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하며 알게 된 삶의 맛들_13
며느리로서 처음 맞이하는 시어머니의 생신.
초보 주부에 초보 며느리인 나는
생신상을 준비하는 일이 막막하기만 했다.
먼저 초록 검색창에 ‘시어머니 생신상’을 검색해 봤다.
화려하게 차려진 상차림 이미지들을 보며
괜히 비장한 마음만 가진 채
막연히 내가 할 수 있을 만한 메뉴들을 메모해 보았다.
하지만 메모지의 여백은 쉽사리 채워지지 않았다.
그래도 결혼 후 첫 생신상이니
세상에서 가장 맛없는 음식이라도
며느리가 손수 준비한 정성이 담겨야 하지 않겠나?
결국,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나물 몇 가지와 갈비찜, 그리고
생일이면 필수로 있어야 하는 미역국을 추천하셨다.
엄마에게 조언을 받다가 문득 아차 싶었다.
“엄마, 엄마 생신도 제가 직접 제대로 챙겨드리지 못했는데,
불효녀는 시어머니 생신상부터 차리네요~“
멋쩍은 내 말에 엄마는
나지막이 농담처럼 말을 덧붙이셨다.
“그러게~ 라면도 못 끓이던 네가,
시어머니 생신상을 직접 차린다니
대견 하긴 하다만,
난 손에 물도 안 묻히고 애써 키워놨더니
시어머니 생신상부터 차리게 생겼네. “
우리는 한참 웃었다.
엄마가 가벼운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지만,
나는 그 말속에 담긴 서운한 마음이 느껴져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워졌다.
“엄마, 엄마 생신 때 제가 더 잘 차려드리려고
지금 연습하는 거예요~ 연습~!
제가 다음 생신 때 꼭 차려드릴게요! “
애써 밝게 애교 섞인 대답으로 마무리해 버렸다.
장을 보고 오자마자 바로 준비에 돌입했다.
미역을 물에 불리는 것을 시작으로
콩나물, 무나물, 시금치를 손질해 차례로 무쳤다.
갈비는 핏물을 빼고 살짝 데친 뒤,
양념장을 위해 재료를 갈고, 야채를 썰었다.
큰 냄비에 재료와 갈비를 모두 넣고 푹 끓이는 동안
주방을 쓱 둘러봤다.
“시부모님이 기뻐하실까?
처음 하는 음식인데 정말 맛이 있을까? “
설렘이 버무려진 걱정이 몰려왔다.
걱정을 잠시 잊게 하는
갈비찜이 끓는 냄새가 주방을 감싸고,
미역국도 준비하려 불려둔 미역을 꺼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모양이 내가 알던 미역이 아닌 느낌이랄까.
일단 반만 넣고 끓이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더욱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가만히 보니,
두꺼운 이것… 다시마 같았다.
다시 보니 엄마가 따로 챙겨주신 미역과 다시마를
내가 헷갈린 것이다.
처음 차려보는 어른 생신상에
허둥지둥 실수를 한 나 자신이 너무 어이없으면서 웃겼다.
초보 주부라면 미역과 다시마를 헷갈리는
에피소드 하나쯤은 있어야지. 암.
나의 실수 리스트가 한 줄 더 늘었다.
결국, 제대로 된 미역을 찾아
미역국을 다시 끓이고 나니 생신상 준비가 모두 끝났다.
양손 가득 음식을 들고 시댁으로 향했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차린 생신상에
고마움이 담긴 시부모님의 환한 웃음은 되려 내게 션물 같았다.
“이게 다 네가 집접 한 거냐? 고맙다~” 며 기뻐하시는 모습에
그제야 안심이 되었고, 준비한 보람이 느껴졌다.
그 기쁨만큼이나 씁쓸함도 따라왔다.
딸내미 손에 물 안 묻히고 키워주신 엄마께
내가 직접 생신상을 차려드리겠다는 생각은
왜 그리 늦게야 떠올랐을까.
그 와중에 시어머니 생신상 준비를 하며
조언을 요청한 것은 어떻고.
기특함과 서운함이 뒤섞인 엄마의 농담으로
애써 무던하게 흘려보냈지만
내 마음은 미안함으로 뭉근하게 뭉쳐졌다.
생일초가 흔들리듯,
내 마음 한편이 작은 바람에 흔들렸다.
돌아오는 엄마 생신엔
다시마를 미역으로 헷갈리는 일도 없이
더 멋진 상을 차려드리겠다고 조용히 다짐했다.
촛불이 남긴 촛농처럼
내 마음속에 그날의 기억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