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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g Ho Lee May 10. 2024

일본 북알프스 종주 2편

(가미고지에서 아리가다케를 향한 여정)

▣ 산행일자 : 2008. 8. 02(토) ∼ 8. 06(수) - 4박 5일
▣ 산행위치 : 일본 기후현(岐阜縣), 나가노현(長野縣)
▣ 산행장소 : 일본 북알프스 최고봉 오쿠호다카다케(奧穗高岳 3,190m)


(일본 북알프스 지도)


8월 03일 일요일 (맑음)

-고나시타라 롯지 07:20

-명신(묘진관) 07:50 - 08:00

-도쿠사와 산장 08:45 - 09:00

-신천교(신무바라시) 09:12

-요코산장 09:50 - 10:13

-이찌노마다 두 번째 지류 목재다리 11:00

-수력발전소 11:17

-야리사와 롯지 11:25 - 12:10 (중식)

-바바 다이라 캠프장 12:25 - 12:30 (식수 보충)

-텐구바라 분기점 13:50

-야리산장 16:07 착 (숙소 배정) - 17:15

-야리가다케(창봉) 17:30 - 17:50

-야리산장 18:10 착  19:00 석식 후 1박  



한밤중 목이 말라 깨어 나 창밖을 보니 날씨는 괜찮아 보인다.

다시 설핏 잠들었나 싶은데 저절로 눈이 떠진다.

그냥 누워있자니 답답하여 시계를 보니 새벽 4시다.

이층 본관의 산행가이드 숙소를 걸어 나와 산우들 숙소를 돌아보니 다들 깊은 잠에 든 것 같다.


(고나시타라 롯지의 숙소 전경)

 

(비교적 깨끗한 롯지의 화장실)

 

산우들의 숙소를 내려와 고나싯타라 산장 앞마당에 들어서자 원숭이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나에겐 야생원숭이가 처음이다.

신기해 디카를 들이대자 원숭이는 슬며시 일어나 숲 속으로 사라진다.

고 녀석 모델 좀 하면 안 되냐~?

못 생긴 게 튕기기는...

 

고나시타라 산장을 벗어나 하동교쪽으로 내려서자

아주사가와강 너머로 북알프스 연능이 아침햇살에 그 웅장한 자태를

들어내고 있어 그 아름다움에 잠깐 정신을 놓는다. 

 

 

아주사와 강을 낀 야영장엔 일본인들이 야영 중이다.

아직은 이른 새벽인데 그중에서 일본인 노 부부는 벌써 텐트를 걷어

배낭을 꾸린 후 산행을 나서는 모습에서 부부간 애틋함이 묻어난 사랑이 느껴진다.

   

(산행에 나서는 일본인 노 부부)

 

전날 저녁 이슬이와 맥주를 쓰러트린 여파로

늦게 일어날 줄 알았던 산우들이 하나 둘 일어난다.

이왕 일어난 거 예약한 아침식사가 가능하면 좀 일찍 먹으려

산장쥔장을 찾아가 물어보니 제시간에 주문한 식사가 배달되는 거라 안된단다.

 

(고나시타라 산장 쥔장과 함께)

 

모두들 이른 시각 일어남에 산행에 필요한 배낭만 꾸리고 나머지 짐들은

산장에 미리 맡긴 후 조반을 들자마자 우린 북알프스 종주를 향한 대장정에 든다.

  

(산장을 떠나며 무사산행을 기원하는 파이팅~!!)


아주사와 강을 끼고 이어지는 등로는 반짝반짝 윤이 나는 조릿대숲이

빼곡하고 전나무가 쭉쭉~ 뻗어있는 원시림이 완만하게 이어진 산책로라 힘든 줄 모른다.

덕분에 가급적 힘들게 이국의 명산에 든 만큼 속도산행을 지양하고

함께 걷는 항아리 산행이 되도록 협조해 달라는 나의 부탁은 쓸데없는 걱정이 되었다.

첫날부터 산우들 모두는 멋진 풍광에 감탄하며 구경하느라 그 속도가 오히려 더디다.

 

 

 

산장을 떠난 지 30여 분 만에 묘진관에 도착한 우린 휴식에 든다.

이곳 이정표엔 명신지까지 0.7km 라 적혀 있다.

혹시 그곳에 갔다 올 사람 있냐 물어보니 다들 니나 다녀 오란다.

ㅋㅋㅋ

 

 

(뭘 보시나요~?)

 

다음 목적지 도쿠사와 산장까지 가는 길엔 하늘빛과 나무와 풀들을 고스란히 담아낸 습지가 있다.

그 물빛이 얼마나 깨끗하고 고운지 디카에 담고 쳐다보는 사이 시간이 얼마나 흘렀나?

나의 산우들은 멀찌감치 사라지고  나 홀로 남았다.

   

(습지의 아름다움)

 

 

곧바로 잰걸음을 옮기자 이내 앞선 산우들을 잡았다.

그런데....

일본 통역을 위해 데려온 지열 군과 거의 같은 수준으로 걷던 일본 여성에게

어느 코스로 가냐 물어보니 도코사와 산장에서 가라사와 능선을 탈거라 말한다.

그 여성과 말문이 트인 지열 군은 다정한 길벗이 되어  그녀와 도코사와 산장까지 길동무가 되었다.  

  

(지열님과 일본여성)

 

  (강 건너 우뚝 솟은 묘우진 다케의 모습)

 

 

맑은 강변을 옆에 둔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도쿠사와 산장에 도착했다.

산장의 캠프장엔 텐트가 여러 동 설치돼 있는데 그들은 모두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이다. 

그들은 해가 중천인데 이제야 일어나 아침을 지으며 산행을 준비 중이다.

그들의 여유로움과 평화로움은 이국 산하의 풍광에 들뜬 내 마음까지 진정시킨다.

 

 (텐트를 걷어 산행을 준비 중인 노인장)

 

  (도쿠사와 산장 전경)

 

도쿠사와 산장을 지난 얼마 후 갈림길의 목책다리를 만났다.

그 다리는 쇼와 초기 명 등산가인 신무라 쇼이치의 이름이 붙여진 신무라바시교다.

신무라바시교 정면으론 마에호다카와 기타오네의 능선이 웅장하다.

이 다리를 건너면 병풍암 안부를 지나 가라자와 산장을 거쳐 오쿠호다케로 오를 수 있다.

지열 군과 함께 온 그 일본여성은 이 등로를 향하며 지열 군에게 야리능선의 위험스럼을 몇 번이고  

강조하며 무사산행을 빌어 줬다는데 은근히 겁을 준 느낌이 더 강하단 생각이 든다.

혹시 그렇게 겁을 주면 그녀를 따라올 줄 알았나?

ㅋㅋㅋ

나는 신무라바시교에 잠시 들리려 한 순간 산우들 목소리가 소란스럽다.

웬 영문인가 얼른 다가서자 산우들은 다리밑 원숭이 가족을 보고 내지른 소리다.

난 이미 이른 아침 산장에서 봤는데...

  

(신무라바시교에서)

 

(신무바라시교의 이정표)

 

신무바라시교(신촌교)를 뒤로한 채 맑고 깨끗하여 투명한

아즈사가와의 강줄기를 따라 오르는 등로는 한마디로 환상의 산책로다.

진행방향 왼쪽엔 묘진다케 오른쪽으론 병풍암이 보이자 이내 요오코 대교와 함께 산장이 나타난다.

먼저 도착한 산우들이 반겨 준 요코산장에선 식수를 보충하며 그간 산행의 피로를 달래 본다.

가미고지에서 요오코 산장까지는 고도차를 거의 느낄 수 없는 환상의 오솔길였다.

이런 훌륭한 산책로가 한국에 있다면 조깅코스로 손색이 없을 거란 생각이 불현듯 든다.

이곳 요오코 산장은 북알프스 산행의 분기점이다.

아즈사가와를 건너는 요오코 대교를 넘어 계곡을 따라 혼타니바시를 건너

가라사와 산장을 거처 기타호다케와 오쿠호다케를 연결하는 등로는 이번 북알프스 등정을

계획하게 만든 황태자님이 밟은 코스로 예전 그의 산행기를 읽어가며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으로 가슴 뛰었던 그때의 기억이 새롭다.

 

(요오코 산장 가는 길...)

 

   (산행 분기점 요오코 대교)

 

  (요오코 산장 전경)

 

요오코 산장에서 충분한 휴식으로 힘을 비축한 우린 야리사와 롯지로 향했다.

그런데 그곳을 향한 등로가 지금껏 완만함과 달리 서서히 고도를 높이기 시작한다. 

 

 (야리사와 상류의 맑은 계곡물)

 

야리사와 계곡 상류를 거슬러 올라 첫 지류인 이찌노마다를 지나 두 번째

지류와 만난 니노마다를 건너는 원목다리를 넘어선 얼마 후 자그마한 수력발전소를 만났다.

  

(니노마다 원목다리)

 

 (수력 발전소)

 

  (야리사와 롯지의 전경)

 

야리사와 산장은 그곳에서 가깝다.

1850m의 야리사와 산장에 도착하여 고나시타라 산장에서 싸준 도시락을 펴보니 주먹밥이다.

우린 부지런한 바커스님과 공구리님이 일찍 도착해 라면을 끓여놓은 덕분에

주먹밥과 함께 라면 국물로 꿀맛처럼 달고 맛난 점심식사를 했다.

 


식사 후 야리사와 산장에서 몸 물을 빼려 화장실에 들르자

몸 물은 100엔을 내고 버리란 안내문과 함께 페티병으로 된 돈통이 보인다.

100엔이면 한국돈 천 원이다.

그냥 가기엔 참기 힘들고 볼일을 보고 그냥 오자니 양심에 꺼린다.

그래도 어쩌라~!

볼일은 봐야겠기에 초록잎새와 함께 200엔을 집어넣고 시원하게 갈겨 버렸다.

야리사와 산장을 떠나며 일본 주재원으로 삼 년을 지낸 고교 3년 선배 공구리 형님께

뭔 놈의 몸물 한 대롱값을 천냥이나 받는대요 했더니 하신 말씀이

"응~ 그거~ 큰 거 볼 때만 내는 겨~"

우잉~?

진즉 가르쳐주지~!

무식하면 손 발만 고생하는 줄 알았는데 그래서 난 금전적 손해까지 입었다.

 

(화장실 유료 안내문과 요금통)

 

야리사와 롯지를 등지자 등로는 서서히 좁아지며 오름이 시작된다.

그런데 이곳 일본의 산하엔 수해를 입어 흘러내린 상흔들이 그대로 다.

이유는 일본은 자연의 재해는 자연이 치유하게 그대로 두기 때문이란다.

흘러내린 토사와 돌더미 속에 죽어 넘어진 나무들 사이로 새 생명이 움트는 게 보인다.

그걸 보면 그게 맞는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산사태로 흘러내린 상흔들...)

 

서서히 고도를 높이던 등로가 숲을 벗어나자 제법 너른 야영장이 나타난다.

이정표엔 한글로 현재 위치가 바바다이라 캠핑장이라 일러준다.

캠핑장엔 시원한 물줄기가 연신 솟아 흐르고 있는데

그곳에서 바라본 능선엔 흰 눈을 이고 있는 이국적 풍광이라 눈이 황홀하다.

  

(바바다이라 캠프장 전경)

 

 

 

캠프장을 뒤로하자 야리산장을 향한 본격적인 오름길이 시작된다.

계곡은 점점 깊어지고 흰 눈을 담고 있는 능선들은 양편에서 우리 부부를 내려 보고 있다. 

 

(텐구바라로 향한 오름길 풍광)

 

 

 

 

 

  

 

오름이 점점 더 힘겨워진다.

온갖 식물과 나무 야생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끝없이 우리 부부에게 이어지던 원타이정님의 강의가 뚝 그치더니 어느 순간 점점 더 우리 부부와 멀어지고 있다.

그런 그보니 국내 오지 산행을 힘들게 다니던 골수 산꾼도 고산 앞엔 별 수 없는것 같다.

    

(힘겨워하는 원타이정님)

 

드디어 2348m의 텐구바라 분기점을 지났다.


(텐구바라 분기점 이정표)


그러자 진행방향 윈 쪽 위 빙하공원 텐구바라에서 떨어지는 작은 폭포가 장관을 이룬다.



힘든 오름길은 지그재그로 경사를 낮춰 주지만 고소의 영향인지 발걸음은 여전히 무겁다. 

얼마 후 첫 번째 설계구간을 통과 후 두 번째 설계구간을 오를 땐 등로가 제법 미끄러워 조심스럽다.

  

 

 

 

 

무사히 그 눈길을 밟고 오르자 이젠 창봉이 아주 가깝게 느껴진다.

순간 내 눈엔 창봉까진 어림잡아 20여분이면 오를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건 단지 나의 착시 효과였다.

아주 가까워 보이던 야리다케 산장은 부지런히 올라도 여전히 그 자리였다.


 

중국에만 산에 등짐을 지고 오르는 인부가 있는 줄 알았는데 이곳에도 짐꾼이 있다.

지게에 무겁게 짐을 지고 오르는 그 사람과 함께 샘터에 이르러

잠시 쉬는 사이 아내가 초코파이를 건네자 사람 좋은 미소로 연신 고마움을 표한다.

  

(야리산장으로 향하는 짐꾼)

 

야리산장으로 향한 오름길의 너덜길에 조그마한 동굴이 눈에 띈다.

야라가다케를 처음 등정한 반류(1780~1840)라는 승려가 이곳을 다섯 번이나 올랐다는데

그중 네 번째인 1843년엔 53일간 이 동굴에서 참선을 했다는 안내문과 함께

동굴 안엔 조그마한 상이 모셔져 있다.


(반류 승려 동굴)

  

  

 

창봉이 가까워 온다.

어느덧 진행방향 우측에 샷쇼붓테를 발아래에 둔 위치까지 올랐다.

이젠 몇 걸음만 옮기면 오늘의 안식처 야리산장에 도착할 수 있단 생각에 새로운 힘이 솟는다.

   

(샷쇼붓테의 전경)

 

 

 

드디어 올랐다.

오늘의 안식처 야리산장이다.

야리산장은 일본 북알프스 산장 중 두 번째 높은 곳으로 650명을 수용할 수 있다.

산장 접수는 맨 후미에서 오르고 있는 지열 군이 와야 할 수 있기에 산장의 평상에 앉아 힘겹게

오르고 있던 등산객을 내려보며 여유를 부려 보는데 산장을 이제 막 올라선 일가족이 눈에 띈다.

그런데...

세상에나~!!!

할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손자로 이루어진 3대가 나란히 야리산장에 도착한다.

그 할아버지에게 손자의 나이를 물어보니 5살이다.

아빠의 허리춤에 카라비너로 연결된 로프에 달려 올라선 아기의 표정이 아주 밝다.

   

(3대가 함께 오른 야리산장)

 

나는 아기가 너무 이쁘고 기특하여 덤썩 안고 기념사진 한 장을 남겼다.



내가 산장의 주위를 이리저리 배회하며 시간을 죽이는 사이

강철 체력을 자랑하는 바커스님과 공구리님은 벌써 야리가다케를 다녀와 산장에 들어선다.

그래서 유창한 일어능력을 가진 공구리님을 불러 접수처에 가 예약을 확인을 하는데

때맞춰 거브기님이 조카를 데리고 산장에 들어선다.

나는 이번 팀을 꾸릴 때 거브기님 조카를 추천받아 지상비 절반을 할인해 주고 통역업무를 맡겼다.

그러면서 나는 산행능력을 내심 걱정했는데 오늘 보니 순발력은 다소 떨어지나 한국인

특유의 은근과 끈기가 있어 다행스럽다.

그런데...

이곳 야리산장의 접수가 까탈스럽다.

팀원 전원의 신상을 조목조목 적어 내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건 야리가다케 종주 증명서 발급증을 주기 위해서 란다.

접수완료 뒤엔 인솔자에겐 따로 1인실 숙소를 배정해 주고 음료나

맥주를 바꿔 먹을 수 있는 티켓을 따로 내어 준다.

그래서 난 티켓은 우리 팀에서 제일 어린 통역담당 지열 군에게 선물로 주고

1인실 숙소는 남녀 합방인 다인실 숙소 사용이 아무래도 불편할게 분명한 여성들에게

그 방을 쓰라 내준 후 좀 늦게 초록잎새랑 단둘이 야리다케 정상을 향했다.

정상을 향한 등로는 직벽에 가까울 정도의 가파른 암릉인데 야리가다케는 3180m로

일본 제5위의 고봉으로 창끝과 같다 하여 창봉으로 불리며 일본의 마터호른이란 애칭도 함께 갖고 있다.

 

(야리가타케의 전경)

 

드디어 야리가다케 정상에 서자 운무가 넘실대는 산의 연능이 너무 아름답다.

뭐라고 표현을 해야 할지?

말문이 막힌 선경 앞에 그간의 힘듦과 고달픔을 잊었다.

이미 때를 넘긴 주린배도 선경 앞엔 신경이 마비된 듯 아무 느낌이 없다.

空....

나는 마음도 몸도 순간 비워진 듯한 느낌이다.

  

(야리가다케 정상에서 내려본 풍광들....)

 

  

 

 

(정상에서 아내 초록잎새랑)

 

 

 (정상에서 바라본 왼쪽의 오텐쇼우다케(2921.9M)와 조넨다케(2857M)의 전경)

 

 

 

  (하산 중 내려 본 야리산장)

 

  (일몰을 기다리는 산객)

 

끈적한 미련을 못 버리고 버티고 버티다 내려선

정상을 올려다보니 다시금 운무에 휩싸인 그 모습이 더욱 신비스럽다.

물이 아주 귀한 야리산장에서 저녁식사 후 수건에 물을 적셔 땀만 씻은 후 간단하게

피로를 달래는 술잔이 몇 순배 돌아가자 어느새 난 깊은 단잠에 빠저 든다.

    

(야리산장의 석식)

 

 

   (산장의 저녁노을)

 

  (기압차이로 통통 불어버린 믹스커피)

 

  (산장에서 산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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