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하며 알게 된 삶의 맛들_14
여름의 더위가 기승을 부릴수록 입맛은 사라지고,
뜨거운 부엌 열기와 싸우고 싶은 마음은 더더욱 없다.
그래서 요즘 한 끼를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메뉴를 주로 찾는다.
인덕션을 켜는 시간을 최소화하며 새콤하게 무친 야채 반찬이나,
덮밥, 볶음밥 같은 ‘한 그릇’ 요리에 손이 간다.
최근 우리 아이들이 특히 좋아하는 메뉴는
오이와 참치캔을 활용한 초간단 덮밥이다.
오이를 적당히 썰고, 참치캔의 기름을 뺀 후
밥 위에 올리면 기본적인 준비는 끝이다.
냉장고에 남은 양배추를 살짝 채 썰어 추가하면 더 좋다.
준비 시간도 짧고 손도 덜 가는 메뉴라 여름철에 이만한 것이 없다.
하지만 불을 쓰는 것을 아무리 피하고 싶어도,
결국 빠뜨릴 수 없는 ‘숙명’ 같은 것인 것 같다.
계란 이불이 빠지면 왠지 섭섭하기에 나는 이 더위에 불을 더한다.
팬에 계란을 올리고 익히는 동안,
간장, 참기름, 올리고당, 레몬즙, 통깨를 섞어 만든 소스를 준비한다.
따끈한 계란 이불이 덮인 덮밥 위에 소스를 살짝 둘러주면 완성!
완성된 한 그릇을 앞에 두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아, 오늘도 한 끼 해결이다.”
그런데
이 짧은 희열 뒤에는 미묘한 죄책감이 스쳐 지나가곤 한다.
“너무 대충 만든 건 아닐까?” 하는.
간단하게 잘 만들어 놓고도,
아이들이 잘 먹는 모습을 보며 기쁘면서도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일까?
어쩌면 그것은 어릴 적 엄마에게 들었던 가르침 때문인지 모른다.
결혼을 앞둔 날, 엄마는 진지한 얼굴로 조언하셨다.
“밥 챙기는 것을 잘해야 한다.
먹는 것을 잘 챙기는 것이 가족을 위한 가장 중요한 일이다. “
이어지는 조언은 더욱 구체적이었다.
밥상에는 영양소의 균형을 맞춰 세 가지 이상 반찬이 올라가면 좋고,
매번 새로운 반찬은 힘드니 하루에 반찬 하나씩 만들면서
식탁을 풍성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새댁의 열정으로 ‘잘 해낼 거야!’ 하는 괜한 비장함과
‘나도 엄마처럼 할 수 있을까?’하는 막막함으로 엉킨 실타래가
마음속을 뒹굴었다.
결혼 후, 나는 엄마의 조언을 지키고자 열심히 노력했다.
하루 세 가지 반찬과 국을 끼니마다 준비하려 했고,
어떤 날은 반찬데이를 만들어 여러 가지 반찬을 한꺼번에 만들며
스스로에게 대견함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태어나고 식구가 늘면서,
매 끼니를 고민하고 준비하는 일이 반복될수록 피로와 부담감이 쌓였다.
요리, 상 차리기, 뒷정리, 설거지까지 모든 과정이
단순한 노동의 반복처럼 느껴지면서,
어느 날 문득 ‘꼭 엄마의 조언처럼 해야 하나?‘ 하는 반발심과
’왜 나만 이것을 해야 하지?‘하는 질문이 떠올랐다.
사실 우리 남편은 가사에 적극적이다.
‘김주부’라는 별명을 붙여 줄 만큼 장보기와 설거지는 물론,
내가 조금이라도 힘들어 보이면 외식을 제안하거나
배달음식을 시키기도 한다.
가사 업무를 혼자 짊어지지 않아도 되는 환경임에도,
때때로 이런 반발심이 드는 것은 왜일까?
그 답은 바로 내 안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건 어쩌면 나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밥상의 기준’ 때문일지도 모른다.
‘밥은 아내가 차려야 한다’, ‘가족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 같은 생각들은
어릴 적부터 보고 듣고 자라며
내 안에 자리 잡은 고정관념일 것이다.
그리고 그 기준을 깼을 때 스스로 느끼는 죄책감 또한
거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가정 내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은 단순한 노동 이상이다.
한 끼의 식사를 위해 메뉴를 고민하고,
식재료를 준비하고 조리하며
식탁을 차리는 모든 과정에는 많은 시간과 마음이 필요하다.
그 모든 노력은 당연하지 않기에,
내가 완벽하지 못해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스스로 인정해주고 싶다.
이제는 마음속의 기준을 조금씩 수정하며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
반찬 세 가지를 만들지 않아도,
국이 없는 밥상이라도, 한 그릇 요리만으로도 가족은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다.
결국 중요한 것은 함께 하는 시간과 서로의 마음이다.
스스로에게, 그리고 세상의 모든 밥상 앞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꼭 말하고 싶다.
“오늘도 애쓰셨어요. 당신, 이미 충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