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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 없는 경주 가족여행 (1)

죽은 동생이자 아이의 삼촌은 함께 할 수 없었던 여행 기록

by 김돌 Jul 22. 2024

 지난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오랜만에 경주로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아이와 아내와 나의 부모님까지 함께.

 

 다만 동생의 빈자리 때문에 즐거운 여행 중에 문득 울적해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에게 슬픈 표정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썼다.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더 이상 죽은 동생 생각이 나지 않게 가족들과도 모든 연을 끊고, 동생의 흔적이나 추억 따위 하나도 없는 낯선 곳에서 살고 싶다고. 그러면 잊는 게 더 쉬워지지 않을까. 기억이라는 게 떨쳐내려 할수록 더 강하게 들러붙는 것이 참으로 징그럽다.






1. 서울에서 경주까지 2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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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들어 아이가 차만 타면 멀미를 하는 탓에 KTX를 타기로 했다. 아이가 기차에서 버틸 수 있는 시간의 최대치는? 서울에서 진주까지 가는 3시간 반의 시간은 그동안 두어 번 겪어봤고 쉽지 않다는 걸 온몸으로 느꼈다. 다만 2시간 정도라면 해 볼 만하다고 생각됐다. 서울에서 기차로 그 정도 거리면 강원도 속초나 경상도의 안동, 대구, 혹은 경주 등등. 광주나 여수 같은 전라도 지역은 의외로 2시간이 넘어갔다. 행여나 동생 생각이 날까 봐 충청권은 처음부터 제외했다. 부모님은 진주에서 기차로 올라오실 텐데 강원은 멀고, 부산은 지겨우실 테고, 전라는 애매했다. 적당한 여행지가 어딜까, 하며 고민하다 선택한 곳은 바로 경주였다. 서울역에서 경주역까지 KTX로 딱 2시간. 진주역에서 출발하면 동대구에서 갈아타고 경주역까지 2시간 남짓. 그렇게 얼레벌레 여행지는 경주로 결정됐다.


 아이는 그새 많이 컸다. 작년 몇 번의 여행에서와는 달리 기차에서도 지루해하지 않았다. 이제 그만 내릴 거라며 칭얼거리지도 않았다. 중간중간 빵이며 초콜릿이며 젤리 같은 간식도 먹고, 아침으로 먹은 맥도널드 해피밀 세트에 딸려 온 소닉 스티커북도 갖고 놀고, 좌석마다 비치한 KTX 매거진도 같이 보면서 기차 여행을 알차게 즐겼다. 이 정도면 여름에 강원도 바다를 보러 갈 수 있겠다. 진아, 우리 '속초아이' 타러 가자, 대관람차, 예전에 그거 TV에서 봤지. 거기 바다도 진짜 예뻐. 벌써부터 (계획에도 없는) 다음 여행에 설레하며 아이를 꾀었다. 아이는 이제 기차 타는 것 따위 별것 아니라는 듯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2. 대릉원'뷰' 식당에서 점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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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역에서 부모님과 만나 함께 기차에서 내렸다. 부모님은 오랜만에 손주를 보자 입이 귀에 걸릴 만큼 활짝 웃으셨다. 아이는 자기도 제법 커서 더 이상 아기가 아니라는 듯 "안냐세요."라며 허리 숙여 인사를 했다. 짧은 해후 시간을 마치고 예약해 둔 렌터카를 찾으러 갔다. 차는 굳이 업장까지 찾아가지 않아도 됐다. 지정한 시각 즈음에 맞춰 경주역 공영주차장에 세워둔다 했다. 코로나19 이후로 이런 비대면 시스템이 정착됐나 보다. 업체에서 보내 준 사진을 보며 어렵지 않게 차를 찾고 경주 시내로 달려갔다. 역에서 15분 정도 운전했는데 벌써 황리단길에 도착했다. 평일 낮인데도 주차하기가 만만찮았다. 요즘엔 수학여행 장소로도 인기가 시들해졌고, 예전처럼 찾는 여행객들도 많지 않다더니 이게 웬걸. 사람도 차도 정신없이 많았다. 경주, 아직 안 죽었다.


 겨우 주차할 곳을 찾아 차를 욱여넣고 미리 봐 놨던 식당으로 갔다. 여행이고 뭐고 일단 밥부터 먹자. 금강산도, 아니, 첨성대도 식후경이다. 식당은 교동집밥이라는 곳이었다. 고기구이와 생선구이 메뉴가 있어서 아이와 함께 먹기에 괜찮은 밥집이었다. 나도 부모가 된지라, 이제 식당 선택의 기준은 아이가 먹을 수 있냐, 를 1순위로 따진다. 식당의 음식 맛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다만 맛보다는 이곳의 가장 큰 장점은, 밥을 먹으면서 창 밖으로 대릉원을 볼 수 있다는 것이랄까. 카이로의 피자헛에서는 피라미드를 바라보며 피자를 먹을 수 있다던데 여기도 그에 못잖네. 아니, 그래봤자 둘 다 무덤 뷰잖아요, 그게 뭐 좋은 거라고. 인터넷에서 봤는데 지방의 어떤 아파트는 진짜로 공동묘지가 보이는 데가 있다카더라. 부모님과 이런 실없는 농을 주고받으면서 밥을 먹었다.




3. 첨성대는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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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말인데 날씨는 마치 한여름 같았다. 하지만 밥을 먹었는데 걷지 않을 수가 있나. 뙤약볕을 배경 삼아 슬슬 걸어서 첨성대로 향해 갔다. 첨성대로 들어서는 길목에서는 비단벌레 자동차라는 걸 탈 수 있다. 서울 상암 하늘공원의 맹꽁이열차보다 조금 더 큰 사이즈의 전동 기차다. 요걸 타고서 첨성대, 계림, 교촌 한옥마을, 월정교, 동궁과월지(나는 아직도 이 이름이 입에 익지 않는다. 옛 이름인 '안압지'가 더 익숙하다)를 편히 앉아서 관람할 수 있다.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을 하고 올 걸, 현장표는 이미 매진된 지 오래였다. 뭐든지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


 아니, 그래도 오프라인 현장에서 파는 건 좀 남겨둬야지. 온라인으로 다 팔아버리면 어떡하나. '정보 격차'라는 게 있는데.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키오스크도 어려워하는 어르신들은 어쩌라고,라는 생각을 하면서 부모님을 쳐다봤더니 유튜브로 영상도 보시고 고속버스 티켓 예매도 하시고 카카오톡이며 SNS도 무리 없이 하신다. 내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노인들에 대해 막연한 편견을 갖고 있던 걸까.


 더위에 지쳐 대릉원 내 벤치에 잠시 앉았다. 엊그제 TV를 보다가 우연히 가수 이효리가 자기 어머니와 둘이서 여행하는 프로그램 재방송을 봤다. 왠지 익숙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그네들도 경주 여행을 갔던데 마침 우리가 앉았던 똑같은 벤치에 앉아 쉬는 모습이 화면에 나오고 있었다. 별 관심 없던 이효리가 급 친근하게 느껴졌다. 우린 같은 자리에 앉았던 사이로군요. 뭐랄까, 시간차는 있지만 엉덩이의 온기를 함께 나눈 사이 같은 것.


 마침내 첨성대까지 왔다. 첨성대는 여전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게 얼마만인가 햇수를 세어 보니, 신혼일 때 아내와 둘이서 경주 여행을 왔었으니 거진 8년 만에 다시 왔다. 고작 8년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는 다섯 살 아이를 키우게 됐고, 부모님은 많이 늙으시고 때문에 여기저기가 아프시고, 동생은 생각지도 못한 죽음을 맞이했고, 친구들은 최근에 머리가 하나 둘 빠진다고 불안해한다. 써 놓고 보니 8년의 세월 앞에 '고작'이라는 단어를 붙이면 안 되겠다. 다음 8년 동안 아이는 청소년이 되고, 누군가가 또 죽거나 아프거나, 우리는 결국 대머리가 되거나 혹은 머리를 심으러 튀르키예로 날아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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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는 더위에 지쳤는지 달달한 과자를 입에 털어 넣고 물을 들이켰다. 대릉원을 나와 도로변 가게에서 산 십원빵도 맛있게 먹었다. 나도 화면으로만 보던 십원빵을 난생처음 맛봤다. "쓸데없이 뭐 이런 걸 사 묵습니까?" 하고 볼멘소리를 뱉었지만 어머니는 "이런 데 오면 이런 걸 꼭 묵어봐야지." 하시면서 많이도 사셨다.


 빵을 먹고 있으니 눈치 빠른 참새들이 우리 주위로 하나 둘 모여들었다. 부스러기를 던져주니 두세 마리가 금방 달려들어 채 갔다. 아이는 그 모습이 재미났나 보다. 자기도 참새 줄 거라면서 빵 부스러기를 마구 던져댔다. 새들은 계속해서 모여들었다. 그런데 유심히 지켜보니 먹는 놈만 자꾸 먹고 못 먹는 놈은 거듭 빼앗긴다. 못 먹는 녀석이 불쌍해서 그쪽으로 던져줘도 덩치 크고 재빠른 녀석이 금방 와서 채어갔다. 이러니 살찐 놈은 계속 찌고 마른 놈은 계속 마르는구나. 어째 씁쓸한 장면이었다.




4. 숙소 체크인하고 한가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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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소는 보문호에 붙어있는 경주 소노벨 리조트였다. 회사 법인 콘도를 나름 저렴하게 예약했다. 몇 만 원을 보태니 호수가 보이는 방으로 바꿔줬다. 잘 한 선택이었다. 돈 몇 푼에 기분이 더 좋아질 수 있다. 기분이 더더욱 좋기 위해 나는 오늘도 로또를 샀다.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의식을 치르듯 인터넷으로 2장을 산다. 그러면 한 주의 첫 출근길에 쌓인 스트레스가 조금은 누그러뜨려진다. 마음속으로 즐거운 상상을 한다. 이거 잘 되면 다음 주 월요일엔 출근 안 할 수 있다구. 물론 냉철하게 계산해 보면 당첨되더라도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하긴 한다. 1등 수령금을 받아봤자 서울 아파트 한 채 사면 끝이다. 그것도 강남이니 송파니 하는 곳들은 언감생심이고. 인플레이션이 이토록 무서운 것이었다.


 테라스로 나가 보문호 수면의 반짝거리는 윤슬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잠시 망중한을 즐겼다가 다시금 길을 나섰다. 동해 바닷가로 가서 문무대왕릉도 보고 노을 지는 풍경도 감상하고 저녁밥도 먹기로 했다. 가는 길에는 KT 수련관이 보였다.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예전에 우리 가족 저기서 묵어 본 적 있다고. 어렸을 때라 기억이 날 듯 말 듯 가물가물했다.


 부모님은 두 분 다 KT, 아니, 그 당시엔 한국통신, 그러니까 '전화국'에 다니셨다. 그 회사는 전국에 수련관이라는 이름의 콘도를 운영해서 방학 때면 종종 그곳으로 여행을 가곤 했다. 콘도에 딸린 극장에 가서 영화도 보고(역시나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성룡이 출연한 영화 <취권>이 인생 첫 영화였던 듯하다), 탁구도 치고 볼링도 치고, 노래방에서 노래도 부르고, 조식 뷔페도 가고 그랬다.


 그때 생각을 하니 또다시 동생 생각이 났다. 부모님도 그러신 듯했다. 차 안에서는 일순 짧은 침묵이 흘렀다. 매번 이래서야 부모님과 함께 '지나갔던' 이야기라는 걸 할 수 있을까. 일부러라도 '앞으로의' 이야기만 해야겠다. 이럴 땐 아이가 있어서 다행이다 싶다. 지나간 기억보단 앞으로 새로이 만들어갈 기억이 훨씬 많을 테니까. 그런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으니까. 아이가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수단이나 도구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그런 역할을 수행해주고 있어서 고마울 따름이다.




5. 문무대왕릉에서 바닷가 산책하고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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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문단지에서 차로 30분도 안 달린 것 같은데 바다가 보인다. 문무대왕릉이 보이는 해변에 도착했다.


 바닷가에 오면 늘 하는 물수제비. 내가 먼저 물수제비를 선보였더니 아이가 저도 하겠다며 돌을 들고 섰다. 자못 비장한 뒷모습이다. 하지만 다섯 살 따위가 물수제비를 성공하기란 어렵지. 조그마한 돌멩이가 바닷물에 퐁당 한 번 빠지고 끝. 아직 아빠를 따라오려면 멀었단다. 부지런히 따라오려무나. 물론 이렇게 말하는 나도 고작 세 번 정도 돌을 튀길 뿐이었다.


 날이 저물어가자 여기저기서 장구나 꽹과리를 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바닥에 앉아 문무왕릉을 바라보며 중얼중얼거리기도 하고. 부모님 말씀으로는 저 사람들 죄다 무당이란다. 왕으로부터 신기를 받아가려고 오는 거라나. 하긴,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 정도면 기운이 대단할 것 같기는 하다. 뼛속까지 이과생인 아내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속삭였다. "문무왕이 그렇게 대단하다면 왜 일제강점기 때는 못 막아줬냐?" 음... 그러게나 말이다. 신라 때 분이니까 그땐 왜구 따위가 우리나라를 점령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하셔서 그런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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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은 해변가에 있는 대구회식당이라는 데서 먹었다. 점심에도 묘지 뷰였는데 저녁에도 묘지 뷰 식당이다. 다른 게 있다면 저녁엔 땅이 아니라 바다에 있는 왕릉을 봤다는 거랄까. 매운탕까지 알차게 먹고 배를 든든히 채웠다. 생각보다 맛있어서 놀랐다. 여행지에 오면 으레 맛없고 비싸기만 해서 실망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그러지 않았다. 1박 2일 동안 그럭저럭 맛있는 것들을 먹으면서 다녔다.




6. 동궁과월지에서 밤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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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이켜 보니 여행 일정이 되게 빡빡했구나. 이 밤을 그대로 흘려보내기엔 아쉬워서 동궁과월지 야경을 보러 갔다. 노을이 아스라이 물들기 시작할 때부터 봐야 제맛인데, 식당에서 조금 늦게 출발하는 바람에 이미 짙은 어둠이 사위를 집어삼킨 후였다. 그래도 은은한 불빛을 밝혀놓은 동궁과월지 풍경은 근사했다. 부모님도 너무 예쁘다며 연신 휴대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셨다. 온 가족이 천천히 걸으면서 한 바퀴를 다 돌았다.


 아이는 나오는 길에 있는 기념품숍에서 고른 달에 걸린 첨성대 마그네틱. 낮에는 첨성대에 별 관심 없어하는 것 같더니만 나름 인상 깊었나 보다. 지금은 우리 집 냉장고 문에 잘 붙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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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잔 하면서 여행 첫째 날 마무리. 숙소에는 '선덕여왕 에일', '경주 라거' 같은 지역 생산 수제맥주도 파는데 왠지 손이 안 가서 사 마시지는 않았다. 요즘 들어 지역명을 붙인 나름 지역 고유의 술들이 점점 늘어나던데 어째 입맛에 맞는 게 별로 없어서다. 과거 은평구 응암동에 살 때 자주 들르던 맥줏집 브릭하우스79의 '은평에일'이나 강릉 버드나무 브루어리의 맥주 빼고는 썩 맛있게 마셨던 기억이 드물다. 기껏 여행 와서 여행지의 맛과 멋에 흠뻑 빠지지 못하고 또다시 엉뚱한 소리나 해 대고 있다. 지금-여기에 충실해야지 그때-거기에 자꾸 머무려고 하면 안 되는데. 요즘 들어 자꾸만 예전  추억을 떠올리고, 그때 참 좋았지 하며 한숨을 쉬고,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과거로 돌아가는 망상에 자주 빠져있는 걸 보면 아재가 되어도 단단히 되었다 싶다. 이래서야 소위 '영 포티'니 '트민남'이니 하는 사람이 되긴 글렀다. 이렇게 경주 가족여행의 첫째 날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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