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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화음 May 18. 2021

엄마의 자기부인을 통해 얻는 집안의 평화

<결혼은 그냥, 버티는 거야> #13.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내가 보고 싶은 드라마를 보는 것도 사치였다. 어쩌다 기회가 돼서, 한편 마음잡고 볼라 하면 꼭  아이들이 말을 그렇게 시킨다. 왜 그렇게 짜증이 나는지. 결국 나의 감정의 회오리는 아이들에게로 향하고 있다.  내가 그렇게 텔레비전을 많이 보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한번 한국 드라마를 다운로드하여 기껏 볼라 하면, 아이들은 그렇게 싫어했다.  


내가 핸드폰만 붙잡아도 아이들은 자기네에게 와야 할 관심의 시간이 없어져서 그런지 엄마에게 그렇게 끊임없이 말을 건다. 안 그래도 아이 셋이서 엄마의 사랑을 분배해야 했는데, 거기다 더해 드라마나 핸드폰 따위랑 경쟁을 할 수는 없었나 보다.


"너희들끼리 알아서 놀아, 저리로 가 있어, 엄마도 엄마만의 시간이 필요해!" 라며 짜증만 내던 나는 결국 아이들에게 선심 쓰듯 이렇게 말한다.


"아 그래 그래~너희들도 유튜브 봐, 오늘만 특별히 시간을 더 주는 거다. 알겠지?"


곧 모두가 각자만의 스크린 타임을 갖는 조용한 집안이 된다.


또 아이들이 정말 어린 아가였을 땐, 낮잠 빨리 재우고 인터넷 좀 하려면 그렇게 잠을 안 자고, 오랜만에 친구랑 통화 좀 할라 하면 칭얼대는 건 기본에, 내가 뭐만 하려고 하면 맨날 고 시간에 자던 녀석들이 말똥말똥 나를 쳐다본다. 그러면 아이들 자장자장 해주던 나의 손길이 바빠지고 등도 점점 세게 두드려주고 있다.일분 일초가 어찌나 귀한지.


" 자장-자장- 그래그래 얼른 자자-코~ 자자. 자는 것도 열심히 자는 거다? 뭐든 열심히 해야 해~"


조금이라도 아이들을 일찍 재우려는 나와 조금이라도 안 자려는 아이들과의 씨름이 한바탕 치러진다.


만약, 그 시간에 내가 드라마를 보지 않고 온전히 아이들에게 관심을 표현해 주었다면, 나는 짜증 날 일도 없었겠지? 만약, 내가 아이들 재우는 동안 인터넷 하지 않고 마음 편하게 아이들 재우는 일에만 포커스 맞추었다면, 더 마음이 느긋하고 아이도 편하게 잠들었겠지?.


이런  말도  되게 작은 예들이다. 우리들에겐  많은 일들이 매일의  속에서 벌어지고,  순간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데, 그때 엄마인 내가 잠시 자신을 희생하면,  온가족이 행복해지는  다른 누림의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를 예수의 자기 부인에 비유해 보자면, 그야말로 그 당시 가장 초라한 십자가를 지는 형벌로 섬김의 끝을 보여주는,  세상  가장 낮아짐으로 인해 온 세상을 구원한 예수의 섬김의 모습과 흡사하다 하겠다.너무 거창한 비유일까? 하지만, 내 고집 잠깐 꺾는 일이라던지 내가 하고 싶은일을 잠시 미루는 것이라던지 이 모든게 나에겐 자기부인이며 성화의 과정이다.


 잘은 안되지만, 내가 가장 낮아지는 훈련을 통해, 또  나의 자아를 세우기보다, 온 가족을 구원하는 마음으로 내 가정을 살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보자. 억울하지만 내가 사라질 때(육체적인 실종이 아니라, 나의 자아나 나의 욕구의 절제 혹은 나의 고집을 누그러뜨림을 뜻함), 가족의 평화가 찾아올 수 있다.



* 번호순으로 글을 읽으시면 흐름을 이해하시는데 더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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