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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A쌤 Nov 10. 2024

유산하면 어쩌지?

끝없는 걱정 속의 초기 임산부

(지난 이야기)

어쩌다 뿅 임신하게 된 그녀! 마냥 기쁠 줄만 알았는데..


임신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걱정거리가 있는데, 바로 유산에 대한 걱정이다. 힘겹게 얻은 아이든 갑자기 찾아온 아이든 모두 소중한 것은 똑같다. 아무리 배아 수준이라 해도 예비 엄마에겐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다. 나는 잃는다는 상상만으로 눈물을 흘릴 수 있을 정도로 간절했었다.


그래서 나는 임신 초기에 유산에 대한 걱정 때문에 굉장히 힘든 시간을 보냈다. 딱히 건강에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희박한 유산 확률에 얼마나 겁을 먹었는지 모른다.


하루에도 열두 번 넘게 인터넷에 몇 주 차 유산 확률, 유산 종류, 유산 증상을 검색해 봤다. 검색을 해야지만 직성이 풀리는 이유가 있었는데, 나는 정보를 알아야지만 불안이 덜어지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평소에도 걱정이 많은 사람이라 나름대로의 대처 방법이 있었다. 어떻게든 많은 정보를 확보하여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것. 대부분의 일에는 예방과 대비가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유산이라는 것은 예방도 대비도 불가능한 범주의 것이었다. 초기 유산의 대표적 이유인 염색체 이상을 어떻게 예방할 수 있을까? 심지어 대부분의 유산은 원인도 명확하지 않다고 하니, 더더욱 예방과 대비가 불가능하다.


오로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무리하지 않고 가만히 있기 정도인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가만히 있어도 내게 닥쳐오는 스트레스는 방어가 안 된다. 일상 속 작은 스트레스부터 내가 스스로 만들어 내는 걱정까지… 신체적인 고통이 없어도 정신적 고통은 언제나 나를 따라다녔다.


나는 그래서 예방은 포기하고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를 줄이기로 했다. 내가 유산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수집하기로 한 것이다. 나는 임신테스트기를 여러 개 사서 매일 테스트하며 선이 흐려지지 않는지 확인했다. 화학적 유산이면 선이 갑자기 흐려지다가 하혈할 수도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임테기 선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그 전날 것과 비교해보고는 했는데 혹여나 흐려질까 봐 안절부절못했었다.


유산에 대한 걱정으로 불안과 안도, 눈물과 분노 등 온갖 감정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던 지난 몇 주간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일찍부터 입덧이 찾아와 너무 힘든 와중에 알 수 없는 전신 경련, 심한 복통에 시달려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복통에 시달릴 때면 혹시 유산된 거 아닌가 걱정돼서 병원에 달려가곤 했다. 주사도 맞고, 질정도 처방받으며 꾸역꾸역 버텨냈다.


육체와 정신은 이어져있다고, 정신이 힘드니 몸이 아팠고 몸이 아프니 정신이 쇠약해졌다. 죄 없는 남편을 들들 볶고는 미안해서 펑펑 울었고 그러다가도 격한 짜증을 부렸다.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의 증가로 인한 감정 변화라는데, 그렇다고 호르몬을 매우 칠 수는 없으니 결국 조절 못하는 내 죄올시다, 했다.


그렇게 시간은 차곡차곡 흘러 어느덧 임신 초기가 끝나가는 지금, 어느새 초연해진 내가 보인다. 이제 더 이상 유산에 대해 걱정하지는 않는다. 그냥 내 뱃속의 아기를 믿기로 했다. 아직까지도 잘 크고 있다는 것은 살아남을 만큼 충분히 강하다는 뜻 아닐까.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고 아기도 결국 태어나지 않을까.


나는 내가 서른이 되며 다 자란 줄만 알았다. 이제 이십 대의 어리숙함을 벗고 조금 더 성숙한 어른이 된 줄만 알았는데 역시나 큰 착각이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한 집착은 쉬이 내려놓아 지는 것이 아니었다. 흘러가는 대로 삶을 맡긴다는 것,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 나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을 통제하고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했을까.


내가 태어나고 죽는 것을 내 뜻대로 할 수 없듯이, 뱃속의 아기에 관한 일도 마찬가지였다. 간절한 마음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삶은 좋고 나쁨이란 없어서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모든 것은 그저 내게 밀려오고, 나는 허우적거려서라도 살아내야만 한다. 억울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길을 잃게 될 것이다. 세상을 탓하며 분노에 가득 차 살게 되겠지.


앞으로 내 뱃속에 있는 아기와 나에게 어떤 일이 닥쳐오든 나는 겸허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그저 아기가 찾아와 주었음에 감사하며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이 시간들을 충분히 즐기고 싶다. 무엇하나 쉬운 것이 없고 아프기만 한 요즘이지만, 그래도 인생에 한 번뿐인 이 순간들을 웃으며 흘려보내고 싶다. 사랑하는 내 남편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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