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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봄아 Oct 09. 2024

상실, 남겨진 고통에 대하여 #20

너의 흔적

20. 너의 흔적


저수지로 가는 골목길 한편에서 시우의 흔적을 찾다.



몇 년 전 '외계인 마을'이라고 이름 붙인 마을 프로젝트가 있었다. 지자체의 환경조성 사업 중에 하나였는데 여러 조형물 설치, 오래된 동네의 담벼락 같은 공사 등을 했었나 보다. 그중에 시우 학교 아이들의 그림으로 장식한 타일벽화를 발견했다.


작년가을에 한비와 둘이서 처음 봤을 땐 시우그림을 찾지 못했다. 아는 아이들 이름은 많이 보여서 꼭 있을 것만 같았는데 못 찾았다.


얼마 전 지인들과 저수지를 가다가 다시 한번 봤는데 그때도 역시 찾지 못했다.


지난주 혼자서 저수지를 걷고 나오는 길에 천천히 그림 하나하나를 보다 보니 시우의 그림을 찾았다. 이시우를 두 번이나 쓴 시우의 얼굴, 자화상이다. 혹시 이름을 잊어버리고 안 썼다면 그림만 보고 찾을 수 있을까 하면서 찾던 중에 마지막 담벼락 정중앙에 시우가 보였다. 너무 기뻤다.


4학년 때인 것 같다. 파란 뿔테 안경에 연두색 티셔츠를 입은 시우의 자화상.


처음 타일 벽화를 발견했을 땐 담벼락 앞 화단에 꽃이 심어져 있어서 가운데 쪽 그림이 가려져 있었다.

지금은 화단이 비워져 그림을 모두 볼 수 있어서 찾을 수 있었다. 너무 반갑고 기뻤다. 시우가 떠나고 난 후 최근 가장 기뻤던 순간이다.


마을 프로젝트가 이상한 곳에 세금을 낭비했다 생각했는데 그 사업이 진행된 게  무척 고마워졌다. 많이 감사했다.


오늘도 저수지로 운동을 가면서 그 길에 시우를 바라보고 갈 수 있어서 참 기분이 좋았다.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어떠한 실체로 존재한다는 것이 마음을 진정시킨다고 해야 되나.


시린 바람을 견딘 거칠어진 가지 위에 돋아난 연둣빛의 여린 잎으로

힘찬 생명의 숨결로 저수지와 산에 봄이 가득 찬다.


거친 파도를 품은 바다와 달리 적막한 고요를 품은 저수지

그 고요처럼 나도 잔잔해지기를 소망한다.


시우, 마치 너를 보는 듯하다.

누가 봐도 시우인지 알 수 있게 잘 그려 놓았네,


언젠가 훗날에 시우를 그리워하며 저수지를 걷고 있을 엄마를 위해서

외롭지 않게 오가는 길에 시우를 볼 수 있게 해 줬네.


고맙다  우리 아들 우리 시우





지금 모든 것이 무질서와 혼돈으로 가득 차서


어떤 것도 이 아픔을 멈출 수 없고


위로할 수 없지만


언제쯤 이 눈물을 멈출 수 있을지


상처의 피흘림을 치료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기도해 본다. 그것밖에 할 수 없어서.


아무것도 의지할 수 없어서.


높은 곳 더 먼 곳에서 나무가 아닌 숲을 바라볼 땐


혼돈으로 여겨지던 이 모든 무질서가 실제로 질서이기를


선한 질서이기를


눈물이 기쁨이 되는 날이 오기를


그 누구도 나 자신조차도 원망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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