적인 지식도 갖추지 못한 채 맥없이 탈락하는 학생들은 한심하게 보일 수밖에 없을 게다.
실패를 모르는 사람이 교사라는 업을 가져도 되는 걸까. 나는 가르치는 데 별 재주도 흥미도 없었기에 대충 수능 성적에 맞춰서 사범대에 입학했지만, 다른 몇몇 동기들은 장차 훌륭한 교사가 되겠다는 꿈이 있었다. 하지만 공부를 잘했던 본인들과는 달리 대부분의 학생들은 골든벨 10번대 문제에서 떨어지는데 이걸 이해할 수 있을까. 답답해 죽겠네, 너네 이런 것도 이해를 못해? 이러면서 한숨 쉬지나 않을까.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패와 좌절을 겪기 마련이고 그 상처를 극복하면서 예전보다 더 단단해지는 성숙의 과정을 거치는데, 내내 성공가도만 달린 사람에겐 그런 아픔이 이해 불가능한 것일 수도 있다. 아파보질 않았으니 남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스포츠계에서도 '스타 선수는 감독으로 성공하기 어렵다'는 속설이 있다.
그래서 그해 말 '놀랍게도' 임용고시에 떨어진 몇몇 동기들에게 위로랍시고 이런 말을 해줬다.
"너네는 한 번도 실패라는 걸 못 해 봤잖아? 시험 떨어진 걸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해. 나중에 아이들 가르치는 데 도움될 거야."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원망 어린 동기들의 매운 손이 내 등짝에 찰싹하고 와 닿았다. 누구도 낙오하지 않도록 모든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며 짐짓 교육자인 척하더니만, 정작 주변 사람들의 아픈 마음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내키는 대로 말을 내뱉은 자가 응당 치러야 할 대가였다.
갓 100일이 된 아이를 바라보면서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봤다. 이 아이도 자라면서 무수한 도전과 실패, 그리고 가끔의 성공을 경험하게 될 텐데.
아이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맞닥뜨린 실패는 '뒤집기'에서였다. 태어난 이후로 단 한 번도 원하는 것을 얻는 데 실패한 적 없던 아이. 배가 고프면 젖을 먹여주고, 속이 불편하면 트림을 시켜주고, 똥오줌을 싸면 기저귀를 갈아주고, 졸리다며 잠투정을 부리면 자장가를 부르며 재워주기까지 했다. 주변의 모두가 아이가 원하는 것을 그때마다 즉각적으로 충족시켜 줬다. 다들 아이의 표정, 숨소리와 울음소리, 동작 하나하나에 벌벌 기었으니 상전도 이런 상전이 없었다. 하지만 이 집에서 전지전능하신 녀석의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최초로 등장했으니 그게 바로 몸을 뒤집는 거였다.
태어난 지 정확하게 54일째 되는 날, 이른바 '터미타임(Tummy Time)'의 때가 왔다. '배(Tummy)'로 엎드린 '시간(Time)'이라는 낯선 명칭의 시기였다. 신생아들은 태어난 후 내내 누워만 있었는데 이제는 다음 발달을 위해서 목 근육을 발달시켜야 한다. 처음부터 목을 가누지는 못하니까 배를 엎드린 자세에서 몸을 들어 올리며 조금씩 연습시키는 거다. 이를 거듭할수록 점차 목에 힘이 생기고 나중에는 스스로의 힘으로 머리를 꼿꼿하게 세우게 되는데 그제야 연습이 끝나게 된다.
그동안은 목을 가누질 못하는 아이를 안을 때마다 힘들었다. 한 손은 아이의 엉덩이 밑을 받치고 다른 손은 반드시 머리를 조심스레 잡아줘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연약한 갓난아기의 목은 휘청거리면서 당장이라도 꺾일 듯 불안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째가 될 무렵, 품에 안고 있는 아이가 스스로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기도 하고 본인의 목주름을 자랑이라도 하듯 목을 한껏 뒤로 젖히고서 꼿꼿하게 버티는 게 아닌가. 굳이 목을 지탱해주지 않아도 됐다.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드디어 때가 됐나 싶어서 기대감에 부푼 채 아이를 엎드리게 했다. 그랬더니 고개를 번쩍 든다.
"와아-! 우리 진이는 체육 영재인가 보다. 벌써 고개를 가누네."
하지만 기쁜 마음도 잠시. 몇 분 지나지 않아 입에서 왈칵 먹은 걸 게워내는 아이. 첫 번째 터미 타임은 소파 커버와 아기 옷과 가제수건이 허연 토사물로 뒤범벅된 채로 끝나 버리고 말았다. 분유를 먹인 지 얼마 안 돼서 시도했던 게 화근이었다. 아이가 충분히 소화를 시키고 난 후에 연습을 시켜야 한다는 걸 그땐 몰랐었다.
기쁨과 눈물이 공존했던 절반의 성공이었지만 이에 고무된 걸까. 아이는 그날 이후부터 가만히 누워있질 못했다. 눕혀 놓으면 팔다리를 계속해서 버둥거리다가 제 스스로 몸을 옆으로 굴려 뒤집기를 시도했다. 하지만 평생을 누워서 지내다가 갑자기 엎드리는 삶을 산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얼굴이 시뻘게질 정도로 용을 쓰며 몸을 돌리는데도 뒤집기는 무리였다. 한 번, 두 번, 세 번 낑낑대면서 시도해 봤지만 무거운 머리와 여린 몸뚱이는 말을 듣지 않는다. 아무리 애써봤자 고작 옆으로 눕는 정도밖에. 처음으로 접한 실패의 높은 벽 앞에 아이는 으앙- 하고 통곡을 터뜨리고야 만다.그 광경을곁에서 지켜보며 고민에 빠졌다. 매번 머리를 들어줬다간 부모에게 의존하게 될까 봐 쉽사리 도와줄 수 없었다. 그렇다고 거듭된 실패로 인해 무력감이 몸에 배이면 안 되니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기도 했다. 열 번의 시도 중 적당히 두세 번 정도, 적당한 힘으로 머리를 슬쩍 밀어주면 금방 뒤집기에 성공한다. 그나저나 요리도 육아도 인생에서도 '적당히'라는 말을 많이들 쓰는데, 이 표현이 얼마큼의 시행착오 끝에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인지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 생후 82일째 되는 날, 마침내 우리의 도움 없이 아이 혼자서 뒤집기에 성공했다. 단순히 몸을 뒤집는 한 발자국이지만 아이의 인생에 있어서는 큰 도약이 될 역사적인 순간. 한 번 성공하고 나니 다음부터는 어렵지 않았다. 시도 때도 없이 제 마음껏 뒤집는다. 잠시 한 눈을 팔았다가 아이를 쳐다보면 어느새 몸을 뒤집은 채 배시시 웃고 있다. 이제는 그저 뒤집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뒤집었다가 다시 똑바로 누웠다가 또 한 번 더 뒤집는 '2단 뒤집기'의 고난도 기술까지 선보인다. 그리고 이것 보라는 듯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는다. 아기 주제에 저런 표정 짓는 법은 대체 어디서 배운 걸까. 뒤집기뿐만 아니라 얼굴 연기까지 되니 기술 점수 10점, 예술 점수도 10점인 점수판을 들어주고 싶다. 내가 이런 팔불출 같은 말을 하게 될 줄 몰랐지만, 내 눈에는 우리 아이의 뒤집기가 김연아 선수의 트리플 러츠와 더블 악셀 콤보보다 더 아름다워 보인다.
뒤집기라는 과업에서 인생 처음으로 실패를 겪고, 끊임없는 시도 끝에 마침내 성공의 열매를 맛본 아이. 이걸 시작으로 남은 생애에서 앞으로 펼쳐질 수많은 시험의 막이 올랐다. 당장 앉는 것부터 시작해서 걸음마, 달리기, 킥보드와 두발 자전거 타기, 받아쓰기, 영어 말하기, 중간과 기말고사, 연애, 대입, 사회생활에 이르기까지... 해야 할 일들이 태산이고 앞길이 구만리다. 살아가면서 성공만을 경험할 수는 없겠지만 아빠의 마음으로 욕심을 부린다면 '실패는 조금, 성공은 많이' 겪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늘 화창한 날만 이어질 순 없다. 종종 소나기나 장마가 찾아오는 것처럼 어쩔 수 없이 실패를 마주하는 때가 있겠지. 하지만 그럴 때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금방 툭툭 털고 일어나는 사람이 되길. 아이를 품에 안고서 귓가에 속삭여본다.
"네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때가 있더라도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하렴. 실패하더라도 다음에 성공하면 돼."
벌써부터 말귀를 알아들을 리 없건만 아이는 이해했다는 듯 까르르 웃으면서 내 등짝을 찰싹찰싹 때린다. 정말 체육 영재가 맞는 건가, 아기치곤 손이 제법 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