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꽁치리 Dec 02. 2021

출산 뒤 나를 가장 속상하게 하는 것

 옷을 벗고 거울 앞에 서봤다

"산후조리 진짜 잘해야 해. 그때 잘 못하면 평생 후회한다."


출산했다는 소식을 듣고 연락 온 지인들이 입을 모아 강조했다. 찬 거 먹지 않기, 양치 안 하기, 머리카락 잘 말리기, 최대한 씻지 않기, 딱딱한 거 안 먹기 등등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산후조리는 끝도 없다. 이에 무색하게, 주치의 선생님의 권고는 하루 한두 번 좌욕을 하면 회음부 회복에 도움이 될 거라는 것, 딱 하나였다.


출산 뒤 내 몸 상태는 꽤 좋았다. 2박 3일 병원에 머무는 동안 딱히 붓기도 없었다. 병원에서 제공해주는 다리 마사지기는 딱 한 번만 썼다. 출산 다음날 샤워도 했고, 머리카락도 따로 말리지 않았다. 출산하고 4시간도 안 돼 양치도 했다.


출산이 체질인가, 라는 자신감은 산후조리원에 가자마자 무너졌다. 출산한 지 3일째가 되면서 종아리와 발목, 발이 퉁퉁 붓기 시작했다. 워낙 안 붓는 체질이라 퉁퉁 부은 몸이 꽤 충격이었다.


출산 3일 뒤 부어오른 내 발. 이와중에 선명한 여름 샌들 자국ㅋ


그제야 한 귀로 듣고 흘렸던 경고들을 떠올렸다.  


외숙모는 한 달 동안은 양치를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따뜻한 물을 거즈 손수건에 묻혀 치아를 닦아내는 정도로도 충분하다며, 특히 찬물 양치는 절대 금지라고 경고했다.


산후조리원 마사지 선생님은 출산 뒤 머리카락을 제대로 안 말려서 두피로 산후풍이 온 산모를 안다고 했다. 두피가 시리다니. 충격적이다.


출산 뒤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골반과 무릎, 허리 비대칭으로 평생 고생했다는 이야기는 어릴 때부터 들었다.


어느 나라 여성들은 애 낳자마자 반팔 입고 외출한다던데, 대대로 뜨끈히 불 때 산후조리해온 민족은 어쩔 수 없나.


우리의 아기 백일 챙기는 전통엔 아기 생존뿐 아니라, 산모 회복을 축하하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백일을 기점으로 부부가 합방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오늘날의 산후조리 관련 전문가들도 짧게는 4~6주, 보통은 백일, 길게는 1년을 산후조리기간으로 잡는다. 


퉁퉁 부어올랐던 종아리는 산후조리원에서 나올 무렵(출산 2주 뒤) 거의 회복이 됐다. 회음부와 항문의 회복은 더 빨라서 조리원에 머무는 동안 고통이 사라질 정도였다. 발목과 발의 붓기는 조금 더 오래갔다. 다 빠진 건 출산 4~5주 뒤쯤.


조상님들은 붓기 빠지라고 호박즙을 먹었다던데, 아이러니하게도 호박즙은 모유를 마르게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호박죽은 괜찮다는 이야기가 있어 나는 시어머님이 쒀주신 호박죽을 잘 먹었다.


회음부와 항문의 상처, 붓기가 출산 2~4주 사이 사라진 출산의 흔적이었다면 지금도 몸에 남아 나를 속상하게 하는 것 중 하나는 '임신선'이다. 


임신하면 누구든 피할 수 없는 게 임신선. 조금 옅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내 배 중앙을 선명히 세로로 가르고 있다. 들여다볼 때마다 신경 쓰인다. 1~2년 내에 사라진다는 말만 믿고 있다.  


더 속상하고 걱정되는 건 배와 가슴. 엄청나게 부풀어올랐던 배는 출산 뒤 쪼그라들면서 피부가 느슨해졌다. 바람 빠진 풍선 마냥 힘이 없다. 운동 열심히 하면 회복되겠지라며 희망 회로를 돌리고 있긴 한데, 바쁜 워킹맘에게 운동할 시간이 있을까.


출산 뒤 젖이 돌기 시작한 양 가슴은 지금이야 빵빵하게 차올랐지만 수유가 끝나면 마찬가지로 쪼그라든다. 목욕탕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할머니 가슴이 떠오른다. 노화의 결과인 줄만 알았지, 수유의 영향이 못지않게 크다는 건 전혀 몰랐다. 교정 속옷과 마사지로 도움받을 수 있다고는 하는데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건강을 생각하면 관절 곳곳도 걱정이다. 출산으로 한껏 벌어졌던 관절은 회복이 안 됐지만 육아를 안 할 수는 없는 노릇. 수유한다고 한참 같은 자세로 앉아 있다가 일어서면 허리에서 두두둑 소리가 난다. 아기 안고 일어섰다 앉았다를 하다 보니 슬슬 무릎도 아프다. 손목이 시큰거린 건 훨씬 이전부터였다.

어떻게든 잘 버텨보겠다며 불끈 쥔 주먹. 산후조리원에서 신랑이 찍어준 사진.  저때는 손목은 괜찮았는데..


최소 백일 간은  아끼려고 무진장 노력 중인데, 그래봤자 임신 전보다도 몸을  쓴다. 생각보다 아기는 빨리 크고,  무겁다. 같은 주수 아기들보다 몸무게가 적은 편인 우리 일단이도 70 만에 거의 6kg 이르렀다.


그래서 몸은 좀 회복됐냐는 질문을 받으면 난감하다. 회음부와 항문의 상처, 산후 붓기 정도를 빼면 회복된 게 없다. 오히려 육아 때문에 더 안 좋아질 위험에 처하면 처했지. 구구절절 이야기하기 구차해서 잘 회복 중이라 말하고 만다.


맘카페를 둘러보면 출산 뒤 산후조리를 제대로 못해 여기저기 아픈 사람, 바뀐 체형과 늘어진 가슴 때문에 자존감이 낮아진 사람들의 토로가 흔하다. 


여자로서 인생이 끝난 것 같다는 사람, 남편의 애정이 떠나갈 것을 걱정하는 사람, 가슴 망가지는 게 싫어서 모유수유하지 않는 사람, 모유수유 뒤 가슴 성형하는 사람 등등.


몸만큼이나 마음도 산후조리가 필요하다는 게 절절히 느껴진다. 아니지. 몸 산후조리야 어쩔 수 없이 시간이 걸리니, 더 급히 챙겨야 하는 건 마음 산후조리인듯 싶다.


내친 김에 벌거벗은 내 몸을 가만히 들여다 본다. 눈길 닿는 곳마다 짠해진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고, 몸이 참 애썼다. 탄력 잃은 배에 로션이라도 듬뿍 발라본다.


어느덧 출산 10주 차다. 큰맘 먹고 회당 5만 원 하는 1:1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멈췄던 글쓰기와 요가도 틈틈이 다시 하고 있다. 오랜만에 제대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엊그제부터 앞니가 시리다. 잘 참다가 처음으로 논알코올 맥주를 빨대 없이 쭉 마셨는데 그게 문제가 된 것 같다.


신도 너무하지. 열 달이나 품으며 영양소 다 내줬으면 출산 뒤엔 엄마가 푹 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젖 정도는 아빠가 주도록 했어야지!


산후조리고 뭐고 차가운 맥주를 벌컥벌컥 마셔버리고 싶다. 논알코올 말고 알코올로! 

육퇴(육아퇴근) 후 빨대 꽂고 마시는 논알코올 맥주가 요즘 유일한 낙.


작가의 이전글 코로나 시국의 분만은 어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