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병상 일지도 끝날 때가 된 것 같다)
제62일 차 : 2016년 11월 18일. 금요일
병상 일지도 끝낼 때가 된 것 같다.
이젠 본인 노력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거다.
내 몸이 다 얼 먹은 것 같다며 불평인 초록잎새에게 나는 항상 그런다.
"괜찮아~!"
"기계는 한번 맛이 가면 끝이지만"
"사람몸은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리셋이 가능해~!"
그래서 그랬나 보다.
자청해서 걸었던 현충원의 보훈 둘레길은 무리가 있었다.
거길 다녀온 그날 저녁부터 초록잎새는 앓아누워 꼼짝을 못 했다.
몸살감기 기운이 있는 것 같다 하여 쌍화차를 끓여 먹여 재운 다음날까지
살아나지 못 한 컨디션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아침은 약을 먹기 위해 과일 몇 조각.
점심은 아무리 뭐라 해도 제발 좀 가만 나두라며 건너뛰고
저녁은 닭곰탕 국물만 마시고 또 잠의 수렁에 빠진
초록잎새가 이틀을 보낸 금요일 기운을 차렸다.
그러더니...
느닷없이 아주 걷기 좋은 금성산 술레길을 걷고 싶어 한다.
시간이 참으로 애매하다.
급하게 준비를 하며 점심은 그냥 라면을 끓이기로 했다.
주섬 주섬 배낭을 꾸려 떠나 금산 칠백의총 주차장에서 걸음을 시작했다.
아직 한쪽 팔목은 힘이 달려 스틱을 집는 것도 힘들다 하여
성한 오른쪽만 스틱을 집고 걷기 시작한 술레길은
환자가 걷기엔 그야말로 안성맞춤이다.
그렇게 걸어 팔각정에서 커피 한잔과 귤 한 개를 까먹은 후
금성산을 500미터 앞둔 마지막 오름길에서 갑자기 생각이 난 게
버너를 챙기지 않은 것 같아 배낭을 내려 확인해 보니
이런~!
정말 없다.
얼마나 허탈하던지....
돌아 갈길은 멀고 먼데 마땅히 요기할 간식은 준비도 안 됐다.
참으로 황당하다.
참을성 하나는 끝내주는 마눌님.
불편한 몸으로 도중 한번 쉬지 않고 발길을 돌려 주차장까지 걸어 내려왔다.
이미 오후 3시 30분을 넘긴 시각이다.
그런데...
산행을 끝내자마자 비가 쏟아진다.
돌아오며 아무 말이 없던 아내가 수술한 팔목만 부여잡던 건 그래서였나 보다.
기상청보다 더 정확한 흐린 날의 아픔....
그날 우리는 귀로에 얼큰한 짬뽕으로 늦은 점심을 때웠다.
집에 도착 후...
피곤함에 그냥 떨어져 잠이 든 마누라님을 깨워 저녁상을 차렸다.
그런데...
장모님이 딸을 위해 가저온
도가니탕을 보더니 안 먹겠다며 투정을 부린다.
순간...
화가 치솟아 그냥 개수대에 도가니탕을 부어 버렸다.
내가 왜 그랬을까 후회는 소용없고
토라저 버린 초록잎새는 그날밤 입을 닫아 버렸다.
처음엔 투정과 신경질을 부릴 땐 사실 그게 정말 고마웠다.
응~!
그래~!
네가 이젠 살만 하다 이거지~?
그걸 말해 주는 것 같아서...
그런데...
사람 마음이 간사해저 그런지 이젠 나도 정말 싫다.
사실 어느 정도 지나면 이 참에 쓸개 빠진
여자가 돼서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아할 줄 알았는데
이거 원~! 성질만 더 늘어난 것 같다.
ㅋㅋㅋ
하긴...
몸은 따라주지 못하는데 이젠 좀 살만 하니
여기저기 집안 구석구석 먼지 쌓인 거나 살림살이 엉망인 게 눈에 보여 답답할 거다.
한마디 하면 알아서 척척 내가 처리하면 될 텐데 그게 안되다 보니 신경질을 부린다.
그냥 포기하고 살면 안 되나?
요즘엔 그래서 그런지 내가 안보는 사이 이런저런
힘쓰는 살림을 몰레 하고 있어 걱정이 된다.
저러면 안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