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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Sep 23. 2024

명절날 놀아보니 별거 없네

'해방'이라는 말을 참 많이 듣고 자란 세대다. 태극기를 휘날리며 속박에서 벗어난 감동을 마음껏  쏟아내던 해방의 기분, 그런 기분일 줄 알았다.


추석날 새벽, 남편과 함께 성당으로 미사를 드리러 갔다. 이른 아침 성당을 가면서 전과는 다른 명절의 풍경과 마주했다. 신자들 대부분은 우리와 같은 노부부들이다.


그동안 집에서 차례를 지내다가 올 추석 처음으로 제사대신 미사로 부모님의 영혼을 위로해 드렸다.

두 분 모두 세례를 받으셨기에 마음속에 살짝 남아있는 아쉬움은 덜 했지만 사십 년이 넘게 제사를 챙겨드렸던 조부님께는 솔직히 죄송한 마음이 들었고 내가 왜 아직도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할까 조상님께 쿨하지 못한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나의 친정어머니는 평생을 제사를 위해 사시는 분 같았다. 철없는 우리들은 제사 후 풍요로운 음식이 있어 좋았지만 그건 오롯이 어머니의 희생과 정성 덕분이었다. 어머니의 소원은 단 하나 조상님이 자손들을 잘 보살펴 주는 것일 뿐, 당신의 수고로움에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런 친정어머니를 보고 자라 선 지 아직 신혼딱지를 떼지 못한 새댁이 시아버님의 제사를 선뜻 물려받았을 때도 전혀 부담을 지  않았다.


지난 사십 년 동안 최선을 다해서 제사를 모신 며느리가 왜 갑자기 탈 제사를 선언했을까?


세대가 바뀌면서 차세대 가족들은 그들만의 울타리가 형성된다. 장성한 조카들이 결혼을 하고 새로운 가정이 탄생하면 웃대인 큰집으향하던 발길은 자연스럽게 줄어들고 자신의 부모님을 구심점으로 모이게 된다. 가족의 분리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양 명절에 불참하는 가족들이 있다 보니 명절은 각자 지내자는 의견이 나왔다. 설상가상, 지난해에는 시부모님의 제사를 하루 앞두고 내가 갑자기 병원입원을 하였고 그 후로 예전만큼 건강에 자신이 없어졌다


 나라고 왜 명절 스트레스가 없었을까? 젊은 시절, 평수가 넓지 않은 아파트에 살 때는 명절이 다가오는 게 두려웠다. 추석을 전후로 달력에 붉은 숫자가 연이어 있으면 내 한숨도 길어졌다. 명절날 아침 식사를 마치자마자 친정집으로 가는 손아래 동서가 부러웠고 하루만 더 있다가 가라며 친척들을 주저앉히는 시어머님이 야속했다.  


명절에 해외여행을 떠나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내가  알 수 없는 세계에서 사는 상 속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추석날 아침. 미사를 마치고 돌아온 우리는 평소처럼 조용히 아침 식사를 했다. 귀향길 고속도로의 체증과 추석을 겨냥한 물가상승과는 전혀 무관한 나의 일상이다. 예전에 원 없이 겪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느긋함이랄까? 그렇다고 마냥 즐겁지 만은 않았다. 모처럼 헐렁해진 서울의 거리처럼 조금 여유 있는 시간을 가질  뿐이다.


오후에는 독립해서  따로 살고 있는 아들과 시댁으로 추석을 쇠러 간 딸네 가족들이 올 것이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이 드는 것도 처음이다. 우리 집으로 모이는 친척들에게 신경을 쓰느라 정작 내 아이들에게는 소홀했던 명절날이었다.


오전에 날씨가 흐려서 보름달을 볼 수 없을 줄 알았는데 구름을 헤치고 보름달이 둥싯 떠 올랐다. 옥상 발코니에 올라가 달맞이를 하였다. 뭔가에 의미를 부여하면 '더욱'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오늘 뜬 보름달은 더욱 커 보인다.


 어느 해 추석날도 오늘처럼 이곳 옥상 발코니에서 달님에게 소원을 빈 적이 있었다. 그날의 소원 역시 가족들을 위한 것이었다. 지금에 와서 뒤돌아보니 미흡한 며느리가 안간힘을 쓰며 친정어머니의 흉내를 내고 있었던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참 그렇다. 어쩌면 한때 간절히 원하던 오늘이었는데  막상 그 날을 마주하고 보니  다를 게 없다. 


중요한 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기만 했던 며느리로서의 한가위가 지금껏 생각한 것처럼 그렇게 고난하기만 한 명절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젊은 날 내 집 현관에 즐비한 식구들의 신발이 있었기에 오늘 이 한가함이 쓸쓸하지 않은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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