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벗고 거울 앞에 서봤다
"산후조리 진짜 잘해야 해. 그때 잘 못하면 평생 후회한다."
출산했다는 소식을 듣고 연락 온 지인들이 입을 모아 강조했다. 찬 거 먹지 않기, 양치 안 하기, 머리카락 잘 말리기, 최대한 씻지 않기, 딱딱한 거 안 먹기 등등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산후조리는 끝도 없다. 이에 무색하게, 주치의 선생님의 권고는 하루 한두 번 좌욕을 하면 회음부 회복에 도움이 될 거라는 것, 딱 하나였다.
출산 뒤 내 몸 상태는 꽤 좋았다. 2박 3일 병원에 머무는 동안 딱히 붓기도 없었다. 병원에서 제공해주는 다리 마사지기는 딱 한 번만 썼다. 출산 다음날 샤워도 했고, 머리카락도 따로 말리지 않았다. 출산하고 4시간도 안 돼 양치도 했다.
출산이 체질인가, 라는 자신감은 산후조리원에 가자마자 무너졌다. 출산한 지 3일째가 되면서 종아리와 발목, 발이 퉁퉁 붓기 시작했다. 워낙 안 붓는 체질이라 퉁퉁 부은 몸이 꽤 충격이었다.
그제야 한 귀로 듣고 흘렸던 경고들을 떠올렸다.
외숙모는 한 달 동안은 양치를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따뜻한 물을 거즈 손수건에 묻혀 치아를 닦아내는 정도로도 충분하다며, 특히 찬물 양치는 절대 금지라고 경고했다.
산후조리원 마사지 선생님은 출산 뒤 머리카락을 제대로 안 말려서 두피로 산후풍이 온 산모를 안다고 했다. 두피가 시리다니. 충격적이다.
출산 뒤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골반과 무릎, 허리 비대칭으로 평생 고생했다는 이야기는 어릴 때부터 들었다.
어느 나라 여성들은 애 낳자마자 반팔 입고 외출한다던데, 대대로 뜨끈히 불 때 산후조리해온 민족은 어쩔 수 없나.
우리의 아기 백일 챙기는 전통엔 아기 생존뿐 아니라, 산모 회복을 축하하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백일을 기점으로 부부가 합방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오늘날의 산후조리 관련 전문가들도 짧게는 4~6주, 보통은 백일, 길게는 1년을 산후조리기간으로 잡는다.
퉁퉁 부어올랐던 종아리는 산후조리원에서 나올 무렵(출산 2주 뒤) 거의 회복이 됐다. 회음부와 항문의 회복은 더 빨라서 조리원에 머무는 동안 고통이 사라질 정도였다. 발목과 발의 붓기는 조금 더 오래갔다. 다 빠진 건 출산 4~5주 뒤쯤.
조상님들은 붓기 빠지라고 호박즙을 먹었다던데, 아이러니하게도 호박즙은 모유를 마르게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호박죽은 괜찮다는 이야기가 있어 나는 시어머님이 쒀주신 호박죽을 잘 먹었다.
회음부와 항문의 상처, 붓기가 출산 2~4주 사이 사라진 출산의 흔적이었다면 지금도 몸에 남아 나를 속상하게 하는 것 중 하나는 '임신선'이다.
임신하면 누구든 피할 수 없는 게 임신선. 조금 옅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내 배 중앙을 선명히 세로로 가르고 있다. 들여다볼 때마다 신경 쓰인다. 1~2년 내에 사라진다는 말만 믿고 있다.
더 속상하고 걱정되는 건 배와 가슴. 엄청나게 부풀어올랐던 배는 출산 뒤 쪼그라들면서 피부가 느슨해졌다. 바람 빠진 풍선 마냥 힘이 없다. 운동 열심히 하면 회복되겠지라며 희망 회로를 돌리고 있긴 한데, 바쁜 워킹맘에게 운동할 시간이 있을까.
출산 뒤 젖이 돌기 시작한 양 가슴은 지금이야 빵빵하게 차올랐지만 수유가 끝나면 마찬가지로 쪼그라든다. 목욕탕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할머니 가슴이 떠오른다. 노화의 결과인 줄만 알았지, 수유의 영향이 못지않게 크다는 건 전혀 몰랐다. 교정 속옷과 마사지로 도움받을 수 있다고는 하는데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건강을 생각하면 관절 곳곳도 걱정이다. 출산으로 한껏 벌어졌던 관절은 회복이 안 됐지만 육아를 안 할 수는 없는 노릇. 수유한다고 한참 같은 자세로 앉아 있다가 일어서면 허리에서 두두둑 소리가 난다. 아기 안고 일어섰다 앉았다를 하다 보니 슬슬 무릎도 아프다. 손목이 시큰거린 건 훨씬 이전부터였다.
최소 백일 간은 몸 아끼려고 무진장 노력 중인데, 그래봤자 임신 전보다도 몸을 더 쓴다. 생각보다 아기는 빨리 크고, 꽤 무겁다. 같은 주수 아기들보다 몸무게가 적은 편인 우리 일단이도 70일 만에 거의 6kg에 이르렀다.
그래서 몸은 좀 회복됐냐는 질문을 받으면 난감하다. 회음부와 항문의 상처, 산후 붓기 정도를 빼면 회복된 게 없다. 오히려 육아 때문에 더 안 좋아질 위험에 처하면 처했지. 구구절절 이야기하기 구차해서 잘 회복 중이라 말하고 만다.
맘카페를 둘러보면 출산 뒤 산후조리를 제대로 못해 여기저기 아픈 사람, 바뀐 체형과 늘어진 가슴 때문에 자존감이 낮아진 사람들의 토로가 흔하다.
여자로서 인생이 끝난 것 같다는 사람, 남편의 애정이 떠나갈 것을 걱정하는 사람, 가슴 망가지는 게 싫어서 모유수유하지 않는 사람, 모유수유 뒤 가슴 성형하는 사람 등등.
몸만큼이나 마음도 산후조리가 필요하다는 게 절절히 느껴진다. 아니지. 몸 산후조리야 어쩔 수 없이 시간이 걸리니, 더 급히 챙겨야 하는 건 마음 산후조리인듯 싶다.
내친 김에 벌거벗은 내 몸을 가만히 들여다 본다. 눈길 닿는 곳마다 짠해진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고, 몸이 참 애썼다. 탄력 잃은 배에 로션이라도 듬뿍 발라본다.
어느덧 출산 10주 차다. 큰맘 먹고 회당 5만 원 하는 1:1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멈췄던 글쓰기와 요가도 틈틈이 다시 하고 있다. 오랜만에 제대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엊그제부터 앞니가 시리다. 잘 참다가 처음으로 논알코올 맥주를 빨대 없이 쭉 마셨는데 그게 문제가 된 것 같다.
신도 너무하지. 열 달이나 품으며 영양소 다 내줬으면 출산 뒤엔 엄마가 푹 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젖 정도는 아빠가 주도록 했어야지!
산후조리고 뭐고 차가운 맥주를 벌컥벌컥 마셔버리고 싶다. 논알코올 말고 알코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