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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미영 Oct 30. 2022

1. 내편이 아닌 남의 편



남편(男便)은 혼인하여 여자의 짝이 된 남자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사전적 의미가 아닌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남편’이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고, 어떤 의무를 지고 있으며, 어떤 관계를 가지는 사람일까. 

우스갯 소리로 남편은 내편이 아닌 남의편이라 남편이라는 호칭이 붙었다는 말도 한다. 


그 사람은 나에게 있어 진정 내편이 되어 주었던 적이 있었던가. 

되돌아 생각해보면 단 한번도 나의 편인 적이 없었다. 그랬기에 나는 그 선택을 했던 것 같다. 

꽤 오랜 시간이 흘러 악감정이 수그러든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아도 내 대답이 그대로인 걸 보면 정말 내편인적이 없었나 보다. 

그래서 나의 선택이 오히려 더 명확했는지도 모르겠다. 


결혼이라는 걸 꿈꾸고 결정 할 때에는 보편적으로 지금 사랑하는 이 사람과 평생 함께 하고 싶다거나, 가정을 꾸리고 싶다거나,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싶다는 이유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보통 지금 내 곁에 함께 하고 있는 사랑하는 이 사람과 매일 함께 하고 싶다는 이유로 결혼이란 걸 결정 할 것이다. 

그 결혼이라는 것에는 사랑도 필요하겠지만, 그 사람에 대한 신뢰와 믿음, 그리고 수많은 책임감도 따르게 된다. 


나 역시 그렇게 결혼 했냐고? 

아니, 나는 그렇지 않았다. 아마 그 사람도 그럴 것이다. 

우리는 모임에서 알게 되었고, 서로가 싱글이었고, 서로의 첫인상이 괜찮았다. 그래서 그렇게 사귀게 되었다. 사귀면서도 사랑이라는 감정보다는 그저 연인이 되어 만나는 감정이었달까. 그러는 동안 이별의 기회도 있었다. 그러나 그 사람이 거부를 했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 갔다. 1년이라는 시간을 만났고, 서른이 훌쪽 넘은 우리는 헤어지거나 다른 사람들처럼 나이가 찼으니 결혼을 하거나 그런 상황이었던 것 같다. 


자연스레 결혼할 나이대가 되었고, 각자의 곁에 있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그저 당연하게 결혼이라는 수순을 밟아 나갔던 것 같다. 

애초에 서로가 죽고 못 살 만큼 절절히 사랑을 해보았거나,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는 애틋함 그런건 애당초 우리에겐 없었다. 

정말 말 그대로 혼자 그냥 사느니 결혼 할 나이가 되었으니 결혼을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니 살며 얼마나 부딪혔을까. 

절절히 사랑하고 죽고 못 살아 결혼한 부부도 피 터지게 싸우고 서로를 미워하며 살아가기도 하고, 이혼을 하기도 하는데 말이다. 


어쩌면 나는 그 사람에게 절절한 마음이 없었기에 어쩌면 더 바라지 않았는지도 모르겟다. 하지만, 그 사람은 늘 본인이 먼저였고, 본인 위주였다. 이기주의적이라고 할 것 까지는 아니었으나 철저히 개인중심적이었다. 그건 본인이 처음부터 이야기 했던 것이었고 그랬기에 어쩌면 나는 결혼을 하고 부부로 살아가는 내내 그 모습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려두고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얘기하고 싸워보아도 본인은 원래 그런사람이라는 말만 돌아 올 뿐이었으니 말이다. 


우리 두 사람은 어느 것 하나 맞는게 없었다. 

식성도 서로가 정반대였으며, 그사람은 외향형이고 나는 내향형이다. 

성격도 서로가 극과 극일 정도로 반대이다. 

처음에는 그 반대에 끌렸었다. 내가 가지지 못 한 모습을 가진 그 사람에게 끌렸었으나 결혼 후 살아보니 그 반대는 늘 싸움이 되었고, 늘 상처였다. 


성격 급하고 대충대충이 편한 그 사람에 비해 무엇이건 완벽하게 계획을 세우고 시작해야 하는 나와는 서로가 달라도 너무도 달랐고, 매사 부딪히기만 했다. 


집안의 대소사가 있을 때에는 그 간극은 더욱도 좁히기 어려웠고 가족간의 싸움이 되기도 했다. 

늘 본인이 중심인 그 사람은 집안일에 있어 본인이 늘 주도를 하고 가족들에게 어떻게 상황을 전하라고 하는 것들도 늘 내가 알려 주는 상황과 말에서 앞,뒤를 다 잘라버리고 본인 위주의 본론만 전달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해도 된다며 괜찮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하지만 괜찮은건 그 어디에도 없었다. 

늘 내가 총알 받이가 되어야 했고, 뒷 수습은 늘 내 몫이었다. 


우리는 왜 그렇게 결혼을 하고 왜 그렇게 살아왔을까. 

왜 우리는 서로가 솔직하지 못 하고 늘 서로를 겉돌기만 했을까.

서로가 그 어떠한 노력도 해보지 않을 채 서로가 서로를 포기한 채 살았을까. 

왜 서로의 편이 되어 주지 못 하고 늘 남의편이였어야만 했을까. 

 행복하기 위해 둘이 아닌 하나가 되기를 선택하건만, 나는 행복해지기 위해 하나가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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