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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Feb 10. 2020

꽃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 아재된 거라고

2017년 봄, 불광천의 벚꽃 대난장

Nikon FG-20

Zoom-NIKORR 35~70mm 1:3.3~4.5 Lens

Kodak colorplus200

2017년 4월



창경궁에서 창덕궁까지 봄꽃놀이

Rollei XF35

Fuji 記錄用 필름 ISO 100

2019년 4월




 회사의 부장급 아들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 대개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열 중에 다섯은 등산 가서(여유가 있는 분들은 배경이 산이 아니라 골프장인 경우도 있다), 셋은 꽃이나 나무를 가까이에서(어째 계절이 바뀌어도 사진은 그대로인 경우가 많다), 나머지 둘은 가족 사진(이걸 통해 나는 자상한 가장이다, 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한다)으로 되어있다. 그들의 천편일률적인 사진들을 보며 속으로 비웃곤 했다. 어쩌면 저렇게도 다들 자기 취향이라는 게 없나. 이건 뭐 대량 생산한 공산품들의 일렬 종대 행진도 아니고. 어찌 보면 영화 <스타워즈> 저마다 똑같이 생긴 스톰트루퍼스들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프로필 사진은 뭘까. 그동안은 알 수 없었다. 카카오톡이라는 걸 하지 않으셨으니까. 당신은 마치 자연보호구역에 서식하는 멸종 위기의 몇 남지 않은 희귀종 동물이라도 되신 양, 이 시대의 끝의 에 다다른 순간까지도 스마트폰을 쓰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여기에 아직도 3G 휴대폰을 쓰는 천연기념물이 있다, 라고 시위라도 하시듯. 하지만 결국 시류에 항복하시고서 드디어 스마트폰을 하나 장만하셨다. 자연스럽게 카카오이며 유튜브를 비롯한 이런저런 앱들을 설치하시고 그동안 아버지만 홀로 부재하셨던 가족 단톡방에도 입장하셨다. 그러고나니 궁금해졌다. 아버지는 프로필 사진을 과연 어떤 걸로 선택하실까. 휴대폰으로 사진 찍는 방법은 아시겠지. 이미 2년 전에 스마트 세계로 입문하신 어머니가 곁에 계시니까 그 정도는 가르쳐 주실 거다.


 카카오톡 새로운 친구 목록에 '아빠'가 뜬 이후로 일주일이 지났다. 출퇴근길 전철에서,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자기 전 침대 위에 누워서, 그렇게 문득 생각날 때마다 앱을 켜서 이름을 눌러봤지만 사진은 찾을 수 없었다. 회색빛의 사람 모양 이모티콘만이 사진이 있어야 할 자리를 덩그러니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던 참이었는데.


 일주일이 지난 어느날 저녁, 아빠라는 이름 옆에 짠- 하고 총천연색 사진이 나타났다. 아버지께서 지난달에 백두산 여행 가셨을 때 찍은 사진. 한자로 '천지(天池)'라고 쓰여진 표지석 옆에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 서 계신 모습이었다. 비단 사진뿐만이랴. 어디서 인용하셨는진 모르겠는데 "Great hopes make great men"이라는 낯 간지러운 문구도 상태 메시지로 설정 놓으셨다. 아부지, 이제 곧 칠순이신데 얼마나 더 그레이트한 남자가 되시려구요. 내친 김에 엄지손가락을 횡으로 놀려보니 사진이 몇 장 더 나타난다. 두번째로 등록해두신 사진은 가족사진이었다. 아버지, 어머니, 나, 그리고 동생이 같이 찍은 10년도 훌쩍 넘은 옛날에 찍은 가족 사진. 고향집 거실 벽에 액자로 걸려있는 사진이다. 아버지께서 구매하신 건 저가형 스마트폰이라서 폰을 액자에 갖다대고 찍으신 가족 사진은 화질도 엉망이고 어째 흔들리기라도 한 듯 흐릿했다. 이럴거면 저한테 찍어서 보내라고 하시지.


 그런데 나의 아버지도 다른 아버지들이 그러하듯 똑같은 사진들을 찍으셨구나. 여느 아재들과 마찬가지로 등산 사진, 꽃 사진, 가족 사진, 그리고 이제 곧 태어날 손주 사진들로 사진첩을 차곡차곡 채워가실 게다. 어째서 중년 남성들은 다들 이렇게도 닮은꼴인걸까.


 왠지 슬퍼졌다.


 이 나라의 아저씨들은 '자신만의' 취미라는 게 없는 것 같다. 죽어라고 일만 하면서 살았던 세대니까. 매일같이 야근하고 회식하며 직장에 목을 매다보니 가족들하고 멀어질 수밖에. 딱히 여가 생활이란 걸 해 본 적 없으니 은퇴하고 나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가지게 되는  손쉬운 취미 아무래도 등산이. 도 안 들고 두 다리만 멀쩡하면 되는 취미. 뒤늦게 가족이라는 존재의 소중함을 느끼고 함께하려 하지만 이미 사이가 멀어진 아들딸들서로 낯설기만 하다. 아빠, 이제 와서 왜 친한 척이에요, 하던 대로 하세요. 집에 있어봤자 왜 하루 세 끼를 다 집에서 먹어, 남들처럼 밖에 좀 나가, 라는 아내의 구박이 귓가를 때린다. 어쩔 수 없이 집을 나서 산을 오른다. 거기서 만난 같은 처지의 동년배들과 어울려 거나하게 취할 때까지 막걸리를 들이키고, 불콰한 얼굴로 TV 뉴스 이야기와 정치인들 욕을 하며 하루를 보내는거다. 금의 우리네 아버지들의 모습이 아닐까. 어느 지점에서부터 우리와 아버지들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서 달려가기 시작한걸까.


 나는 그렇게 살지 말아야지. 제발 '그냥 아저씨'가 되지는 말아야지 다짐했다. 술 마시고 등산하는 걸 취미랍시고 하진 말아야지. 가족들과 함께 저녁이 있는 삶을 보내야지. 즈음에 유행하는 것도 알고 살아야지. 렇게 다짐했음에도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어가면서 흠칫 놀랄 때가 있다. 무심코 내뱉는 말 몇 마디에서, 밥상에서 예전에는 먹지 않던 반찬을 집으면서, 거울을 바라보다 얼굴에서 문득, 왠지 아버지의 흔적이 보이는 걸 깨달으면서, 나도 어찌할 수 없는 아버지의 들이구나 싶은거다. 그리고 봄이 답시고 가에 쭈구려 앉아 꽃 사진을 찍고 있으니, 이거야말로 영락없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피는 못 속인다더니 정말이었다.


 그나저나 길을 걷다가 문득 꽃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 아저씨가 된 거라던데. 나도 별수 없이 아저씨가 다 되었나 보다. 이제 곧 홍매화도 피고 벚꽃도 흩날리는 계절이 돌아온다. 나이 지긋한 아재들이 커다란 대포 카메라로 사진 찍느라 정신없는 광경을 올해도 어김없이 마주치게 될 거다. 아버지께서도 새로 장만한 스마트폰으로,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열심히 꽃 사진을 찍으시려나.


 여하튼 이제부터라도.


 아버지, 좋아하시는 거 찾아서 하세요. 다른 아저씨들하고 말고 어머니하고 여행도 좀 다니시고. 있는 것도 돈 아끼지 말고 많이 사 드시고. 적당히 운동도 하시구요. 그리고 집에 계실 때 TV 조선은 조금 줄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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