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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Aug 01. 2023

인간은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가

끝의 끝까지 가서야 반성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결국. 작년 건강검진 때 문제가 터지고야 말았다. 매년 복부초음파 검사를 받았더랬다. 몇 해 전부터 담낭에 용종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게 한두 개가 아니라는 것도,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도. 별 걱정은 없었다. 현대인이라면 모름지기 속에 용종 몇 개쯤은 달고 살지 않나. 하지만 용종 하나가 1센티미터를 넘어가자 병원 진료를 받아야 한다는 소견이 결과지에 적혀 있었다. 언젠가는 터질 것 같던 시한폭탄이 기어코 카운트다운을 시작한 것이다. 평소에 육식을 줄이고 채소를 먹고 운동을 할 걸, 하는 때늦은 후회는 별무소용이었다.


​ 집 근처에 있는 신촌 ㅅ 병원 소화기내과에 진료 예약을 잡았다. 대학병원이라 그런지 외래 진료를 받기까지 한 달이 넘게 걸렸다. 별다른 증상도 통증도 없었기에 그 정도는 기다릴 만한 시간이었다. 기다림의 끝, 외래진료 날. 의사에게 건강검진 때의 초음파와 CT 사진들을 보여줬더니 내시경 초음파 검사를 한번 더 해 보잔다. 몸속에 카메라를 넣어서 살펴보면 더 정확한 상태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역시나 대학병원이라 그런지 또 한참을 걸려 비싼 검사를 받아 봤다. 용종은 그새 자라서 1.3센티미터가 돼 있었다. 비 온 뒤 죽순도 아닌데 이렇게 빨리 자라나. 덜컥 겁이 나서 물었다.


 “선생님, 혹시 약을 먹거나 관리를 하면 용종이 줄어들 수도 있나요?”


 “그런 일은 극히 드뭅니다. 조금 느리게 커질 수는 있겠지만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의사는 마치 버스정류장을 이제 막 떠난 기사 아저씨의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정류장으로 허겁지겁 달려와서 아직 멀리 가지 않은 버스 문을 애타게 두드린다. 하지만 이미 출발한 버스는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간절한 눈빛으로 기사 아저씨를 쳐다보지만 ‘안 돼, 돌아가’라고 말하는 단호한 눈빛만 돌아올 뿐. 의사는 그런 얼굴을 한 채 말을 이었다. 아직 30대니까(만 나이로 해줘서 고마웠다) 용종의 발전 속도가 빠를 수 있다. 암으로 발전할 수도 있으니 사전에 위험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담낭을 떼는 게 낫겠다고. 그 후 수술을 담당하는 간담췌외과로 가서 한 번 더 진료를 받고 수술날짜를 잡았다.


​ 병가를 내고 수술 전날에 입원했다. 입원하기 전날까지 직장 동료들과 약속을 잡아 밥을 먹고 술을 마셨다. 별것 아닌 수술이라는데도 사람들은 나를 꼭 다신 못 볼 사람처럼 먹이고 마시게 했다. 그러다 보니 진짜 영영 헤어질 것 같아서 기분이 묘해졌다. 별것 아닌 수술이래서 아내와 아이는 집에 있으라 하고 혼자서 병원으로 왔다. “아빠는 병원에서 두 밤만 자고 올게. 진이, 엄마하고 둘이서 잘 수 있지?” 아이는 내 말을 듣고 씨익 웃었다. 그래, 별것 아닌 걸 아이도 알고 있구먼. 곧 다시 만날 것 같아서 기분이 나아졌다. 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와서 입원 절차를 밟고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채 병상에 앉았다.


 한참을 무료하게 기다리고 있으니 간호사가 왔다. “내일 수술이니까 오늘밤 12시부터 금식하세요.”라는 주의사항을 들었다. 그 말에 화급히 질문을 던졌다.


 ”그럼 혹시 밤 11시까지는 먹어도 괜찮나요? 당분간 제대로 못 먹을 것 같아서…”


 간호사는 이런 질문을, 익히 받아본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웃으며 대답했다.


 “환자분, 11시 59분까지도 괜찮아요.”


​ 원하는 답을 들었음에도 어째 얼굴이 홧홧해졌다. 그러고 보니 똑같은 짓을 지난달에도 되풀이했다. 예약했던 병원 진료가 일찍 끝나고 뜻밖의 여유가 선물처럼 주어졌던 날. 아내에게 말했다. 이제 당분간은 술을 못 마실테니 오늘은 그동안 못 가봤던 동네 술집이나 다녀보자. 일과 육아 때문에 제대로 마신 적이 없었잖아. 아이 때문에 자주 가던 소아과 건물 옆에 붙어있는 술집이 힙해 보이더라니까. 밤에 지나가다 보면 엄청 북적거리던데. 오늘이 마지막 기회라고. 대낮부터 진탕 마셔보자. 아내는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는’ 듯한 얼굴을 하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입원 전날에도 마찬가지였다. 어젯밤에 내가 양꼬치에 맥주를 마셨던가.


​ 인간은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일까? 몸이 아프게 됐으면 그동안의 생활을 반성하고 다시 건강해질 궁리를 할 것이지. 이제 더 아프면 못하니까, 가능한 끝의 끝의 끝까지 어떻게든 먹고 마시면서 즐기려고 한다. 병원 진료를 받은 날에도, 입원하기 전날에도. 수술 후엔 당분간 죽밖에 못 먹는다니까 고기며 라면이며 치킨이며 찌개 같은 자극적인 음식을 찾아다녔다. 그래 놓고서 지키지도 못할 이런 말을 꼭 덧붙였다. 이제 진짜로 몸에 좋은 것만 먹고 규칙적으로 운동해야지. 그리고 다음날엔 어젯밤의 약속은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려 버린 듯,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몸에 나쁜 것들을 먹고 마셨다.


 알면서도 이런다. 아무래도 어쩔 수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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