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로 잘 사는 사람들은 그 이유가 다양하다. 원래 부모님이 물려준 유산이 많이 있거나. 아니면 운 좋게 하는 일마다 잘 풀려서 성공했거나, 아님 두뇌가 명석해서 기업의 경영을 잘하였거나 등등...,
이름도 근사한 모나코는 어떻게 부자나라가 됐을까? 모나코 역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외세의 침입이 잦았다.
16세기에는 에스파냐가 17세기에는 프랑스로부터 번갈아 지배받았고 나폴레옹 시대에는 아예 프랑스에 합병되기까지 하였다. 겨우 프랑스 보호하에 독립국이 되었지만 프랑스에 의지했던 경제는 급속도로 악화되어 국가존립 위기를 맞기도 했다.
모나코가 부자나라의 반열에 오른 것은 카지노를 합법화하여 관광산업을 유치하는 데 성공하였기 때문이다. 조상이 물려준 기반도 운도 아닌 미래의 산업을 예측하여 국가운영을 잘한 결과이다.
에즈에서 1.5유로의 시내버스 요금을 내고 모나코로 오는 동안 국경에 대한 어떤 표식도 없었다. 시내버스를 타고 다른 나라를 간다는 게 너무나 신기해서 어딘가에 작은 표지라도 있을까 하여 유심히 바라봤지만 강북에서 강남 가듯 아무런 제제 없이 버스는 언덕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매년 오월이면 이곳 모나코에서는 세계적인 자동차 경주대회인 포뮬러 원(F1)이 열리고 있다. F1 경기 역시 카지노와 함께 이 나라의 주요 관광산업이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고막을 울리는 굉음으로 정신이 혼미했다.
거리를 지나는 모나코 시민들은 커다란 귀마개를 쓰고 다녔다. 특히 어린아이들은 그들 전용의 귀마개를 착용하고 있었다. 나라에 세금을 내지 않는 이 나라 국민들로서는 나라 경제를 살리는 일이니 당연히 동참해야겠지만 나처럼 자동차에 무관심한 사람에게는 지독한 소음공해였다.
언덕 위에서 바라본 모나코는 한눈에도 부자나라의 위용이 넘쳐났다. 웅장한 건물과 넓고 푸른 공원, 하늘 높이 솟구치는 분수, 길가에 있는 작은 샵에도 고급스러운 물건으로 가득 차 있다. 앞마당처럼 펼쳐진 지중해에는 크고 작은 요트들과 크루즈, 유람선들이 정박해 있다.
지금은 오월, 모나코에서는 세계적인 자동차 경주를 유치하여 큰돈을 긁어모으고 있는 중이라서 우리 같은 배낭 여행객은 오히려 푸대접을 받는 느낌이다. 길 목 곳곳에 바리케이드를 쳐 놔서 어렵게 길을 찾아도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왕궁으로 가려고 지도를 보고 겨우 길을 찾아가 보면 역시 바리케이드가 길을 막는다. 언덕을 오르내리기를 수 십 번. 다리도 아프고 슬슬 짜증이 올라온다. 골목마다 관광객들이 우왕좌왕하며 갈길을 찾느라고 허둥댄다. 골목길에서 몇 번이나 스친 한국인 여학생과 함께 길 찾기를 하였다.
“왕궁을 가려면 어디로 가야 되나요?"
경찰 아저씨가 친절하게 가르쳐 준 길을 따라 도착해 보니 우리가 찾는 왕궁이 아닌 호화로운 패리스 호텔 앞이었다. 아마 패리스라는 단어만 듣고 여행객들이 호텔을 찾는 줄 알았나 보다.
"그레이스 켈리 왕비가 살았던 패리스가 어디죠?”
그레이스 왕비의 이름만 붙여 줬을 뿐인데 정확하게 언덕 위 왕궁으로 가는 길을 알려준다. 이 나라에서 그레이스 왕비는 첫 번째 브랜드였다.
평소라면 꼬마기차도 탈 수 있고 언덕까지 오르는 엘리베이터도 있다고 들었는데 F1은 모든 것을 무산시켰다. 왕실이 있는 곳까지 걸어서 올라 오기는 꽤 힘들었다.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는 모나코 왕실의 겉모습은 생각 외로 소박하다. 조금 전에 보았던 패리스 호텔이 더 화려한 궁전처럼 보였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남편은 왕궁보다 자동차 경기가 더 흥미로운가 보다. 왕궁이 있는 언덕으로 오자 마자 곧바로 시내가 가장 잘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자리를 잡는다. 그곳엔 이미 공짜로 자동차 경주를 구경하려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자동차들이 시내 도로를 78바퀴나 도는 경주이다 보니 위치 좋은 곳은 멀리서도 자동차 경주를 볼 수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혼자 왕궁으로 갔다.
왕궁은 왕의 휴가철에나 개방한다고 한다. 마침 근위병 교대식이 있어서 기대하고 바라보았지만 그마저 왕궁의 첫인상처럼 단출하였다. 왕궁 뒤편으로 난 길을 따라갔다. 혼자서 산책하기엔 더없이 좋은 장소다. 주변의 장미 정원과 그 사이로 난 오솔길은 눈으로만 담기에는 벅찰 정도로 아름답다. 거기에 갖가지 새들의 노랫소리까지…. 여전히 자동차의 엔진 소리는 들리지만 이곳은 바깥세상과는 단절된 다른 세상처럼 느껴진다.
그레이스 켈리 왕비가 잠들어 있는 모나코 대성당에서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들린다. 결혼식을 올린 그 장소에 자신의 묘가 있는 것도 슬픈 일이다. 모든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살았지만 갑자기 죽음을 맞이 할 수밖에 없었던 왕비의 일생이 한 편의 영화처럼 느껴지는 곳이다. 그래선지 왠지 이 성당은 낭만적인 정서가 묻어나기도 했다. 그레이스 켈리의 현대판 신데렐라 스토리가 주는 인상 때문일 것이다
몬테 카를로 카지노는 좀 전에 우리가 헤매던 언덕 아래에 있는 건물이었다. 카지노가 이 나라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만큼 건물에 들인 공도 대단하다. 거대한 분수의 물길이 돔을 이루고 있는 카지노 건물 앞 광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쉬고 있다. 이곳을 드나드는 손님들 또한 품위를 지켜야만 입장할 수 있다고 한다. 민박집 사장님이 미리 알려 주었기에 반바지나 슬리퍼 차림새가 아닌 우리 부부는 무사히 입장할 수 있었지만 자유스러운 복장의 관광객들은 입장이 허락되지 않았다. 복도의 천장에 그려진 그림과 화려한 장식품 하나하나가 박물관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모나코는 현대적인 건물이 많은 도시였다. 대부분 호텔이나 리조트, 빌라나 아파트지만 하늘로만 치솟은 고층 건물이 아닌 각각 개성이 있는 디자인으로 적절하게 색의 조화를 이룬 건축물들이다. 언덕에서 바라보면 나라 전체가 한눈에 보이는 작은 나라 모나코는 군대가 없어도 강한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어디를 가나 넘쳐나는 관광객들이 바로 이 나라의 자원이기 때문이다.
아파트 테라스에 중년 부인이 어린아이를 품에 안고 있다. '저 아이는 참 좋겠다. 태어나고 보니 부자나라의 국민이 되어 있다니'. 나도 모르게 마음의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게 조금 미안했지만 사철 좋은 기후와 국민들이 누리는 복지를 생각하면 정녕 부럽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부자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모두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열심히 노력하지 않으면 그들 역시 가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카지노에서 여권 검사를 하던 직원과 거리의 경찰들, 잠깐 쉬었던 레스토랑에서 커피를 가져다준 웨이트리스, 그리고 왕궁 앞에서 교대식을 하던 근위병들…, 이들은 내가 이곳에서 만난 이 나라 사람들이다. 선입견 때문일까, 잘 사는 나라의 사람들은 일도 즐겁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왕궁 앞 근위병을 제외하고는 모두 밝은 미소가 얼굴을 떠나지 않았다. 자신이 하는 일을 즐기면 돈은 저절로 따라오게 마련이다.
아직도 자동차의 굉음은 그치지 않고 들린다. 처음과 달리 나도 조금 적응이 되는 것 같다. 부자 나라에 적응된다는 건 참 괜찮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