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빨리..?
그동안 글을 쓸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사실 좀 귀찮아서 그랬던 것도 있지만, 아무튼 세상 모두에겐 그럴듯한 핑곗거리 하나씩은 필요하지 않나.)
나는 결혼 전에 남편을 만나고 아이를 낳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그리고 결혼 후에도 이런 남자가 내 아이의 아빠가 된다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절대 애 안 낳겠다던 비관 맥시멀리스트의 생각을 바꿔 준 우리 남편 참 대단하다.
아무튼 남편에 대한 굳건한(?) 신뢰 때문이었을까, 어쩌다 보니 아기가 금방 생겨버렸다. 그것도 단 한 번의 시도로. 그럼 어쩌다 아기가 생겼느냐..
원래 우리는 신혼을 즐겨야겠다는 생각에 적어도 지금으로부터 1-2년 뒤에나 아기 가질 계획을 하고 있었다. 동료 선생님들이 신혼을 길고 알차게 가져야 육아할 때 그나마 덜 힘들다고 입을 모아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신혼에 뭘 알차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았다. 이미 결혼 전에 여행 다닐 만큼 다닌 것 같고, 뭐 딱히 흥청망청 논 것은 아니지만 놀만큼 다 논 것 같달까?
그리고 남편과 나는 그다지 활동적인 사람이 아니라 그런지 집에만 있어도 딱히 답답하지 않았다. 같이 게임하고, 영화 보고, 밥 해 먹으면 하루가 뚝딱뚝딱 흘러갔다. 굳이 거창하게 뭘 하지 않아도 만족스러웠다. 나랑 남편은 작은 것에도 행복을 잘 느끼는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다음 이벤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너무 행복하고 편안한데.. 아기를 낳으면 더 좋을지도?!라는 안일한 생각이 들어버렸다. 아기 엄마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는 내가 난임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임신 준비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었다. 생리 주기도 40일이 넘어가고 불규칙적인데 자궁 건강이 좋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산부인과 검진도 잘 안 가는 사람인데…
지금이야 젊지만 더 나이가 들면 가망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앞섰다. 만약 잘 안 되면 인공수정이나 시험관을 해야 하는데, 하도 힘들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하고 싶지 않았다. 남편도 내가 아플 바에야 아기를 안 낳겠다고 했다. 나 또한 그랬다.
그래서 남편에게 피임을 한 번 하지 말아 보자는 제안을 했다. 아이가 있든 없든 우린 상관없다고 약속했으니, 어쩌다 자연스럽게 생기면 행운이라고 생각하자고. 편한 마음가짐으로 지내다 보면 아기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단 한 번의 시도로 덜컥 임신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기쁨에 앞서 어안이 벙벙했다. 임신이 이렇게 쉬울 리가 없는데?!
우리는 곧장 산부인과에 가서 피검사를 하고 일전에 요청했던 산전검사 결과지를 받았다. 나는 산전검사 결과에 충격을 받았다. 난임일 줄 알았던 내가 이렇게나 건강했다니.. 당수치, 중성지방, 콜레스테롤 등등 모든 수치가 좋았고, 무엇보다 난소나이가 무려 20살이었다. 생리 주기가 긴 것은 내 난자가 건강하고 어려서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소견까지 들었다. 말도 안 돼. 임신 전에 밀가루도 안 먹고 당 조절을 열심히 해서 그런 것일까? 사실 나는 아직도 저 결과를 믿을 수가 없다.
더 놀라운 것은 남편의 정액검사 결과였다. 정상정자 분포며 활동성이며 밀집도, 양까지.. 모두 최상위권이었다. 운동도 잘 안 하고 나랑 집에만 있어서 살도 10kg 넘게 찐 이 남자가 “정자왕”이라니. 임신이 한 번에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그렇게 몇 시간 뒤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를 통해 피검사 결과 임신이 맞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제야 정말 내가 임신을 했구나 싶었다. 이렇게 빨리, 갑작스럽게 엄마가 될 줄은 몰랐는데.
엄마랑 친구에게 말하니 나보고 복 받았다고 했다. 엄마는 아기 생기는 게 쉬운 일이 절대 아니라고 하셨다. 엄마는 나팔관이 막혀 난임 진단을 받았었고 유산도 여러 차례 했다고 하셨다. 그러다 겨우 생긴 게 나여서 정말 귀하고 감사했다고 하셨다. 나에겐 이렇게 아기가 금방 생겨 다행이라고 하셨다. 엄마는 딸도 난임일까 봐 무척 두려웠었나 보다.
(다음에 이어서)
+덧 : 임신 초기에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죽을 것 같았는데 이제야 약간 정신을 차렸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 존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