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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꽁치리 Dec 15. 2023

임신 20주에 돌입한 내 동생에게

아들 가진 엄마로 살아갈 우리 자매 화이팅

너가 글 쓴 지 한 달이 됐네.

그사이 올해는 2주밖에 안 남았고.


우리집엔 크리스마스 트리를 꾸며뒀어.

작년에 이어 두 번째 겨울이야. 트리가 있는.


우리 둘 다 중학생이 됐을 무렵인가.

엄마아빠가

”이젠 너희가 커서 크리스마스 트리는 그만 만들려고“

라고 했던 게 생각 나. 그때 참 서운했거든.

그냥 집에 있는 침엽수 화분에 전구를 두르고

몇 가지 장식을 했을 뿐이었지만

크리스마스 트리가 빠진 겨울은 많이 허전했지.

내가 더는 어린이가 아니구나- 싶어 그랬나.


나는 요즘에도 문득문득

‘우리집에 아기가 있다니!’라는 생각을 해.


양수가 터져서 병원으로 가던 한밤 중 차 안에서

“이제 곧 우리집에 아기가 있을 거야!“

라면서 신기해하던 때처럼. 요즘도 신기해.


요즘 너도 그러겠지?  

둥둥이가 아들이란 것도 알았고

눈과 얼굴이 동그랗다는 것도 알았고

20주가 되었고 태동도 느껴지고

어떨 땐 교감을 하는 것 같고.

하나둘 구체적인 정보가 늘어가니

나도 둥둥이가 더욱 보고싶다.


문득 20주 무렵 나는 어땠나 싶어 일기를 들춰봤어.

맘카페를 들락거리며 봤던 몇 가지에 대해 적어둔 게 재밌어서 공유해.




여전히 많은 집에서 아들이면 항렬을 따라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엄마들이 느끼는 상실감이 크다는 것. 성씨도 남편 성을 따르는 게 보편적인데, 마지막 글자까지 내어주니 박탈감이 클 수밖에. 마지막 자존심이라며 가운데 글자는 자기가 짓겠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아들과 딸에 대한 굉장히 다른 기대들도 흥미로웠다.

누군가가 왜 딸 원하는 사람이 더 많은 거냐는 질문을 올렸는데, 댓글들이 엄청 많이 달렸다.


한 줄 요약이라 할 만한 말이 있었는데, 딸은 나중에 남편 없이도 집에 찾아올 것 같지만 아들은 며느리까지 같이 오지 않으면 안 올 것 같다는 것.


특히 ‘사위’는 가까운데 ‘며느리’는 멀게 느껴진다는 것.


여러 가지 함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딸이 좀 더 원가족에 밀착돼 있을 거라는 기대, 시부모와 며느리라는 관계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 아들은 얼른 독립 시키는 게 당연한 전제..


세월이 많이 흘렀고 사회는 많이 변했지만 참 여전히 딸과 아들은 이렇게도 다른 존재로 키워지는구나 싶다.




둥둥이 이름에 대해 고민 중이려나?

혹시 항렬을 따라야 하는 상황이려나?


나는 다행히 전적으로 우리 마음대로

로 이름을 정할 수 있는 환경이었는데

너는 어떠려나 모르겠다.


작년이었나. 아빠가 그러더라.

“로 성이 이 씨여서 더 가깝게 느껴지고 좋다”.


그러고보면 아기 이름을 두고

항렬을 따라야 하네, 내가 이름을 짓고 싶네

왈가왈부하는 쪽은 거의 언제나 남자 쪽이지.

이젠 엄마 성을 따라도 된다지만

그것마저 혼인신고할 때 미리 신고를 해야만 하고.


부당해. 생각할수록 부당해.

아빠 쪽이 친가고,

엄마 쪽이 외가인 것도.


로에게 나는 부지런히

우리 엄마아빠를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가르쳐.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아니라.


불평등한 단어라고 미디어에서도 여러차례 언급됐고

개인이 생활에서 바꿔가야할 단계!

아들이니까 더욱더 열심히 교육 시켜야지.

둥둥이도 이모가 일찌감치 교육 시킨다.

괜찮지? 안 괜찮아도 날 말릴 수 없을걸.


아들 가진 엄마로서 힘내자.

우리의 아들은 더 자유로운 인간이 될 거야.

남자라서, 여자라서-이런 규범에서 더 자유로운.


20주. 임신 중기에 들어선 걸 축하해.

하루하루 구체화되어 가는 둥둥이와

함께할 나날을 구체적으로 그리며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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