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나는 게임에 죽고 못 산다. 남편들은 원래 게임을 좋아한다지만 아내인 나는 어떻게 된 일일까.
내가 게임이라는 무궁무진하고도 요망한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아마 초등학생 때였을 것이다. 남자 형제가 있는 여자들이 으레 그렇듯, 나 또한 남동생을 통해 게임에 입문하게 되었다. 그 당시 남동생이 보는 학습 잡지에 사은품으로 딸려 온 ‘재즈 잭 래빗’이라는 CD게임이 우리 남매의 첫 게임이었다. 나와 동생은 부모님의 눈을 피해 날마다 게임을 클리어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었다. 키보드 하나를 두고 한 명은 점프와 공격, 한 명은 이동을 맡았었는데, 한 몸을 둘이 움직이다 보니 문제가 많았다. 점프 좀 제대로 하라는 둥, 누나가 못해서 진 게 아니냐는 둥 얼마나 치고받고 싸웠는지 모른다. 그래도 얼마나 재밌었는지 화가 나도 꾹 참고 게임을 했더랬다.
어쨌든 강렬한 첫 게임의 경험 이후, 우리는 CD 게임에 그치지 않고 크레이지 아케이드, 테일즈 런너, 메이플스토리 등의 온갖 온라인 게임들까지 섭렵했다. 그럼 공부는 언제 했냐고? 초등학교 때는 대충 해도 성적이 잘 나왔는데 중학교 입학하자마자 성적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맨날 게임하고 놀다가 시험 직전에 벼락치기하는 방식이 더 이상 먹히지 않게 된 것이었다. 뭐,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성적표에 경악한 부모님이 컴퓨터를 아예 없애버린 덕분에 우리는 다시 학업에 매진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 한동안 게임을 멀리하다 고등학교 3학년 때쯤 스트레스로 미쳐버리겠던 어느 날, 심즈 1이라는 게임을 우연히 인터넷에서 발견하게 되었다. 심즈는 심이라는 인간형의 아바타를 키우는 게임인데, 실제 사람처럼 밥도 먹이고 화장실도 보내고 사회생활도 시켜야 했다. 언뜻 듣기로는 재미없어 보이지만 내 아바타를 성장시키는 재미가 꽤 쏠쏠했다. 나는 그 후 야자가 끝나면 집에 와서 잠시라도 심즈를 하고 잠들었다. 내 힘든 수험생활의 유일한 낙이었달까. 나의 재미와는 다르게 내 심즈들은 항상 집에 불이 나서 죽거나, 돈 벌어오다 과로로 죽거나, 굶어 죽기 일 수였다는 것은 비밀로 부쳐야겠지만 말이다.
공부와 게임의 적절한 조화(?) 덕분이었을까, 다행히 나는 원하던 대학교에 합격했다. 그리고 그 후 본격적인 게임 라이프가 시작되었다. 나는 남자 동기들로부터 하스스톤이라는 게임을 알게 되었다. 그 게임은 능력치가 있는 카드들로 덱을 구성하고 랜덤 하게 뽑아 상대방을 공격하는 게임이었다. 전략을 짜고 상대방을 격파하는 것이 얼마나 재밌었는지 모른다. 그러다 같은 게임사(블리자드)의 디아블로, 스타크래프, 히오스, 와우, 오버워치 같은 게임에도 관심이 갔다. 나는 방학마다 날밤이 꼬박 새우도록 게임에 매진했다. 특히 히오스, 오버워치 같은 실시간 경쟁 게임에 목숨을 걸었던 것 같다. 지면 화가 너무 많이 나서 혼자 책상에 주먹을 쾅 내려친 적도 부지기수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웃기지만 그때는 뭐 그렇게 게임에 꽂혀 있었나 모르겠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고 나서도 나의 게임 라이프는 계속되었다. 내가 재미형 게이머라면 남편은 나와 달리 게임에 재능이 있는 재능형 게이머였다. 타고난 재능에 노력과 끈기까지 겸비한 게임계의 육각형 인재라고 할 수 있으려나. 그는 특히 롤이라는 게임을 잘했다. 롤은 역사와 전통이 있는 국민 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나는 비슷한 게임으로는 히오스 밖에 안 해봤고 롤은 처음이었다. 나는 남편과 함께 놀기 위해 롤에 입문하게 되었다. 우리는 한동안 날마다 pc방에 가서 롤을 했고, 집에 오면 롤 경기를 보며 맥주를 마셨다. 그런데 얼마 안 가 남편은 게임에 대한 관심이 모두 식었다고 했다. 나를 만나기 전에는 롤에 미쳐 있었지만, 이제 나를 만나고 더 재밌는 것들이 많아져서 게임에 더 이상은 관심이 안 간다고 했다.
그렇게 게임 인생이 끝나나 싶던 어느 날, 나에게 새로운 게임의 세계가 눈에 띄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