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있는 집의 봄과 여름날 풍경

오늘이 우리 삶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다

by 김돌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나긴 장마가 끝났다. 랜만에 보는 햇볕은 격조했던 친구를 다시 만난 양 반가웠다.


올해는 내내 비가 와서인지 제대로 된 여름을 느껴보지 못했다. 모름지기 여름이란 정수리가 따가울 만큼 콕콕 찔러대는 뜨거운 햇살로 가득해야 하건만 이 시기의 대부분을 차가운 빗방울만 맞으며 흘려보냈다. 연애할 때, 당시엔 여자친구였던 아내와 둘이서 함께했던 보라카이 여행이 떠오르는 날씨였다. 필 우기여서 그런지 해가 쨍하다가도 갑작스레 내리는 폭우에 온몸이 홀딱 젖곤 했다. 이곳 한국의 기후도 점점 더 동남아스러워진다더니, 정말로 여름 내내 고온다습한 것이 이젠 그 말을 가벼운 우스갯소리로 치부할 수 없게 됐다. 여름이라 이름 붙이기 어색한 지난 몇 주 동안 집에서는 하루 종일 에어컨의 제습 모드를 돌려댔다. 눈이 휘둥그레질 전기료 고지서보다는 몸을 축축 처지게 하는 눅함이 더 견디기 힘들어서였다.


장마가 끝나니 벌써 8월 말이다. 여름이 지배하는 시절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이른바 여름의 끝자락이다.


작년 이맘땐 계절 맞춤 선곡이라도 하듯 동명의 제목을 가진 김동률의 노래 '여름의 끝자락'을 자주 들었다. 아무 일 없는 한가로운 주말, 거실 소파에 누워서 음악을 듣고 있으면 처연한 감정에 흠뻑 빠져 바닥으로 가라앉는 듯했다. 그 바닥은 시리도록 차가워서 피서용으로도 썩 괜찮았다. 들으면서 생각했다. 이 사람은 뜨거운 여름과 같은 사랑의 열병을 앓고 난 후 이제는 흘러간 그때를 기억하며 담담하게 노래 부르는구나. 슬프지만 더 이상 슬프지 않은 체념의 정서 같은 게 느껴졌다. 아티스트 개인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김동률도 이소라도 영영 결혼, 혹은 사랑의 실을 맺지 못하고서 이런 노래들을 계속해서 불러줬으면 한다. 마음의 상처가 여물지 않고 늘 아파해야 이런 감성을 유지할 수 있을 테니까.


올해도 어김없이 김동률을 꺼내 들었는데 예전과는 뭇 느낌이 다르다. 감정을 느끼면서 듣는 게 아니라 기계적으로 멜로디만 흥얼거리 된다. 줌 남아있지 않던 마지막 감수성마저도 바닥나 버린 걸까. 실은 이제 김동률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래봤자 출퇴근길 운전하 동안의 30분 남짓, 집에 있을 땐 아이 때문에 가장 많이 듣는 게 '어린이용 동요'다. 갓 태어난 지 한두 달 정도였을 땐 오르골 자장가, 혹은 우는 아이를 재우느라 잠이 잘 오게 한다는 빗소리나 풀벌레소리 ASMR 따위를 들었다. 이제 100일을 넘긴 요즘에서야 겨우 라디오를 틀어놓고서 유행하는 가요나 팝송을 들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마저도 제대로 듣기 힘들다. 육아 인해 몸과 마음이 지친 와중에 음악에 감정을 느끼려고 애쓰는 건 사치스러운 일이다. 분명 퇴근길인데 집으로 다시 출근하는 것 같으니 도무지 쉴 틈이 없 감정의 소요에 쓸 힘도 남아있질 않다.


비단 듣는 것뿐만 아니라 작년과는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아이가 새로 들어온 집은 둘만 지내던 때와는 천양지차이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옛말이 있는데, 그 자리가 아기일 때는 통하지 않았다. 이 어린 것이 찌나 존재감이 큰지.


일단 근 후 집에 들어서자마자 비릿하면서 고소한 젖 내음이 코를 감싼다. 바로 아기 냄새다. 나를 보며 까르르 웃는 아이를 당장이라도 안아보고 싶지만 바깥에서 어떤 위험한 바이러스며 더러운 무언가를 묻혀왔을지 알 수 없다. 접촉을 삼가면서 손을 소독하고, 뱀이 허물을 벗듯 세탁기 앞에서 옷을 모두 벗어 넣고, 거품으로 몸을 박박 닦아가며 부리나케 샤워를 한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지만 이렇게까지 하지 않을 수 없는 코로나19 시대의 희한한 광경이다. 깨끗이 씻은 이후에야 비로소 아이를 안아도 보고, 조그마한 손가락 발가락도 만져보고, 나와는 달리 뒤통수가 납작하지 않고 아직까지 불룩한 예쁜 머리도 쓰다듬어 볼 수 있다. 그뿐이랴. 매일 저녁마다 온 집안을 쓸고 닦고 약을 뿌리면서 대청소도 한다. 예전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하던 걸 이제는 매일 하고 있다.


잠시 동안 한나절 이별의 회포를 풀고 나면 아이를 매트 위에 눕힌다. 아기체육관으로 관심을 돌리고서 우린 얼른 저녁을 먹는다. 예전에는 정성스레 만든 요리를 예쁜 그릇에 플레이팅하고 후식으로는 과일을 챙겨 먹고 기분 좋으면 맥주도 한 잔씩 했는데 이제는 언감생심, 가게에서 사 온 반찬들을 한 접시에 덜어놓은 채 냉동실에 얼려 둔 밥을 쾌속 해동시키고서 그걸 허겁지겁 입에 욱여넣기 바쁘다. 그나마도 끝까지 무사히 먹을 수 있으면 다행이지, 식사 도중에 아이가 울기라도 하면 잠깐의 눈치 싸움을 벌인 뒤 패배한 자는 아직 밥그릇을 비우지도 못했건만 식탁을 박차고 나가야 한다. 렇게 쫓기듯 밥을 먹으니 소화가 잘 안 돼서 소화제를 달고 살게 됐다.


대화와 발소리는 절로 조용해졌다. 누군가 리모컨으로 우리를 조종한다면 볼륨 (-) 버튼을 연달아 눌러대는 장면을 자주 보일 테다. 이가 졸리거나, 혹은 자고 있을 땐 행여 깨기라도 할까 봐 속닥거려야 한다. 저분을 놀라게 해선 안돼. 매번 귓가에 대고 속삭일 순 없으니 거리가 떨어져 있을 땐 입을 크고 정확하게 벌려 말하면서 상대방이 알아듣길 기대한다. 오래 전에 TV에서 하던 <가족오락관>의 한 코너인 '고요 속의 외침'을 매일같이 둘이서 고 있는 꼴이다. 잠투정으로 칭얼대는 아이를 간신히 재워 침대에 눕힌 뒤엔 최대한 살금살금 방을 빠져나온다. 슬로 모션으로 발꿈치를 들고서 조심스럽게. 실수로 뭔가를 탁 하고 떨어뜨리거나 방문이나 의자가 쿵 하는 소리가 나기라도 하면 정작 아이보다 우리가 더 깜짝 놀란 토끼눈이 돼서 마음을 졸인다. 설마 깬 건 아니겠지. 그럴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집을 예쁘게 꾸미는 걸 좋아하던 아내의 취향도 산산조각 났다. 아이가 뒤집기를 하고 앞으로 기어다니고 뛰어다니기도 할 커다란 매트를 어울리지 않지만 거실 바닥에 깔고, 장롱에 들어가지 않는 모빌이며 아기체육관이며 이런저런 장난감들이 집 안 여기저기에 쌓여가고, 커다란 유모차는 현관 한쪽을 차지하고 있어서 신발장을 열 때마다 번거로움을 유발하고, 책장 두어 칸은 벌써부터 물려받은 동화책과 그림책 따위로 빽빽해져서 우리 책들을 빼 버릴 수밖에 없었다. 아기 용품과 침대를 들이니 공간이 부족해서 데스크톱 PC와 책상도 버리고, 거실 티테이블도 버리고, 이런저런 기타 물건들은 당근마켓으로 불귀의 객이 되어 떠나갔다. 점점 아기 키우는 집이 되어간다. 아내는 이제 집 꾸미기 따위는 체념한 표정이다.


잠은 는 시간도 불규칙해졌다. 우리가 지켜왔던 수면 시각은 이제 파산한 회사의 채권처럼 쓸모없어졌다. 직 아기가 잘 때에만 우리도 비로소 잠자리에 들 수 있다. 그가 관대한 날에는 밤 10시부터 아침 7시까지도 잠들어 주지만, 아닌 날에는 새벽마다 같이 잠을 깰 수밖에 없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오밤중에 울음소리가 들리면 나도 지친 몸을 일으켜 세운다. 우는 아이에게 쪽쪽이를 물리고 토닥거리면서 다시 재워본다. 재우는 데 실패하면 안아서 자장자장, 도망간 잠을 추노 하듯 억지로 붙잡아오려 해 본다. 밤새 이러기를 수 차례 반복하다 보면 그날 잠은 다 잔 거다. 아침에 시뻘게진 눈을 비비며 졸린 채로 출근할 수밖에. 그래서 방전되지 않게 배터리를 충전하듯 잠은 잘 수 있을 때 수시로 자 두는 버릇이 생겼다.


그나마 아이가 이른 저녁에 잠이 들어주셨을 때, 아내와 함께 짧지만 소중한 시간에 감사해하며 예전 사진들을 꺼내보곤 한다. 러간 서사의 증거물들을 바라보며 다시 못 올 '그때 그날들'을 되새김질하는 행위다. 전대미문의 전염병 때문에 어디 나가질 못하니 할 수 있는 게 고작 이런 것뿐이다. 사진 속의 그때는 우리가 셋이 아니었고 코로나19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부족한 잠일랑 걱정없이, 오직 둘만 있었던 때다. 아아, 저 때 기억난다, 저 집 맛집이었는데, 저곳은 아직도 그대로이려나, 저긴 언제 다시 한 번 가 보나, 이런 덧없는 추임새들이 따라 붙는다.


"너는 지금이 더 행복해? 예전이 더 행복해?"


아내가 굳이 답이 있지도 않는, 쓸데없는 질문을 한다. 어차피 영화 <백 투 더 퓨처>처럼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는데.


"글쎄... 몇 달 전만 해도 솔직히 진이가 없을 때가 더 좋았는데, 지금은 지금이 좋아. 오늘이 제일 행복해."


모범답안이 맞는지 아내가 빙그레 웃는다. 오늘 하루도 평화롭게 마무리됐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은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아이가 참 예쁘고 귀엽긴 한데, 우리의 삶을 이토록 송두리째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면 은근히 부아가 치밀기도 하고, 그럼에도 나를 보고서 헤실헤실 웃어주는 얼굴에 간이고 쓸개고 빼서 갖다 바칠 만큼 모든 걸 다 주고 싶기도 하니, 내 마음이지만 이게 좋은 건지 싫은 건지 나도 참 알 수가 없다. 이렇게 또 아이와 함께하는 여름날의 하루가 저물어간다. 코로나19가 없는 여름이었으면 더 행복했을까.






(실내에서 감도 100짜리 필름으로 조리개 최대 개방으로 찍어댔더니 초점 나간 컷들이 너무 많이 나왔다. 그리고 왠지 니콘보다는 미놀타의 결과물에 한 표.)



Nikon FG-20

Series E 50mm f1.8 lens

Kodak Proimage 100 film

2020년 5~6월






Minolta X-700

Minolta-Samsung 50mm f1.4 Lens

Kodak Proimage 100 film

2020년 7 ~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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