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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g Ho Lee May 21. 2024

일본 북알프스 상편

(6월의 북알프스는 동토의 땅)

산행지 : 일본 북알프스

산행일 : 2009년 6월 11일(목요일)~6월 16일(화요일) 5박 6일

누구랑 : AM트래킹 AD투어팀과 함께.

산행코스 : 가미고지~묘진산장~도쿠사와 산장~요코산장~가라사와 산장~기타호 다케 소옥

                 가라사와 다케~호다카 산장~가라사와 산장~요코산장~가미고지.(원점휘귀 산행)


: 2009년 6월 11일 목요일


 -대전 10:50-

전날밤 배낭을 꾸려 출근 후 아침에 퇴근...

사무소에서 샤워 후 부지런히 서둘러 홈에 나가니

내가 타려 했던 KTX 가 꽁지를 보이며 냅따 달아나 버린다.

우이씨~!

혹시 저 KTX에 희선님이 타고 갈까 싶어 전화를 하니

"대장님 저 지금 대전 지났어요."

헐~!

그 뒤차로 내려갈 테니 부산 대합실에서 기다리라니 알았단다.


-부산 12:50-

부산도착 후 대합실에서 만난 희선님이 무척 반갑다.

얼마만인지?

함께 해물 해장국 한 그릇씩 말끔히 비우고 택시를 타고 여객선 터미널로 향한다.

 

-부산 여객선 터미널 14:15-

여객선 터미널 대합실의 사람 중 등산차림은 다 이번 AD투어 팀들이다.

나를 발견한 코르킴님과 감산님이 나의 손을 덥석 잡고 반가움을 표한다.

그간 온라인으로 서로 교감을 나눈 덕에 감산님과 코르킴님은

처음 본 사람 같지 않게 친근함이 느껴진다.


-부산항 16:00-

입국수속 후 선실을 배정받은 얼마 후

육중하고 거대한 팬스타 드림호 여객선이 부산항을 밀어낸다.

드디어 본격적인 5박 6일 여정의 시작이다.


(여객선 터미널에서)

(멀어져 가는 부산항)


배정받은 객실에 짐을 푼다.

침대 양편 사이로 책상과 걸상 그리고 커다란 PMP TV가 갖춰진 디럭스 룸이다.

물론 개인 욕실이 있고 더운물이 수도꼭지만 틀면 꽐꽐 쏟아진다.

시설이 완전 호텔 수준이다.

아니 호텔보다 훨~ 좋다.

커튼을 젖히니 망망대해 바다가 시원스레 펼쳐진다.

이 커다란 객실이 희선님의 배려로 나 홀로다.


(배정받은 나의 객실)


선실 이곳저곳을 선박회사 직원의 안내로 둘러본다.

샤우나 노래방 식당 편의점 연회장 등등....

규모도 크고 인테리어 또한 화려하다.

예전 평택에서 중국 일조로 갔던 황해 훼리는 이것에 비하면 완전 누더기 수준이다.

 


(선실의 풍광)

   

(바다를 가르는 선박으로 인한 물보라)


떠난 지 얼마 후 바다 한가운데 길게 누운 섬이 보인다.

대마도 다.

섬의 모양이 큰 말의 머리와 같아 대마도라 부른다.

사실 역사적으로 볼 때 대마도는 한국땅이다.


증거도 무지하게 많다.

중국 고지도 조선팔도총론, 조선 명조때 조선 방역지도,대동여지도,1904년 영국 Map of Korea 등등.

수 많은 고지도엔 대마도가 엄연히 조선땅으로 표기 돼 있다.

그런데 어째서 우린 내 것도 못 찾아 먹고 있는것 조차 빼앗길 형편이 돼 가는지?

멀리서 바라보는 대마도가 아름답게 보일수록 안타까운 마음이 더 하다.

 

(선실 갑판에서 바라본 대마도의 전경)


(선실의 저녁식사)


오후 6시부터 시작된 식사가 끝나자 이번 AD투어를 하게 된 배경과

진행에 대한 설명과 전국에서 모인 산악회 회장님들의 소개가 이어진다.

이번 북알프스를 기획한 이팀장님은 트래킹 전문 랜드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다.

상품개발을 완료하여 트래킹 여행사나 안내산악회에 수수료만 받고 넘겨주는 게

랜드사의 일인데 넘겨준 상품에 과도한 이익을 남겨 모객 하는 바람에 상품 개발에

들어간 비용도 뽑지 못할 때가 많아 이번 기회에 직접 홍보차원의 AD 투어 트래킹을 하게 된 거란다.

 

사실 그걸 업으로 하는 사람은 당연할진 모르나 순수하게

동호회를 운영하며 회원들에게 15~20만 원의 웃돈을 붙여 해외트래킹을

모객 하는 산악회 회장들을 많이 봐 왔다.

이번일이 잘 되어 해외트래킹의 거품을 걷어내고 일반회원들이

좀 더 품위 있고 저렴하게 다녀올 수 있는 풍토가 조성되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이번 트래킹에 참가하는 면면들을 보니 참으로 대단한 분들이다.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전문 산악인으로 작년에 그 유명한 마나슬루봉을

등정하고 내려온 분들이 여럿이고 각 지방의 대표적인 동호회를 대표한 분들이 참가했다.

그분들에 비하면 난 하찮은 날라리 산꾼이다.

이런 자리에 내가 껴도 될까~?

아마도 희선님이 나를 잘못 알고 과대평가를 하고 있나 보다.

 


  (랜드사 오너 희선님)


5박 6일의 여정에 대한 브리핑이 끝나자 각자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선실의 갑판으로 나오니 해가 저물기 시작한다.

수평선 너머로 하루의 임무를 끝낸 태양이 마지막 힘을 다해 하늘을 붉게 치장한다.

일출의 강렬함에 비해 일몰은 부드럽고 아늑하여 모든 걸 다 받아 줄 것 같은 느낌이다.

일몰은 항상 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문득 홀로 집에 있을 아내가 그립다.

새끼 제비들이 모두 날아간 집에 홀로 남은 어미새처럼

아이들이 이젠 다 자라 훌훌 떠나버려 빈집이 된 올 한 해 아내는 참 힘들어 했다.

다행히 소일거리 직장으로 가슴앓이는 쉽게 진정됐으나 그로 인해 항상 함께 다니던 

평일 한가로운 부부산행과 이번 같은 해외 트래킹을 함께 못한 서운함이 생겼다.

처연한 아름다움을 남기며 나를 상념에 젖게 만든 저녁노을이 어느새 바닷속 깊숙이 잠들어 버렸다.


(선상의 일몰)


어둠에 잠긴 밤바다를 가르는 육중하고 거대한 

선체가 남긴 흰 포말들이 한밤의 바다를 하얗게 수놓다.

하염없이 그 모습을 내려 보다 선실로 들어서니 바깥세상과 전혀 다른 분위기가 감지된다.

손님들을 위한 공연이 있단다.

배뽈록의 오동통 자그마한 사회자가 익살스럽다.

그 녀석 입담만으로도 몇 시간을 채워도 모자람이 없을 것 같은데

이내 아주 이쁘장한 소녀가 나왔다.

마술 소녀다.

신기에 가까운 솜씨에 감탄사가 절로 터진다.

울 막내 녀석 나이쯤이나 될까~?

저런 어린 나이에 어떻게 저런 솜씨를 익혔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마술공연의 뒤를 이어 농염한 두 여인이 시원시원한 가창력을 뽐낸다.

밤을 지새우며 가는 선상 훼리여행은 생각하고 염려했던 지루함이란 애초부터 없었다.

곳곳에 볼거리와 공연에 들뜬마음이 선실 갑판으로 나서자

끝없이 펼쳐진 까만 밤하늘 아래 넘실대는 파도의 바다를 만나자

가슴은 이내 진정되고 나는 끝도 없는 사색에 젖어든다.

 

밤하늘엔 총총총 별들이 빛나고 칠흑같이 까만 밤바다에 

한점 불빛의 고깃배는 그들에겐 치열한 생존 현장일진 모르나 나에겐 

아련한 향수를 자아내게 만드는 그저 한 폭의 그림 같은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한밤의 선상훼리 여행은 낭만이 있다.

짝 없는 외로움에 약간의 슬픔도 있지만 그래서 모든 게 더 애잔한 그리움이 아름다움으로 승화된다.

첫날밤 분위기에 취한 난 산우들과 어울려 거나하게 취해 버렸다.



  (한밤 갑판에서 바라본 풍광들...)


(선상 갑판엔 카페가 성업 중)


 : 2009년 6월 12일 금요일

-07:00-

전날 선실 카페에서 산우들과 마신술에 취해 단잠을 잤다.

단체 여행객 아침 식사 시간을 알리는 방송에 잠에 깨어나자마자

객실의 커튼을 젖히자 아직 우리 배는 일본 열도의 내항을 지나고 있다.

 

우리 국토의 3배 면적이란 말이 실감 난다.

내가 잠들 때 배는 이미 일본 내항에 들어선 걸 기억하는데....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아침 선상일출을 놓쳤다.

그러나 별 서운함이 없는 건 어제의 일몰에 넘~ 만족해서인가?





-08:00-

조반을 들고 선실 갑판에 올라서자

육지와 육지를 연결하는 거대한 다리가 우릴 향해 온다.

저 연육교가 세계에서 제일 긴 다리란다.

팬스타 드림호의 송신탑에 부딪칠 것 같은 시각적 아슬함에 마음을 졸이며 바라보는데

정작 가까이 다가서자 다리와 송신탑의 간격은 여유롭다.

나만 그런 생각을 한건 아닌 듯 다리를 통과하는 순간 모든 님들이 안도의 한숨과 환호를.....




-오사카항 10:15착 ~11:20발-

기나긴 항해가 짧게 느껴진 바닷길 여행의 종착지 오사카항에 도착하자

입국수속이 지루하게 진행된다.

요즘 번지기 시작하는 바이러스 예방을 위한 방역때문였다.

 

산행들머리 북알프스의 가미고지를 향한 장거리 버스이동이 시작됐다.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이번 안내를 맡은 산행대장 감산님의 북알프스에 대한 브리핑이 시작된다.

 

그런데 이 양반 차~암 꼼꼼하고 세밀하게 준비했다.

한국에서부터 우리가 이동한 항로에서 시작된 설명은 몇 장의 지도를

옮겨가다 끝내는 북알프스 오쿠호다케에서 막을 내렸다.


(감산님의 북알프스에 대한 브리핑)


-(휴게소 중식) 13:10~13:50-

대략적인 이동거리가 서울에서 대구까지의 거리다.

도중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 점심식사를 했다.

난생처음 육수에 돼지삼겹살을 넣어 끓인 가락국수를 먹어봤다.

그런데 생각보다 담백하고 돼지 특유의 비린내가 없어 먹을만하다.

거기에 밥 한 공기까지 위장에 디밀고 나자 배가 빵빵하다.

 


이동 중 한 분이 급한 전화를 받았다.

자세한 사연은 모르나 급히 귀국을 해야 된단다.

도중 신간센을 이용해 나고야까지 이동하여 귀국하는 걸로 결정한다.

이번 투어에 참가한 33명이 일본을 향한 터라 33인이 뜻하는 의미에

모두 흡족해했는데 아쉽게 됐다.

귀국하는 그분을 위해 도중 역사에 들려야 하고

또 입국수속이 좀 늦어진 관계로 다카야마의 옛 도심거리 관광이 취소된다.


(이동 중 들리게 된 일본의 신간센 역사)


-(히루까노고진 휴게소) 16:10~16:20-

장거리 이동 중 한차레 더 들린 휴게소가

예전 내가 산우들을 인솔하여 야리~호다카 종주 시 들려 점심을 먹었던 휴게소다.

그때 이곳 음식점 종업원이 한국 여자였는데 찾아보니 그 여인은 그만둔 듯 보이지 않는다.

이곳 휴게소에선 일본의 명산 백산이 조망되는데

역시 고산이라 그런지 백산은 허연 눈을 한 아름 머리에 이고 있다.


  (휴게소에서 바라본 백산 능선의 전경)


-(가미고지 주차장) 18:20-

1505m의 가마고지에 도착했다.

역시 고지대라 그런지 버스에 내리자마자

나의 살갗을 스치는 바람의 서늘함에 기분 좋은 소름이 돋아난다.

난 항상 서늘한 이 느낌이 좋다.

 

이미 예고 됐던 NHK 취재팀이 우릴 기다리고 있다가 우릴 발견하자

한국말이 유창한 자그마한 여성 리포터를 대동하고 달려와 촬영과 인터뷰를 시작한다.

예전 VJ 특공대에 출연했던 내가 이젠 국제적으로 쪽을 한번 팔려 볼 기회다 생각했는데

우리 팀엔 유명인사가 많아 그런지 나한텐 기회도 없고 관심도 없다.

ㅋㅋㅋ


 (NHK 취재팀)


(아주사와 강과 그 뒤의 연능이 묘진다케)


(하동교에서 우릴 취재촬영 하는 NHK)


-(고나시타라 산장) 18:35-

장거리 이동버스에 꽁꽁 묶였던 족쇄에 풀려 내린 가미고지 고원은

서늘한 기온에 정신이 번쩍 들고 울울창창한 수림이 뿜어낸 숲향이 상큼하여

그간의 피로를 한방에 날려 버린다.

가미고지 주차장을 출발하여 하동교에서 단체사진으로

이곳을 다녀온 증명을 남긴 후 도착한 고나시타라 산장에서 맛 좋은

식사 후 각자 숙소를 배정받아 휴식에 든다.

 

(고나시타라 산장의 석식)


4인 1실의 숙소에 희선님과 코르킴님과 전대장 나 이렇게 한방에 든다.

숙소에 짐을 풀고 나자 감산님과 고산등반의 경험 있다는 산우님이 찾아들고...

이내 벌어지는 술자리.

여기서 내가 준비해 간 겨우살이로 담근 술 한 병이 순식간에 비워지고 독한 양주와 소주가 동이 난다.

내일 산행에 대한 논의 중 산행이 다소 짧아 서운한 산행대장님들을 위해

별도의 선발대가 구성되고 그 선봉엔 내가 이끌어 가기로 결정한다.

 

 : 2009년 6월 13일 토요일

-05:00-

멍들이 아침부터 부산스럽다.

오나가나 바지런한 멍들이 나를 귀찮게 한다.

얼음처럼 차가운 아주사와 강에 몸을 담가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한 후 무사산행의 108배 기원을 위해 코르킴님 나서고

그 뒤를 따라 전대장 멍도 따라나선다.

좀 더 자볼까 뒤척이나 이미 잠이 달아났다.

이불을 개어 놓고 산장뜰을 거닌다.

야영장옆의 작은 또랑의 물이 아주 맑아 다가서니 팔뚝만 한 고기들이 놀라 도망간다.

저거 한 마리 잡으면 아침상이 푸짐할 텐데...

 

(산장의 산책로)


-산장출발 07:10-

아침식사를 끝낸 후 산행에 필요한 짐들만 챙겨 나머지 짐을 산장에 맡긴 뒤

가볍게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 뒤 오쿠호다케를 향한 힘찬 출발을 했다.

오늘도 일본방송 NHK 촬영팀이 우리를 취재하느라 앞으로 뒤로 오가며 개발에 땀나듯 바쁘다.

 


(숲 속의 원숭이)


-(묘진산장) 07:40~07:45-

싱그런 신록이 우거진 숲 속의 오솔길을 걸어 오른다.

이런 길은 사랑하는 사람과 다정히 손잡고 천천히 사색하며 올라야 제격인데...

코스를 달리해 가는 우리 뒤를 혹시 후발대가 따라올까 싶어

선발대와 후발대의 간격을 충분히 벌려놔야 하는데 선발대에 포함된 일부의 대원들 걸음이 더디다.

묘진산장에 도착해 잠시 휴식 중 벌써 후미팀이 우리 뒤를 따라잡았다.

감산님께 좀 더 산행을 늦춰 달라 부탁 후 도쿠사와 산장을 향한다.


(묘진 산장)


(습지의 아름다움이...) 



(아주사와 강변의 일본원숭이)


(도쿠사와 산장) 08:20-

아주사와 강을 낀 숲속 길을 걷노라면 강 건너 묘진다케의 연봉이

그림같이 아름다웠는데 오늘은 짙은 안개로 그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처음 출발할 때의 써늘함도 이젠 사라지고 바삐 걷는 등짝이 김이 오른다.

웃통을 벗어제켜 반팔로 산행을 이어간다.

 

(도쿠사와 산장 전경) 


(신촌교의 전경)



-(요코산장) 08:50~09:00-

요코산장까지 고도를 느낄 수 없는

평탄한길임에도 내가 예상한 산행시간 보다 많이 늦어진다.

작년 8000M 급 고산을 등반하고 돌아온 경기도 산악연맹 부회장님과

그 일행들이 신고 온 등산화가 일반 트래킹화와 다르다.

성격이 칼칼해 뵈는 그중 한 분은 딱딱한 그 등산화를 싣고 오느라 발 뒤축이 까저 버렸다.

고통을 호소하는 그분에게 오만 잡가지 모든 게 완비된 전대장님의 배낭이 열리며

즉각 처방이 내려지는데...

세상에나~!!

전대장님의 구급약통에서 나온 건 여성 생리대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상처부위에 덧대고 반창고로 고정하니 아픔이 싸악 가시나 보다.

여성 생리대의 쓰임새가 참으로 여러 가지다.


 (요코산장 전경)


야리다케로 가는 길과 갈리는 요코대교를 건넌다.

이 길은 나도 처음이다.

앞으로 어떤 풍광이 나를 감동시킬지 은근한 기대로 가슴이 마구 뛴다.


(요코대교를 건너는 선발대)


지금껏 평탄했던 길과 다르게

서서히 고도를 높이던 등로의 능선 사면에서 첫 설계구간을 만난다.

흐음~!!!

한여름에 만난 눈이 그저 신기하다..



-(혼바타니시) 10:00-

혼바타니시에 이른다.

저 출렁이는 다리를 건너면 본격적인 오름이 시작된다.

함께 기타호다케 능선을 밟기로 한 선발대의 후미가 많이 처졌다.

아주사와 산장까지는 외길임에 그냥 기다림 없이 진행하여 산장에서 후미를

기다리기로 하고 혼바타니시를 건넌다.


 (혼바타 니시에서)


(동토의 땅에 꽃이 피고) 


혼바타니시를 건너자 계절이 여름에서 겨울로 바뀐다.

가파른 오름길을 오를수록 하얀 설원으로 바뀌는 풍광이 신기하다.

불과 한두 시간 전 우린 밀림숲 속을 걸었었는데 사방팔방 하얀 설원의 풍광이 한 폭의 산수화다.



(저 멀리 가라사와 산장의 모습이)




-(가라사와 산장) 11:20~12:16-

눈앞에 빤히 보이는 가라사와산장이

걸어 오르면 뒤로 달아나고 걸어 오르면 뒤로 달아나고...

그러나 우린 오름길의 힘듬보다

아름다운 설원의 마법에 걸려 오히려 고통이 기쁨이 될 수 있었다.

가라사와 산장에 도착해 후미를 기다린다.

점심 먹기엔 좀 이른 시각...

곧 올 거라 믿었던 후미가 올라설 생각을 않는다.

 

그냥 여기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도시락을 먹고도 한참 후 도착한 후미가 기타호 다케 능선을 포기한다.

8000M급 고산들을 수없이 오르내린 백전노장들이 포기를 하니

좀 의외란 생각이 드나 강요할 수 없는 법.....

 

나와 같이 갈 사람이 9명에서 3명으로 줄었다.

코르 킴님과 여의주님 그리고 나...

정예 멤버 3명이 용감무쌍하게 기타호다케 능선을 향한다.

뒤에 남은 팀들은 여기서 기다렸다 감산님이 이끄는 본진과 함류해

직등코스의 호다카 산장으로 가기로 했다.

 


 (가라사와 산장)


(기타호 다케로 향한 설벽의 오름길 준비 중) 


(오름 중에 내려본 가라사와 산장)


(설벽을 트래바스 하는 코르킴님) 


-(능선안부) 14:18-

가라사와 산장을 떠난 약 2시간 동안 우린 생사의 갈림길에서 사투를 벌였다.

계속되는 설벽의 오름길에 자칫 실수라도 하면 그대로 4~500 미터의

슬립을 먹어 낭떠러지로 추락하거나 암릉에 부딪혀 부상 내지는 목숨이 위태로운 등로를

타고 오르느라 긴장의 연속에 우린 한시도 맘을 놓을 수 없었다.

 

체력의 소비도 만만찮다.

설벽을 타는 오름길에 슬립을 먹지 않으려

발 앞끝을 눈 속에 콱콱 박아 대며 오르다 보니 종아리에 쥐가 날 지경이다.

안전을 위해 발끝으로 눈 속을 찍어 확실한 디딤판을 확보 후

이동을 해야 했기에 체력은 물론 시간도 많이 지체됐다.

 

고산등반 경험이 많은 산악연맹 고수들은

동물적인 감각으로 등로의 위험을 감지해서 뒤로 빠젓는지

아님 길안내 날라리 산꾼 산찾사를 못 믿어 포기했는지는 모르나

우야튼 인원이 단출한 게 참으로 다행이란 생각을 먹게 만든 험로를 올라 드디어 능선 안부에 올랐다.



(일본 북알프스의 쥔장 뇌조)


기타호다케로 향한 능선은 곳곳이 함정이다.

눈에 덮인 암릉사이엔 크레바스가 어서 옵시오 입을 벌리고 있다.

꼭 넘어야 할 길이기에 폴짝 뛰어는 보지만 숏다리의 한계를 극복 못한 내가

허리까지 푹 빠저 드는 걸 본 코르킴님의 비명에 오히려 내가 더 놀라 자빠진다.


(등로 곳곳에 입을 벌린 크레바스) 


  (기타호 다케를 내려서는 코르킴님)


-(기타호다케) 15:00~15:05-

기타호다케에 도착했다.

그 아래에 위치한 산장은 이제 막 제설 작업 중이다.

혹 사람이 있나 코르킴님이 내려가 문을 두드려 보는데 묵묵무답이다.

여기에 올라 맥주 한잔 하며 야리다케 능선까지의 멋진 조망을 꿈꾸며 올랐는데

꿈이 너무 껐나 보다.


기타호다케를 내려선 후 가라사와 다케로 향한 등로를 찾는데 도통 알 수가 없다.

뒤돌아 내려오며 반쯤 쓰러진 이정표는 방향이 약간 틀린 것 같아 믿을 수 없다.

이곳을 한번 종주한 여의주님, 그리고 산행경험이 풍부한 코르킴님과 함께 지도를 놓고

논의 후 방향만 맞다면 앞에 보이는 무명봉을 일단 치고 올라보자로 결론을 낸다.

 

(기타호 다케 정상)


결론은 버킹검...

무명봉을 올라서자 저편 암릉사이로

등로 표시기인 암반의 흰 페이트 동그라미가 선명하게 우릴 반긴다.

기타호다케 산장까지는 사람이 다닌 흔적이 간혹 눈에 띄었는데

여기서부터는 전혀 흔적이 없는 처녀지다.

러셀이 안된 등로는 간혹 쌓인 눈으로 길은 끊기고...


겨우겨우 방향만 보고 진행하여 다시 이어진 등로에 안심하며

진행 중 낭떠러지를 향해 코로킴님이 한차레 미끄럼을 먹어 나의 애간장은

녹아나는데 정작 본인은 별거 아니란 듯 툴툴 털고 일어난다.

휴우~!!!

십년감수했다.

아무래도 아까 내가 크레바스로 처박힐 때

코르킴님 심장을 놀라게 한 원수를 갚으려 그랬는지도 모를 일이다.




-(가라사와다케) 16:52-

온갖 고난과 역경을 딛고

드디어 가라사와 다케에 도착했다.

등로가 이래 험한 줄 알았다면 정말 안 왔을 것이다.

무식한 게 욕감하단 천고불변의 진리를 확인한 오늘이다.

 

가라사와타케에 올라 우린 서로의 손을 부둥켜 잡고 무사생환의 기쁨을 나눴다.

지금껏 긴장된 얼굴이 풀어지며 코르킴님이 공치사를 한다.

"오늘 새벽 내가 108배를 한 덕에 무사산행 한겨~"


(가라사와 다케 정상)


-(호다카 산장) 17:05-

호다카 산장으로 내려선다.

산장의 넓은 뜰은 눈이 차지하고 있다.

산장 높이만큼 쌓인 눈들을 통로만 개설해 놓고

산장은 영업 중이다.


(호다카 산장에 들어서며) 


산장 안이 한산하다.

우리보다 먼저 도착해야 될

본진팀이 이상하게 몇 명만 눈에 띈다.

????

나중에 사연을 듣는다.

감산 대장님을 제키고 여길 왔봐다는 님이 선등 하자

그 뒤를 따라 오른 산우들이 등로를 벗어나 위험지경에 빠지고..

그걸 보게 된 호다카산장 구조팀의 도움으로 겨우 산장에 올랐단다.

그 와중에 슬립을 먹은 한분이 오름을 포기하고

뒤돌아 내려갔는데 소식이 없어 운영진의 애를 태운다.

오후 8시를 넘겨 감산님이 한 통화의 전화를 받는다.

그분이 무사히 고나시타라 산장에 도착했단다.

그간 마음고생이 심했을 감산님 전화를 받고 나자 울음을 터트린다.

그 모습에 나도 울컥 눈물이 흐른다.

밥 한술 뜨지 못하고 초초해 있던 이팀장이 큰 한숨을 내쉰다.

과정에 있어 실수가 있었다 하더라도 이만하기 참 다행이다.

 

이팀장께 물어보니 사전 이곳 산장에다

등반 여부를 문의하니 모든 사람들 다 잘 올라온다 해서

눈이 이 정도까지인 줄 정말 몰랐단다.

혹 이놈들 장사하려고 정확한 정보를 안 준건지 의심이 된다.


사실 이번 등반엔 세계의 거벽들을 등반한

고수들이 즐비했는데 그님들이 준비한 장비를 이 정도의 눈이

있을 줄 몰랐기에 모두들 아래의 고나시타라 산장에 두고 와 그 아쉬움이 더 컸다.

구조받은 그 자체도 사실 쪽 팔렸고....


어느 분은 산행대장 탓을 하나 팀산행이 아닌 혼합팀은 사실 통제하기가 쉽지 않다.

제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갈림길에선 대장 앞을 먼저 선등 하지 말아야 하건만....

우야튼 큰 사고 없이 마무리된 게 고마울 뿐이다.

이번일로 우린 정말 자연 앞엔 인간은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가를

뼈저리게 다시 한번 느끼게 된 사건이 된다.

모든 인원이 무사하니 마음들이 놀놀해지며 비로소 피로가 몰려든다.

우린 산장에 둘러앉아 고지대의 을씨년스러운 바람소리를 벗 삼아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하루를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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