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돌 May 11. 2020

몇 살 때까지 '어린이'라고 불러주실 건가요

담요를 뒤집어쓴 채 아내에게 장난질. "나, 꼬마유령 캐스퍼 같지 않아?"


날씨 좋은 5월엔 다들 어린이가 된 기분

Samsung af slim zoom 70s

Samsung zoom 35-70mm auto macro lens

Kodak colorplus 200

2020년 4월



장난감이나 인형은 아이들만 좋아하는 게 아니다. 자동차 키링이라도 아기자기한 걸로 달아야지


거울 자화상 사진을 보니 새삼 내가 이렇게나 나이 먹었나 싶다

Nikon FG-20

Nikon Series E 50mm f1.8 lens

Kodak colorplus 200

2020년 3





 가정의 달 5월이다. 


 5월엔 어린이날이 있고 아내의 생일이 있고 어버이날이 있고 스승의 날이 있고 동생의 생일까지 있는데, 기에다 우리 아이도 지난 5월 2일에 태어났. 그야말로 기념일들의 행이 끊이지 않 숨돌릴 틈도 없는 무시무시한 달이  버렸다.


 한 아이의 부모가 되었으니 우린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닌 걸까. 아내도 나도 서른일곱, 만으로는 서른여섯이니 어린이라는 호칭으로 불리기 진즉에 이를 너무 많이 먹었다. 소파 방정환 선생께선 어찌하여 5월 5일 어린이날 같은 걸 만드셔서 이제는 어린이가 아니게 된 '어른이'들의 마음을 후벼 파시는 건지. 나는 여전히 어린이날만 되면 선물도 받고 싶고 케이크의 촛불도 불어 끄고 놀이공원도 가고픈데.

 정말 우리는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닌 걸까. 으로 정해진 나이가 돼서 선거권이 생겼다거나, 스무 살이 넘었으니 편의점에서 술과 담배를 살 수 있다는 이유만으, 혹은 결혼해서 가정을 이고 아이 낳았으니, 백미러를 보면서 후진 주차를 무사히 할 수 있고, 내 이름으로 된 은행 대출 등이 있다면 어른 . 한 번 제대로 따져 볼 필요가 있다. 몇 살 때까지 어린인지. 모두가 우리더러 어린이가 아니라고 할 때 어쩌면 한 명쯤은 맞다고 할 수도 있. 인간은 비판적이고 자유로운 사고를 할 때 새로운 무언가를 이뤄낼 수 있는 법. (<그것이 알고싶다> 김상중의 톤으로) 그러니까 말입니다, 과연 몇 살때까지 어린이라 할 수 있는지, 그 기준에 대해 다시금 정부와 사회, 우리 모두가 나서서 고민해 볼 문제입니다.




 우선 어린이의 개념을 명확히 하기 위해 관련 법률을 찾아보, 법적으로는 '어린이''아동''소년'라는 용어들 제각각로 사용됨을 알 수 있었다. 도로교통법상 어린이는 13세 미만, 아동복지법상 아동은 18세 미만, 형법과 소년법에 의하면 14세 미만은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는 이른바 '촉법소년'에 해당한다. 이렇게 따져보니 대충 뭉뚱그려서 어린이라 부를 수 있는 나이의 기준은, 아무리 넓게 잡더라도 18세 미만까지다.

도로교통법 제2조 제23호
“어린이통학버스”란 다음 각 목의 시설 가운데 어린이(13세 미만인 사람을 말한다. 이하 같다)를 교육 대상으로 하는 시설에서 어린이의 통학 등에 이용되는 자동차와... (후략)
아동복지법 제3조 제1항
“아동”이란 18세 미만인 사람을 말한다.
형법 제9조
14세되지 아니한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소년법 제4조 제1항 제2호
형벌 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한 10세 이상 14세 미만인 소년


 그러니까 지금의 제도상으로는 아무래도 우리가 어린이에 해당한다고 우길래야 우길 수가 없다. 어린이라는 단어와 어린이날이라는 기념일을 만든 소파 방정환 선생의 시대와 그 이전부터 통시적으로 고찰할 필요가 겼다.  딱딱한 법률 구문만으로 따질 공시적인 문제가 아니었던 거다. 첫 단추부터 잘못 꿰었다.


 우선 연구(?)방향을 중세 시대로 돌려 '어린이'이라는 단어의 어원부터 살펴보자. 다들 학교 다닐 때 어 시간에 한 번쯤은 접해 봤을 <훈민정음> 서문에는 백성을 이를 때 '어린'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 서로 사맛디 아니할쌔 이런 젼차로 '어린' 백셩이 니르고져 홀빼 이셔도 마침내 제 뜨들 시러 펴디 몯할 노미 하니라 내 이랄 위하야 어엿비 너겨 새로 스믈여듧자랄 맹가노니 사람마다 해여 수비 니겨 날로 쑤메 편안케 하고자 할 따라미니라"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는 서로 잘 통하지 아니한다.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것을 가엾게 생각하여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익혀서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여기서 '어리다'의 의미는 본디 '어리석'는데 시간이 흘러 '나이가 적다'는 뜻으로 변화했고, 관형사형 '어린'에 의존명사 '이'가 덧붙여져 '어린이'라는 말이 되었다. 그러다가 1920년에 방정환 선생께서 나이가 어린 아동들도 하나의 인격체로 봐야 한다는 취지에서 어린이라는 어를 새롭게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이 단어에 없었던 높임의 의미를 호칭에다 부여한 거다. 그때부터 어린이는 나이가 어린, 얕잡아 볼 사람 따위가 아니게 되었다. 원래 고유의 우리말에서 '젊은이', '착한 이'라는 단어에서처럼 '-이'라는 글자가 붙으면  '-님'이나 '-분' 같 '높은 사람'라는 존중의 의미로 쓰기도 했다.


 그리고 어린이의 기준이 몇 살이었나 찾아보니  7~16세쯤이었다고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선생께서 이끌었고 일제 시대 어린이 운동의 주체였던 천도 소년회의 회원 자격이 7~16세의 소년으로 정해져 있던 까닭이다. 참고로 소년회는 '쾌활 건전한 소년'을 만드는 데 목적을 뒀으며, 남녀는 물론 한국인과 외국인을 불문하고 가입할 수 있었고 천도교인이 아니어도 가입이 가능했다.


 선생께서 '어린이날'을 만든 1920년대에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약 34세 정도였다고 한다. 일제 시대에는 사람들이 고작 34살까지 살 수 있는데 무려 16살까지 어린이라고 불러줬던 거다.

인하대 수학통계학부 구자흥 교수가 통계청 자료실에서 발견한 일제시대 생명표를 분석 비교한 결과... (중략) 당시 경성대 의학부 예방의학교실 미즈시마 하루오 교수가 조선총독부의 인구 및 사망신고 자료를 분석해 만든 것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주민생명표다. 이 생명표에 따르면 1926~30년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남자 32.4세, 여자 35.1세 (평균 33.7세)였다.
- 동아일보, 2001. 9. 10.


 다시 현대로 돌아오자. 요즘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어떻게 변했을까. 최근 자료를 찾아보니 출생 시점 기준 앞으로 살 것으로 예상되는 '기대 여명'은 약 83세다. 자료에 따라 약간씩의 차이가 있긴 하나 평균적으로는 83세 즈음으로 보면 되겠다. 방정환 선생의 시대보다 무려 49세가 늘었다.

한국인의 기대 여명은 82.4세로 높은 편(36개국 중 10위)이고, 한국은 지난 50년 동안 기대 여명이 급격히 높아진 국가에 해당함.
- OECD 통계에서 나타난 한국 노인의 삶과 시사점, 국회입법조사처, 2019. 12.
통계청이 4일 발표한 ‘2018년 생명표’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출생아의 기대수명은 82.7년으로 2017년과 변함이 없었다.
- 중앙일보, 2019. 12. 5.


 자, 이제 어린이의 기준 나이 계산을 위한 모든 기초 자료는 준비됐다. 방정환 선생께서 사셨던 평균 수명 34세 시대 어린이의 기준 나이는 16세까지였다. 현재는 평균 수명이 83세로 늘었으니, 지금의 어린이 나이 마지노선 x를 구하는 간단한 비례식 '16 : 34 = x : 83'의 해는 약 39.1이다. 그러니까 환산해보면 대의 39세까지는 어린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승만의 자유당 정부는 아니지만서도 사사오입을  적어도 마흔 정도까지는 어린이라는 거다.

 것이야말로 기적의 산수법. 이에 따르면 나도 아내도 30대 후반이니까 아직까지 어린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방법으로도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게 되려면 아직 3년이라는 제법 긴 시간이 남아있다. 이렇게나마 나이듦을 부인하려는 노력이 퍽 눈물겹다.




 소파 방정환 선생의 어린이 개념을 현재의 기준으로 환산하여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을 아내에게 신나게 들어댔다. 보, 가 대단한 걸 발견해냈어. 더 이상 나이 먹어서 슬프다는 생각 따위 안 해도 돼. 우리도 아직까지 어린이라니까. 5월 5일에 우리 서로 어린이날 선물도 주고받고 에버랜드 가서 신나게 놀자.  오랜만에 독수리 요새 타고싶어. 니, 이름이 티 익스프레스였던가. 여하튼 그런 거. 우리가 이를 낳았다고 해서 꼭 어른이 된 건 아니야. 렇지 않아. 한참을 내 말을 듣고 있던 아내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마지못해 대꾸한다.


 "우리 집에 어른 둘 아이 하나가 사는 줄 알았더니만, 아이 둘 어른 하나가 있는 집이었구만. 정신 좀 차리세요, 이 냥반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