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들 시우를 떠나보내고 난 후 뇌종양 수술과 또 후유증을 치료하기 위한 두 번의 큰 수술을 받기 전과 받은 후에도 나는 걷고 뛰었다.
아이가 보고 싶어 일상이 흔들거릴 때도 슬프고 심란할 때도 머릿속을 비우고 싶을 때도 삶이 녹록지 않아 괴로울 때도 나는 밖으로 나갔고 걸었고 뛰었다.
오직 나에게 집중하고 나의 심연과 조우하는 시간은 나를 위로했고 다시 일어날 힘을 주었다.
길가에 가로수가 공원의 꽃들이 천변의 나무들이 구름과 하늘이 계절에 맞는 옷을 입고 언제나 한결같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못 보던 나무들이 보이고 처음 보는 작은 꽃들이 눈에 담긴다.
이전에도 존재했으나 내가 보지 못한 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고 감동한다.
자연이 세상이 이렇게 아름답다고 감탄하며 슬픔은 녹아들고 존재의 감사와 다시 일어설 용기와 힘을 얻는다.
그렇게 걸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마음이 힘든 사람들에게 나처럼 밖으로 나가서 걷고 뛰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남양주에서 15 년을 살다가 2년 전 가을 서울 구로구로 이사를 왔다.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40년을 인천과 경기도에 살다가 드디어 다시 서울 시민이 되었다.
남양주라는 경기 외곽에 살다가 온 나에게 이 동네는 서울이면서도 내가 살던 교외보다 더과거로 돌아간 것 같은 동네의 후미짐과 인프라가 풍부한 도시의 편리함의 양면을 지닌 이중적이면서 낯선 곳이었다.
마음껏 뛰기에 아파트 단지는 너무 작았고 번화한 도시의 도로변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다 근처 공원을 찾아보게 되었고 고척근린공원을 알게 되었다. 한동안 그 공원에 가서 걷고 뛰었다.
어느 날 공원에 갔다가 동네도 구경할 겸 근처 작은 골목들을 무작정 걸어 다녔다. 걷다 보니 건너편 시야에 나무들이 우거진 오르막 계단이 보여 궁금해졌고 바로 그 길로 올라가 보았다. 그렇게 능골산자락길을 발견하게 되었다.
'동네 한복판에 이렇게 울창한 원시림 같은 숲길이 나있지?' 하면서 무작정 데크길을 걷다가 첫날은 길을 잃었다.
둘레길의 진입로는 아주 다채롭게 여러 갈래로 되어 있어서 둘레길에 처음인 나는 내가 어디로 진입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무작정 둘레길에 들어와 이정표도 안 보고 걷다 보니 내가 처음 시작한 길이 어딘지 찾을 수 없었다^^;; 원래도 길치인 나에게 들어온 입구를 찾는다는 건 미로게임이었다.
겨우 물어물어 고척근린공원을 찾아 나왔지만 내가 들어온 길은 어딘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둘레길을 탈출하고 안도했던 둘레길과의 첫 만남.
이 아름다운 무장애 둘레길을 발견하고 나니
고척근린공원에서 10분은 더 걸어야 올 수 있으나 그만큼 가치가 있던 이곳을 공원보다 더 자주 찾게 되었다.
봄에 철쭉동산에 철쭉이 만발하고 벚꽃이 피고 산딸나무가 차례로 꽃을 피울 때 하루하루 지는 꽃들이 아쉬워 이 둘레길과 안양천을 번갈아 출석을 하며 봄의 향연을 지켜보았다.
나만의 명당 스폿을 정해서 책도 읽으며 꽃과 나무와 봄을 즐겼다.
봄꽃도 아름다웠지만 겨울을 뚫고 나오는 야리야리한 나무의 새순은 또 얼마나 예쁜 연두색으로 나왔었는지 그 연두색이 점점 진해져 가며 싱그런 녹색으로 변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매일매일 숲은 다른 이야기를 전했다.
작년 가을부터 겨울 그리고 벚꽃이 피는 봄을 지나 여름까지는 항상 해가 저물기 전에 왔었다.
가끔 해가 넘어갈 때쯤 돌아가는 길 둘레길에 예쁜 조명이 들어오는 갓은 보았지만 주위까지 어두워지기 전에 빠르게 둘레길을 빠져나왔다. 왠지 어두워지면 무서울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에 사로 잡혀서^^;
그러다가 한여름이 되고 긴 장마에 둘레길도 안양천도 가지 못하는 날이 한동안 이어졌다.
지난주 뜨거운 한낮의 열기가 식어가는 늦은 밤에 무작정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에 도착해서 '그냥 공원이나 돌까 이 시간에 둘레길에 가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한번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무서우면 다시 돌아 나오면 되지 하면서...
어두운 밤에 도착한 둘레길은 너무 근사했다.
데크 위를 비추는 간접 조명이 어두운 숲길에 나를 위해 마련된 옐로 카펫처럼 조용히 펼쳐 저 있었다. 기대 없이 찾아온 나를 환호하게 했다.
낮에는 하늘이 뿌옇고 흐렸는데 밤이 되니 휘영청 밝은 달에 하늘이 맑아져 있었다.
너무 환하고 예뻤다!!
산책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밤이라 무서울 거란 생각은 나의 기우였을 뿐^^
이 무장애 데크길의 옆에는 능골산 자락길이라고 구로 산림형 둘레길도 있다.
봄에 매일 데크길로만 다니다가 마음먹고 등산화까지 신고서 산림형 둘레길도 섭렵했다. 역시 또 첫날은 길을 헤맸다. 산길은 데크길보다 훨씬 그 길이 그 길 같고 어렵긴 했지만 등산하는 느낌이라 또 좋았다.
도시 안에 이렇게 숲길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 신기하다.
산림형 둘레길은 내가 자주 가는 온수의 푸른수목원 근처 천왕산까지도 연결되어 있었다.
우리나라는 전국에 둘레길이 너무나 잘 조성되어 있어서 좋다고 새삼 느낀다.
특히 요즘 등산과 걷기를 하면서 더 느끼는 거지만 잘 정비된 등산로와 둘레길을 걷다 보면 감탄이 나온다. 얼마나 등산로가 잘 되어있으면 가끔 조리를 신고 산을 타는 분도 봤다^^ (그래도 산은 아무리 낮은 산이라도 꼭 등산화를 신는 걸 추천함. 흙이나 바위가 미끄럽기 때문에)
이렇게 전국 방방곡곡에 둘레길로 아름답고 멋진 자연을 편하게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준 우리나라에 대한 감사함과 자긍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나의 둘레길 코스는 고척근린공원 입구 쪽부터 덕의근린공원까지 편도 약 1.85km 정도 된다. 그 길을 왕복하고 개봉역 근처의 집까지 오면 8킬로 정도로 만보를 찍을 수 있다.
운동시간이나 거리로 따질 때 딱 적당한 코스라서 더 좋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지만 나는 아파트 단지를 다람쥐 쳇바퀴 돌듯 도는 것은 같은 운동량이라도 더힘들게 느껴진다.
운동장 같은 트랙을 돌고 뛰는 게 좋은 사람도 있고 나처럼 동네 구경하며 숲길에서 피톤치드도 마시고 긴 코스로 도는 게 좋은 사람도 있고 헬스장에서 러닝머신으로 뛰는 게 좋은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어디라도 좋으니 이제 나가서 걷기부터 시작하길권한다.
걷다 보면 빨리 걷게 되고
빨리 걷다 보면 뛰어보게 된다.
편한 옷을 입고 운동화만 신으면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언제든 가능한 걷기와 달리기.
달리면서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금세 심장이 터질듯한 심박수를 느끼며 아드레날린이 폭발하는 살아있는 나의 심장을느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