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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A쌤 Nov 23. 2024

식당 주인이 좋아하는 부부

우리 부부가 스스로에게 붙여 준 별명이 있는데, 바로 "식당 주인 최애 부부"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밥 먹을 때 말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왜냐면 나는 밥 먹을 때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일단 밥을 먹을 때 내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조화'이다. 나는 밥과 반찬의 비율이 맞지 않는 것을 싫어한다. 이를테면 밥을 다 먹었는데 반찬이 남거나, 반찬은 없는데 밥이 남았거나 하는 경우이다. 특히 덮밥류를 먹을 때 이 법칙이 깨지면 매우 곤란하다. 연어 덮밥에 연어가 다 떨어졌는데 밥만 남았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나는 음식을 골고루 먹는 것을 좋아한다. 어떤 반찬만 많이 집어 먹는 것을 싫어한다. 내 앞에 5가지 반찬이 있으면 5가지를 모두 균등하게 먹어야 직성이 풀린다. 시금치를 먹고 또 시금치를 먹어서도 안 된다. 시금치를 먹고 고사리를 먹은 후 동그랑땡을 먹는 순으로 겹치지 않고 고르게 먹는 게 좋다.


음식의 맛에 집중하며 먹는 것도 중요하다. 음식을 씹고 맛보며 익힘 정도를 가늠해 보고, 재료를 상상해 보는 일이 재밌다. 이 음식을 굽는다면 어떨지, 조금 덜 익힌다면 어떨지 상상하며 먹는 것도 재밌다. 주방장에 빙의하는 것이다.


이렇듯 음식 하나를 먹을 때도 온갖 생각을 하다 보니 말할 틈이 없다. 비율 지키랴, 골고루 먹으랴, 상상하랴 너무 바쁜 식사 시간이다. 그래서 나는 누구와 밥을 먹더라도 누가 말을 걸지 않는 이상 말을 잘하지 않는다.


그럼 대화가 필요한 식사 자리는 어떻게 하냐고? 아주 애석하게도 소개팅이나 꼭 말을 해야 하는 자리에서는 거의 밥을 못 먹는다고 보면 된다. 왜 그렇게 멀티가 안 되는지 모르겠다. 말을 듣고 하다 보면 밥을 먹을 틈도 없고, 먹을까 싶으면 이미 다 식어 있는 맛없는 음식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아아, 음식에 대한 예의가 아닐지어다.


나는 남편과 밥 먹을 때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는데, 다행히 남편은 불편해하지 않는다. 남편은 남자라서 그런 것일까? 남편 주변의 남자친구들도 나처럼 밥 먹으면서 말을 잘 안 한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식당에 가면 거의 15분 만에 밥을 먹고 나오는 편이다. 식사 시간 내내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음식만 먹다가 다 먹으면 바로 짐을 챙겨 나간다. 중간중간 서로에게 음식을 먹여주고 맛있어? 물어봐주는 것 말고는 할 말이 별로 없다. 음식이 나오는 중간 텀에는 말을 더러 하긴 하지만 몇 마디 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렇다 보니 가끔 식당 주인들이 놀란다. 아니, 벌써 다 드셨어요? 라며 식탁을 힐끔거리시곤 하는데, 우리가 싹 비운 것을 보면 안도하시는 것 같다. 맛없어서가 아니라 그냥 맛있어서 금방 먹고 나가는 것이니까.


우리는 식당을 나올 때마다 우스갯소리를 한다. 이번에는 10분 컷인가? 신기록이야! 와 우리 정말 밥만 먹고 나오는 사람들이네. 라면서 키득거린다. 식당 주인들은 우리 같은 손님이 좋지 않을까? 조용하고 빠르게 밥만 해치우고 나가니까 회전율도 좋고, 귀찮은 일도 없고. 우리는 나름 이런 우리가 뿌듯할 때도 있다.


남편과 여러모로 잘 맞다고 느끼는데, 특히 먹는 것에 있어 서로 트러블이 없어서 참 다행이다. 식성과 식사 습관이 비슷한 것은 생각보다 큰 행운인 것 같다. 예를 들어, 우리는 김치가 들어간 음식을 싫어하는데, 한국인으로서 흔치 않은 식성인데 공통점이라 다행이다. 냉장고에 김치 냄새나는 것만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인데 서로가 아닌 한국인과 살 수 있었을까. 둘이 만나 행운이다!(끝)


덧 : 우리 부부 둘 다 어릴 때 억지로 김치 가스라이팅을 당해서 싫어한다. 김치찌개, 김치갈비찜, 김치만두 등등 너무 싫은데 억지로 먹어야 해서 힘들었다. 같은 이유로 잡채, 묵도 매우 싫어한다. 아기를 낳으면 음식 강요는 절대 하지 말아야지. 김치 안 먹어도 잘 산다 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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