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돌 Mar 22. 2024

이 아저씨는 또 왜 헤어졌대

3살 아이와 아빠, 우리가 사랑에 관해 나눈 말들



 아이와 함께 있을 때 거실 라디오를 켜 놓는다. TV를 틀어놓으면 안 좋을 것 같고 아무것도 없으면 적적하니, 이럴 땐 라디오가 딱이다. 주파수는 FM 음악 채널로 고정해 둔다. 하루종일 이런저런 노래들이 나온다. 노래들을 배경음악 삼아 아이는 그림책을 보거나 자동차 장난감을 굴리거나 블록을 쌓거나 하면서 논다. 그러다가 때때로 귀를 쫑긋 하며 라디오에 집중할 때가 있다. 노래 가사를 예전에는 전혀 알아듣지 못했지만 이제는 달라졌기 때문. 만 3세답게 내용을 듣고서 제가 궁금한 것들을 이것저것 묻곤 한다.


 이승환의 '기다린 날도 지워질 날도'를 들었을 때였다.


 나 언제까지 그대를 그리워해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지금 떠난다면 볼 수도 없는데.

 "이 아저씨는 왜 떠난대? 왜 못 보는 거야?" 아이가 물었다.

 그대를 사랑한단 그 말을 왜 못 하나.

 "사랑하면 사랑한다 말하면 되지, 왜 말 못 해?" 아이가 재차 물었다.

 그저 웃는 그대 모습 보고 싶은데.

 "보고 싶으면 봐야지." 노래 구절마다 질문을 쏟아대는 아이였다.


 아이의 질문에 계속해서 답을 했다.

 "사랑해도 헤어질 수도 있어. 못 보게 될 수도 있다니까."

 아이는 내 대답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사랑해도 사랑한다고 말을 못 하기도 해. 그거 은근히 어려운 말이야."

 아이는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랑하고 보고 싶어도, 이제 못 볼 수도 있다고."

 내 말을 듣고 아이가 다시금 물었다.

 "그냥 보면 되지. 보러 가."

 "진아, 너 어린이집 같은 반 친구들 3명이 유치원 갔지. 이번 달부터 그 친구들 못 봐."

 "시러!"

 아직까지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이였다. 나 역시 그동안 이별했던 사람들이 문득 생각나서 목이 메었다.


 그날따라 라디오에서는 '죽을 만큼 보고 싶다'든지, '그대 먼저 헤어지자 말해요'라든지, '너무 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모든 괴로움들은 파도에 던져버려 잊어버리고 겨울바다로 달려간다'든지 하는 가사의 노래들이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아이는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이 아저씨는 또 왜 헤어졌대?"


 이번에는 내가 아이에게 물었다.

 "그래서 진이 너는 누구를 사랑하니?"

 "아빠, 엄마, 샤샤."

 아이는 나와 아내를 가리키며 호명하고 난 후 밤마다 끌어안고 자는 강아지 인형의 이름도 함께 말했다.

 "아빠, 엄마도 진이 제일 사랑해. 근데 아빠, 엄마 말고 어린이집에서는 누구를 제일 사랑해?"

 아이는 일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음... ㅇ이하고 ㅅ하고 ㅁ, 또 ㅈ하고 ㅎ, ㅎ 쌍둥이네하고 ㄱ하고 또..."

 래퍼처럼 빠른 속도로 한 명 두 명 호명하더니 기어코 자기네 반 열댓 명 이름 모두를 말했다.

 "그렇구나. 다 사랑하는구나. 그래도 제일 사랑하는 딱 한 명만 얘기할 수 있어?"

 "아니야. 다 사랑해."

 아이는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작은 입에 한껏 힘이 들어가 있었다.


 마침 라디오에서는 송골매의 '모두 다 사랑하리'가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타오르는 태양도 날아가는 저 새도, 다 모두 다 사랑하리, 라고. 아이의 대답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나는 어쩌면, 사랑의 세계에서 부러 줄 세우기 같은 걸 가르치려 했던 건 아닐까. 누군가는 더 사랑하고 다른 누군가는 덜 사랑하고,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는데. 아이의 사랑'론'을 알게 되자 조금 부끄러워졌다. 아내는 이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다가 말했다.

 "싫어하는 것보다는 좋아하는 게 많아서 다행이네."


 이후에도 며칠 동안 포기를 모르는 남자 정대만처럼 아이에게 끈덕지게 물어봤다. 질문을 살짝 변형해서, 어린이집에서 누구와 가장 친하냐고. 결국 아이는 ㅇ과 ㅅ이라 답했다. 둘 다 여자아이였다. 쪼그만 것이 벌써부터 삼각관계의 치정 드라마를 찍었더랬다. 하지만 올해 3월부터 ㅅ은 유치원으로 떠났다.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다시 만나기 위한 약속일 거야." 015B의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괜히 아이를 놀렸다. 그랬는데 지난 일요일, 동네 놀이터에서 우연히 ㅅ네와 마주쳤다. 아이는 "ㅅ아!" 하고 반가웁게 외치면서 그녀에게 달려갔다. ㅅ은 며칠 못 봤다고 그새 어색해졌는지 별 대꾸도 없고 웃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아이는 ㅅ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끊임없이 말을 걸고, 뭐가 좋은지 까르르거리고, 새로 산 장난감을 보여주며 자랑했다.


 제가 제일 사랑하는 ㅅ이라더니 짝사랑에 불과했나. 애쓰는 아이의 모습에 왠지 코끝이 찡해졌다. 이번에도 잠자코 지켜보던 아내가 연애 프로그램 MC처럼 말했다.

 "너무 적극적이지도 너무 소극적이지도 않고, 적절한 선을 지키면서 끈질기게 츄라이하네. 저러면 결국 넘어오게 돼있어."


 아내가 어린이집 같은 반 엄마들 모임에 가느라고 아이와 나, 둘만 집에 있던 밤이었다. 그날도 어쩌다 보니 아이와 함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러다가 도어스테핑처럼 '사랑 대담'이 정례화될지도 모르겠다.

 "진아, 사랑하면 어떻게 하는 거야?"

 아이에게 물었다.

 "음... 샤샤처럼 안아주고, 같이 놀아."

 "맛있는 것도 나눠 먹고?"

 "응! 같이 먹을 거야."

 아이는 사랑으로 반짝거리는 눈을 하고서 대답했다.

     

 한참을 이야기하다 보니 배가 고파졌다. 간식으로 아내가 냉장고에 넣어 둔 골드키위를 깎아 먹었다. 아이는 순식간에 제 몫을 먹어 치웠다. 그런데 하나 남은 키위에 한참이나 손을 대지 않는 것 아닌가. 이상해서 물었다.

 "진아, 배 불러? 이거 왜 남겨?"

 "엄마 오면 줄 거야."

 제가 그렇게나 좋아하고 먹고 싶은 걸 참고 나눠 먹겠다는 이 마음, 이것이 바로 사랑이었다. 아이는 "엄마가 좋아! 키위보다 더"라고 했다. 난 네가 좋아. 냉면보다 더, 포도보다 더, 라고 긱스가 '짝사랑'에서 노래했던 것처럼.

 

 하지만 불과 5분 정도 지났을까. 아이는 슬그머니 한 조각의 키위에 손을 뻗었다. 엄마 안 오니까 내가 먹어야겠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혼자 대답하면서. 이 정도면 아이 입장에서는 아주 오랫동안, 참을 만큼 참긴 했다. 이 나이대 아이들은 자기희생적 사랑보다는 맛있는 걸 먹는 게 더 중한가 보다. 그래, 너는 아직 사랑을 몰라. 벌써부터 그렇게 많이 알 필요가 없어.




아들아, 턴테이블은 그렇게 갖고 노는 게 아닌데... 잠자코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만 듣는 건 어떠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