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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A쌤 Sep 06. 2024

게임 좋아하는 아내 (2)

https://brunch.co.kr/@lozo/96

전 편에 이어서..


그렇게 게임 인생이 끝나나 싶던 어느 날, 나에게 새로운 게임의 세계가 눈에 띄었다. 바로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스트리머들이 플스로 게임을 하면 얼마나 재밌어 보이던지. 커다란 거실 tv화면으로 게임 화면을 보면 생동감 있고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플스 말고는 PC로 나오지 않는 게임들도 있고 말이다. 내가 플스를 사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안 남편은 내 생일 선물로 플스 5를 사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70만 원이 넘는 게임기라 꽤 고심했지만 남편은 내가 고민하고 있는 틈에 화끈하게 주문해 버렸다. 나는 플스 5용 게임으로 그 유명한 엘든링과 스파이더맨을 구입했다. CD 한 장당 6만 원이라 비싼 감이 있었지만 워낙 방송으로 재밌게 본 게임들이라 망설임은 없었다.


우리집 고양이와 함께 시작한 엘든링.

     

플스 5가 도착하고 나서 가장 먼저 꺼내본 게임은 엘든링이라는 RPG게임이다. 엘든링은 난도가 높기로 악명 높은 프롬소프트사의 신작 게임이다. 나는 그 회사의 게임들을 꽤 좋아하는데, 다른 게임들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개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맵조차 없는 불친절함에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보스, 어두운 분위기, 미스터리 한 스토리가 내 마음을 끌었던 것 같다.  

   

엘든링의 첫 보스는 바로 멀기트라는 문지기다. 왕이 되기 위해 성으로 향하는 주인공을 막아서는 끔찍한 괴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RPG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데, 레벨업을 하거나 좋은 무기를 발견하기 위해 끊임없이 막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길 찾는 것을 싫어하는데 길까지 헤매야 하니 더더욱 내 성정에 맞지 않았다. 나는 가는 길에 대충 몹들을 죽여 레벨업을 조금 한 뒤 곧장 보스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방패 사용법조차 익숙하지 않아 빼고 창 하나만 들고 보스를 잡으러 들어갔다. 멀기트 눈에 비친 내가 얼마나 우스워 보였을까. 천둥벌거숭이 거지 전사가 자길 잡겠다고 왔으니 말이다.  

   

첫 대면은 그야말로 끔찍한 살인의 현장이었다. 나는 몇 번 찔러보지도 못하고 꽥하고 죽었다. 내가 이런 이쑤시개와 물몸으로 저 흉악한 놈을 죽일 수 있냐며 절규하자, 남편은 진정한 상여자라면 칼 한 자루 들고 타이밍 맞춰 피하며 깨야 한다고 했다. 남편은 그전에 블러드본, 다크소울 등의 프롬소프트의 비슷한 게임들을 모두 클리어한 게이머로서, 잘만 피하면 불가능이란 없다며 호언장담을 했다. 나는 어리석게도 그의 말을 듣고 그 뒤로 몇 번 더 도전해 보았지만 멀기트의 화만 돋울 뿐 그의 피 절반 이상 깎기가 어려웠다. 

     

멀기트라는 놈의 공격 패턴은 정말이지 악랄했다. 나와 조금이라도 멀리 떨어지면 빠르게 단검을 던져댔으며, 가까이 가면 단검으로 나를 재빠르게 푹푹 찔렀다. 큰 지팡이로 땅을 미친 듯이 찍다 마음에 안 든다 싶으면 회전 공격을 했고, 피를 많이 깎으면 갑자기 “얕볼 수 없겠군.”이라며 자기보다 큰 망치를 소환해서 나를 찍어 눌렀다. (내가 그 정도로 잘하지는 않았잖아, 얕봐도 되는데.) 그 뒤부터는 속도가 얼마나 빨라지는지 망치에 나가떨어지거나, 단검에 맞아 죽거나, 2배속 회전 공격에 갈려나가기 일쑤였다.

    

남편은 내가 하는 것을 몇 번 보더니 자기도 해보겠다며 덤볐다. 남편은 처음엔 속절없이 죽더니, 곧 패턴을 파악하고 공격에 성공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번의 시도 끝에 남편은 멀기트를 공략하는 데 성공했다. 남편은 내가 직접 깰 수 있도록 자신은 깨지 않겠다며 멀기트의 피를 조금만 남겨두었다. 그리고 멀기트 능욕(?)을 시작했다. 손에 무기를 빼고 맨주먹만 든 채로 멀기트를 놀리기 시작했다. 아직도 클리어하지 못한 내 입장에서는 황당하기도 하고 오기가 생기기도 했다. 나라고 못할 것이 뭐 있냐는 마음에 나는 더욱더 열심히 멀기트 잡기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약 3일 만에 이쑤시개 하나로 멀기트를 해치웠다. 장족의 발전이었다.     

그 후 우리는 엘든링을 계속했느냐, 사실 지금 중단 상태이다. 그다음 보스 접목의 고드릭을 해치울 때쯤 우리 부부에게 새로운 취미가 생겼기 때문이다. 게이머들의 최종 취미라고 할 수 있는 보드게임에 입문하게 된 것이다.  

   

(다음 이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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