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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Dec 11. 2024

아들의 킨더조이 초콜릿을 몰래 먹는 아빠

우리가 지난여름에 먹은 것들 (2) : 킨더조이 초콜릿과 이것저것

1. 킨더조이 초콜릿


 아이를 키우기 전엔 '킨더조이' 초콜릿이라는 걸 먹어 본 적 없었다. TV에서 광고를 보기는 했다. 행복한 미소를 띤 외국인 아기들이 나오길래 수입산 초콜릿인가 보다, 하는 생각에 잠시 빠졌을 뿐. 딱히 연이 이어지지는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올해부터 킨더를 시도 때도 없이 보게 됐다. 보는 것뿐 아니라 수시로 사 먹기도 됐다. 다섯 살 아이가 드디어 달콤한 과자의 맛에 눈을 떴기 때문이다. 초콜릿도 젤리도 아이스크림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환장하고 달려드는 아이를 보며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런 거 많이 먹으면 이가 썩어. 그리고 밥맛도 없어져." 하지만 부모의 이런 말이 귀에 들어올 리가. 편의점이나 마트 앞을 지나갈 때마다 사줘 사줘 먹고 싶어, 하며 떼쓰는 아이. 어린이집에서 하원할 때마다 아이와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아예 사 주지 않을 순 없으니 몇 가지 규칙을 정했다. 아이와 새끼손가락을 꼭꼭 걸며 말했다. 과자 같은 건 주말에만 먹는 거야. 평일에는 절대 안 사는 걸로 하자.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되니까 한 번에 딱 하나씩이야. 다만 어린이집 친구 부모님들이 나눠주는 건 먹을 수 있고, 혹시나 소아과 병원에 가거나 하는 날은 위로차(?) 사 줄게. 그리고 밤에 자기 전에 양치 진짜 진짜 잘해야 돼. 안 그러면 이가 아야 해서 치과 가야 돼. 아이는 이런 약속을 그럭저럭 지켰다.


 아이의 마음이란 원체 변덕스러워서 지금은 하리보 젤리를 가장 좋아한다. 하지만 한동안은 매일 같이 킨더조이 초콜릿을 입에 달고 살았다. 알고 보니 킨더도 종류가 여러 가지였다. 우유 함량이 높은 킨더 초콜릿, 헤이즐넛이 들어간 막대 모양의 킨더 부에노, 그리고 알처럼 생긴 킨더조이. 이 알에는 초콜릿과 함께 엄지손가락 크기의 조그마한 장난감이 들어있는데 요걸 뜯어보는 게 또 하나의 재미였다. 곁에서 보고 있으니 나도 갖고 싶어 질만큼 꽤나 귀여운 것들이 뿅 하고 튀어나왔다.


 그래서 나도 아이가 없을 때 혼자서 몰래 킨더조이 초콜릿을 사 먹는다. 일하다가 생각날 때마다 회사 지하 1층에 있는 편의점으로 가서 하나씩. 계산을 마치자마자 알을 반으로 쪼개서 초콜릿은 한편에 놓아두고 장난감부터 뜯어본다. 이번에는 과연 어떤 귀여운 녀석이 나오려나. 최근에는 노란색 도마뱀, 까만 표범, 얼음판을 딛고 선 펭귄 같은 것들이 나왔다. 다행히 한 번 나왔던 게 또 나오거나 못생긴 게 당첨된 적은 없다. 나는 의외로 뽑기 운이 좋은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문득 어릴 적 포켓몬빵이나 핑클빵을 사 먹던 때도 생각났다. 하굣길에 동네 슈퍼마켓에 들러 피카츄나 이진 스티커가 나왔으면, 하고 기도하며 빵 봉지를 뜯었더랬다. 포켓몬은 꼭 피카츄가 아니더라도 다들 귀여웠다. 하지만 핑클빵 봉지에서 나온 게 이진도 이효리도 성유리도 아닌 옥주현일 땐 "아이 씨, 옥주발이잖아." 하면서 스티커를 버리곤 했다. 한참 늦었지만 옥주현 씨, 미안합니다. 그땐 제가 어려서 뭘 몰랐습니다. 어릴 적 나와 달리 아이는 모든 동물 장난감들을 차별 없이 두루 좋아한다. 아이가 나보다 낫다.  






2. 복숭아와 자두, 그리고 아이스크림


 여름에 먹어야 제맛인 것들이 있다. 수박과 복숭아와 자두와 옥수수와 감자 같은 과일들. 아이에게 너는 무슨 과일을 제일 좋아하니, 물으면 일말의 고민도 없이 '수박', 그리고 '복숭아'를 외친다. 이번 주엔 올여름 첫 복숭아를 먹었다. 수박은 아직 일러서 맛이 덜하지만 지난달에 이미 개시했다.


 어느 날엔 저녁밥을 먹고 간식으로 복숭아를 내줬다. 아이는 입을 헤벌죽거리고서 제 것이라면서 죄다 제 앞으로 끌고 갔다. 열 개 중 일고여덟 개가 자기 거고 나머지만 엄마 아빠 거란다. 누구한테 뺏길세라 동작이 재빠르다 아주. 밥 먹을 땐 깨작깨작 한없이 느린데 간식을 먹을 때는 누구보다 빠르다. 요놈아, 밥을 그렇게 먹어봐라, 했더니 아이는 씩 웃기만 했다.


 복숭아가 물릴 때 즈음에는 자두를 먹었다. 역시나 "다 내 거야."라고 외치며 자두를 담아놓은 그릇을 가져가는 아이. 그렇게 욕심부리면 안 돼, 나눠 먹어야지, 라며 몇 번을 가르쳐야 겨우 그릇을 움켜쥔 손에 힘을 푼다. "대체 누굴 닮은 거야?" 아내와 나는 서로의 탓을 한다. 우리 둘 다 어렸을 때 식탐 따위 없었다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의 동생이 어렸을 적 그랬다. 제가 다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아들아, 너는 삼촌을 닮은 구석도 있구나.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는 네 삼촌. 맛있는 자두를 먹다 불현듯 눈이 시큰해졌다.


 하지만 이러나저러나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여름 음식은 아이스크림이었다.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구슬 아이스크림을 한 숟갈 한 숟갈 조심스레 떠먹는 모습이 기억난다. 한 알이라도 흘릴까 봐 조심스러웠던 동작. 포도맛 폴라포도 쪽쪽 빨아먹었다. 끝부분에 남은 한 방울도 모두 다 제 것이라며 아빠에게는 한 입도 주지 않았다. 동네 젤라토집 '다레젤라또'에도 때때로 들렀다. 나는 바닐라, 아이는 레몬, 엄마는 딸기맛으로. 하루는 아이스크림을 너무 많이 먹어서 배탈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는 다음날에도 아이스크림 가게로 향했다.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선물 받았던 날. 곱게 잘라서 아이와 아내와 함께 셋이서 이틀에 걸쳐 나눠 먹었다. 셋 다 양이 많지 않은지라 한 번에 다 먹을 수는 없었다. 케이크 상자에는 배스킨라빈스를 뜻하는 BR이 적혀 있었다. 아이는 길을 가다 본 적 있는 간판 BR을 기억하고서는 "그게 아이스크림 가게였어!" 하고 외쳤다. 배스킨라빈스는 무려 서른한 가지 맛이 있어서 써리원, 이라고 불렀다고 하니 더욱 놀라 했다. "아이스크림 맛이 서른한 개나 있다고?!" 지금은 예전보다 더 많을 거라고 하니 이제부터 하나씩 다 먹어 볼 거란다. 그 말을 하며 눈빛이 반짝반짝거렸다.


 더운 여름마다 하나씩 맛보면 더 이상 여름이 더위로 괴롭지 않고 얼음빛 설렘으로 가득 찬 계절이 될 수도 있겠다. 어린 왕자를 기다리는 여우처럼 우리도 아직 오지 않은 다음 여름을 기다리며 행복할 수 있겠다 싶다.






3. 타코


 오랜만에 동네 타코집 '마냐나'에 들렀다. 타코가 먹고 싶지만 멀리 유명한 가게를 찾아 나갈 수 없을 때 여기도 괜찮은 선택지다. 무엇보다 동네 밥집에서는 운전 걱정 없이 술 한 잔 들이켤 수 있으니 좋다. 살얼음이 살짝 언 시원한 마가리타 한 잔에 매콤한 새우 타코 몇 개 집어먹으면 더위로 죽었던 입맛이 되살아난다. 코로나 맥주를 병째 거꾸로 꽂아 넣은 코로나리타면 더 좋은데 안타깝게도 이 집에는 그걸 안 판다.


 다섯 살 아이는 아직까지 매운 걸 못 먹으니 새우 아보카도 샐러드와 토마토 파스타를 시켜줬다. 우리는 옆에서 각자 타코 두 개씩을 먹고 마가리타를 마셨다. 아이도 이제 조금은 매운 걸 먹을 수 있다면서 우리 타코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제가 오늘 어린이집에서 빨간색 깍두기를 세 개나 먹었다면서 이 정도는 문제없단다. 그래 놓고서는 금방 쓰읍, 하아, 거리면서 얼음물을 연신 들이켰다.


 가게에서는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의 '찬찬'이나 집시킹스의 '볼라레' 같은 음악들을 틀어놓고 있었다. 밥을 다 먹을 때 즈음에는 카를로스 조빔의 <Wave> 앨범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온다. 시끄러운 최신가요 따위가 아니라 타코집에 맞는 음악이라 듣기 좋다. 기분 좋게 배가 부른 상태에서 기분 좋게 고개를 까딱거리게 된다. 이국의 음식을 먹으면서 이국의 음악을 들으니 문득 이국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어졌다.


 그러고 보니 때가 되었다. 아이도 이제 다섯 살, 만으로 네 살이 되었다. '여기 어때' 광고 문구 같은 표현이지만, 이제 다른 나라로 여행을 떠날 때도 되었다. 그렇잖아도 최근에 아이의 어린이집 친구들이 베트남이니 미국이니 일본이니 다녀왔다면서 자랑하는 걸 들었다. 요즘 말로 '개근거지'라는 게 있다잖나. 남들이 하는 걸 꼭 따라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여럿 사이에서 우리 아이만 할 말이 없어 오도카니 앉아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가슴이 아려온다.






 4. 동네 중국집과 홀리차우의 몽골리안 비프


 동네에 '소호'라고 새로운 중국집 체인점이 문을 열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것처럼 우리도 새 가게에 들러봤다.


 실은 여기에서 포장해서 먹어 본 적 있는데 의외로 괜찮은 맛이어서 매장에서도 직접 먹어보고 싶었다. 포장 때 먹은 것들은 괜찮았지만, 단 하나 몽골리안 비프만큼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뿐 아니라 아내도, 아내의 고모님도, 아내의 할머님도 똑같은 평을 했다. "아무래도 이태원 홀리차우의 그것만큼은 아니구먼." 하면서.


 아내와 아내의 가족들은 이태원 인근에서 오래 살았다. 아메리칸 차이니즈 레스토랑, 하면 많이들 얘기하는 홀리차우도 처음 생겼을 때부터 다녔다고 한다. 그러니 어느 중식집에 가더라도 예전의 홀리차우 음식이 하나의 기준점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이태원 홀리차우는 이제 사라져 버려서 우리에게는 그곳이 마치 전설처럼, 사라진 대륙 아틀란티스처럼 남아버렸다. 교과서에서 배운 어느 시의 구절처럼 아아, 꿈엔들 잊힐리야, 같은 곳.


 여하튼 동네 식당에 들러서 이곳만의 장점, 역시나 술을 한 잔 할 수 있다는 걸 누려보자. 자리에 앉자마자 시원한 하얼빈 한 병 시켜서 홀짝거렸다. 곧이어 탕수육과 멘보샤와 짜장면 곱빼기를 먹었다. 의외로 튀김 종류가 제법이라 술이 술술술 들어갔다. 짜장면도 괜찮겠거니, 하고 먹었더니 의외의 맛이 느껴졌다. 아내와 눈이 마주쳤는데 나와 같은 생각을 했나 보다. 웃으면서 말했다. "이거 코로나 때 우리가 집에서 해 먹던 밀키트 짜장면 맛인데?"


 분명 배부르게 먹고 나왔는데 어째 맛있는 짜장면이 고파졌다. 젓가락을 대기도 전인데 콧속으로 불내음이 확 느껴지고, 진득하고 달큼한 춘장과 기분 좋은 기름 맛이 혀끝을 간질이는, 참말로 맛있는 간짜장. 그런 게 먹고 싶어졌다. 아아, 짜장면. 불러도 대답 없는 그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그 이름이여. 아내에게 다음번엔 맛있는 간짜장을 하는 중국집으로 찾아가자고 약속했다.


 그나저나 아직도 정지용의 <향수>나 김소월의 <초혼> 등의, 교과서에 실려있던 시 구절들이 생각나는 걸 보니 내가 국어교육을 전공하긴 했나 보다. 전공과 전혀 상관없는 직장에 다니면서 그 사실을 종종 까먹곤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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