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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May 12. 2021

초보운전도 아니면서 왜 그래

그림을 그려가며 후방 주차 연습을 했던 흔적 (by Nexus 5X)
빌라에 살 땐 주차하는 게 어찌나 힘들던지

Nikon FG-20

Zoom-NIKORR 35~70mm 1:3.3~4.5 Lens

Kodak colorplus200 film

2016년 4월



나도 드라이버 될 거야, 라고 아들이 몸으로 말했다

Canon QL17 g3

Canon 40mm 1:1.7 lens

Kodak proimage 100 film

2021년 6월




 우지직, 쿵.


 꽤나 큰 소리였다.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기둥 하나가 갑자기 나타났다 싶더니만 결국 차 엉덩이로 그 기둥을 들이박고야 말았다. 이제 갓 돌이 지난 아이와 즐겨하는 놀이가 있다.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가 열면서 "까꿍!" 하고 외치면, 아이는 사라졌다 나타난 아빠 얼굴이 뭐가 그리 반가운지 까르르 웃는다. 주차장의 기둥은, 제가 아기도 아니면서, 나와 까꿍 놀이라도 하자는 듯 그렇게 갑작스레 등장해서 기어코 강렬한 접촉을 일으키고야 말았다. 부딪칠 때 났던 소리는 심상찮았다. 아내와 아이를 내리게 한 뒤 뒤를 살펴보니 역시나 엉망이다. 트렁크 문짝과 범퍼 부위가 찌그러지고 일부는 깨져있다.


 "운전을 몇 년째 하면서 이런 기둥도 하나 못 봐?"


 "아니, 진짜 안 보였다니까. 후진하면서 왜 삐삐삐 소리도 못 들었지? 이상하다."


 아내가 타박할 만하다. 주차구역 아주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커다란 기둥을 왜 못 봤을까. 저렇게나 큰 걸. 아이와 함께 즐거웁게 바깥나들이를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는데, 내내 즐거웠던 마음은 씻은 듯 사라지고 괜히 기분이 우중충해졌다. 분명 후방 탐지 센서가 삐빅거리는 경고음을 애타게 울렸을 텐데 어째 그것도 못 들었다. 온 가족이 다 같이 신나게 '상어 가족' 노래를 부르느라 안 들렸던 게지. 입을 모아 "뚜루루뚜루."를 외치다 보니 경고음 소리 따위 들릴 리가 있나.


 아내의 말마따나 운전을 몇 년째 하고 있으면서 이게 무슨 꼴인가 싶다. 그동안 주차할 때 후방카메라 따위에 의존하는 사람들을 그렇게나 비웃었더랬다. 그런 건 경력이 일천한 초보들이나 보는 거라면서. 모름지기 숙련된 운전자라면 사이드미러와 백미러만을, 그리고 운전의 감을 좌우하는 '마음의 눈'으로만 보는 거야, 라며 우쭐댔더랬다. 엣헴. 사실은 거도 볼 필요 없어. 후진 주차라는 건 말이지, 마치 "라떼는 말이야."라는 문구로 시작해서 10분이고 20분이고 얼마든지 설명할 수 있었던 사람이 나였다. 나무에서 떨어질 거라곤 상상도 못 했던 원숭이였다.


 찌그러진 뒷 범퍼를 보고 있으니 차를 처음 샀던 때가 생각났다.


 6년 전, 아직 미혼이던 시절 첫 차를 샀다. 가수 이승환의 오랜 팬으로서 그의 노랫말에 나오는 것처럼 '예쁜 여자 친구와 빨간 차'를 가진 사람이 되기 위해 빨간색 SUV를 데려왔다. 여자 친구뿐 아니라 빨간 차는 그냥 바라만 봐도 참 예뻤다. 회사나 마트 주차장에서 차를 찾기도 쉬웠다. 대부분 검거나 흰 무채색의 차량 무더기들 속에서 튀는 색의 코란도 C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좌석은 완전히 평평하게 접을 수 있어서 차박을 하기에도 괜찮았다. 젤차라 기름값도 덜 들고 뼈대도 튼튼하고. 나의 인생 첫 차는 미운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문제는 당시 살던 빌라의 주차장이 좁았다는 것. 필로티 구조의 빌딩에 고작 10대의 차를 댈 수 있는 곳이었다. 개다가 주차장의 차 10대 중에 8대 외제차였다. 이 양반들이 다들 월세 살면서 왜 저런 차를 타는 거야. 간이 흐른 이제는 이해가 되긴 한다. 월급을 평생 모아봤자 서울에 집 한 채도 못 사는 걸, 차라리 외제차를 사거나 여행을 가고 말지. 여하튼 주차 구역은 또 어찌나 면적이 작았는지 모른다. 남의 비싼 차를 긁어먹지 않기 위해 매번 낑낑거리며 주차를 했다. 고시공부를 때려치운 후로 쓸 일이 없었던 삼색 볼펜도 꺼냈다. 인터넷에서 '쉬운 주차 방법' 따위를 검색하고 색색깔로 그림까지 그려가며 주차 공부를 했다. 런 걸 공부해야 할 줄 알았겠나.


 이론과 실전은 아주 많이 달랐다. 쉽지 않았다. 어느 날엔 선을 물고 있던 렉서스 한 대를 피해 주차하느라고 거진 30여분 동안 전후좌우를 수도 없이 오가느라 녹초가 됐다. 방으로 올라와서 한참 동안을 침대에 뻗었다가 이불을 덮어쓰고 소릴 질렀다. "렉서스나 타고 다니는 친일파 새X. 주차 X 같이 하네! 어휴 개XX!" 내 차를 제외하 유일한 국산차 동지였던 은색 스포티지 역시 매번 주차하는 데 고생하는 듯했다. 그 친구 역시 외제차 공포증 때문인지 항상 구석진 곳 내 차 옆에 나란히 주차를 하곤 했다. 유이한 국산차 2대가 나란히 서 있는 우습고도 애처로운 장면이 매일 연출됐다. 그래도 덕분인지 때문인지 그곳에서 살던 1년 동안 주차 실력이 많이 늘었다.


 그 후로 오랫동안, 반 십년이 넘도록 별 무탈하게 운전을 해 왔었는데 이상하다. 기둥을 들이박은 날 이후로 왠지 운전에 자신감이 뚝 떨어졌다. 주차할 땐 운전석과 조수석 차창을 끝까지 활짝 다 내린다. 맷돌춤추듯 고개를 이쪽저쪽 차창으로 빼 가면서 조심스레 페달을 밟았다 뗐다 한다. 예전보다 주차에 걸리는 시간이 배로 늘었다. 주행 도중에도 차선 가운데로 가고 있는지 의심스러워졌다. 끊임없이 좌우 사이드미러를 살피면서 핸들을 조정한다. 차선을 변경할 땐 괜스레 위축돼서 다른 차가 한참 뒤에 있는데도 끼어들기를 머뭇거다. 애꿎은 깜빡이만 한참을 째깍거리며 기다렸다 들어간다. 초보 운전자 시절 그때 그 시간으로 돌아간 모양새다. 5월 연휴를 마치고 오랜만에 자유로를 달려 출근하는데 무척 긴장했. 회사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내리니 운전대를 잡았던 손이 축축해져 있길래 바지에 쓱 하고 닦고 내렸.


 그러고 보니 이 모든 것들이 운전할 때 당연히 했어야 하는 일들이다. 유치원에서 가르치는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요.', '어른을 만나면 인사해요.', '반찬은 골고루 먹어요' 같은 명제처럼 당연히 지켜야 했던 운전 규칙들. 나는 이제 어느 정도 경력이 되니까, 실력이 괜찮으니까, 그동안 별일 없었으니까, 그래서 앞으로도 뭐 별일 없겠지, 하는 마음으로 동안 소홀히 했거나 아예 빼먹고 지나쳐 버렸었다. 익숙하다고 해서 능숙하다는 것과 동의어는 아닐진대 종종 그렇게 착각할 때가 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내용인데 알고 보니 올해부터 법령과 제도가 바뀌었던 탓에 낭패를 본 적 있었다. 항상 보내던 메일이라 별생각 없이 똑같이 발송했는데 민감한 내용의 메모를 지우지 않고 보내는 바람에 난리가 나기도 했다. 시스템에서 자동으로 계산되는 값인지라 의심 없이, 고작 10분이면 엑셀로 검증이 가능한데, 그걸 귀찮다고 넘어갔더니만 결국 오류가 났던 때도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사원이었다면 지레 조심하느라고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들이었다. 비단 직장생활뿐이랴. 인간관계에서도 누군가와 편한 사이가 됐다고 생각해서 무심코 뱉은 말 때문에 다투기도 하고, 이 정도면 육아도 할 만하다 싶은 즈음에 갑작스레 아이가 아프거나 까닭 모르게 세상 떠나가라 울어대서 진땀을 빼기도 한다.


 반복되는  익숙해져 있다 하더라도 가끔씩음의 마음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그러지 않으면 종종 사고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인디언들 말을 타고 달리다가 한 번씩 말고삐를 잡아당겨 멈춰 선 후 뒤돌아 보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자신의 영혼이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라는, 교훈을 얻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깨달음의 깊이에 비해서 지불해야 하는 값이 너무 비쌌다. 근처 카센터에 들렀더니 뒷 범퍼 리비가 20만 원이나 나왔다. 이상하게도 밥값, 술값으로 그 정도 돈을 지불하는 건 하나도 아깝지 않은데, 이런 데 돈이 나가면 그것만큼 아까운 게 또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6년 전에 차 살 때 후방카메라 옵션을 선택할 걸. 그까짓 거 돈 몇 푼 아낀답시고 정작 필요한 걸 넣지 않은 대가를 뒤늦게 치르고 있다. 이것도 교훈이라면 교훈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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