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 생존일기 3
고시원은 천국.
나에게 고시원은 '천국'이었다. 2평, 3평도 되지 않은 곳에서 어떤 부분이 천국이었냐고?
'복도로 난 창 밖에 없었다면서요?'
'고시원 좁고 불편하지 않아요?'
'집 나오면 개고생이잖아요.'
아마 수많은 사람들은 질문할 것이다.
고시원이 행복했던 유일한 이유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는 오롯한 '나'였다.
각본 '나'
연출 '나'
조명 '나'
주인공 '나'
안위를 묻고 신경 쓸 것은 '나' 밖에 없었다.
2평, 3평도 안 되는 조그마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햇살도 들지 않았다. 아침 8시에 울리는 휴대폰 알람이 없다면 지금이 낯인지 저녁인지 구분도 가지 않았다. 그 덕분에 발 쪽에 위치한 스위치를 '탁-' 누르면 손발도 보이지 않는 짙은 어둠이 드리워졌다. 가로 40cm, 세로 30cm 복도로 난 창은 어둠을 물리치기엔 가냘팠다. 햇살이 들지 않아서 좋았던 건 외부 환경에 따라 덥고 추운 영향을 덜 받는다는 거였다. 완전히 독립적인 공간. 어떠한 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나의 오롯함'이라는 걸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다. 내가 불을 끄면 밤이요. 내가 불을 켜면 낯이었다.
엄마의 달그락 거리는 설거지 소리, 밥 식는다며 얼른 나오라며 거실에서 소리치는 엄마의 목소리, 방청소를 가정한 '일어나라 얼른' 소리가 들리는 듯한 진공청소기의 위잉 위잉 소리와 졸업했다.
'고시원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밥과 진라면? 너무 좋아!'
가난하고 바쁜 대학생에게 공짜로 제공되는 음식은 최고의 간식거리였다. 더욱이나 대학교 기숙사보다 공용부엌으로 가는 거리도 짧았다. 밥 한 번 먹으려면 수많은 방문들을 지나야 했는데! 여긴 그런 발품을 팔지 않아도 되었다. 대학교 기숙사에서는 음식물 섭취 금지였다. 세 사람이면 가득 차는 공용 부엌이 북적이면 밥을 먹을 다른 자리를 찾아 나서야 했다. 고시원에 사는 지금은? 그저 내 공간만 신경 쓰면 되었고, 방을 깨끗이 치우기만 하면 되었다. 그래서 천국이었다. 무엇보다 어두웠지만 나에겐 하얀색 빛 같은 공간이었다.
물론, 고시원에서 하루종일 생활했다면 후기는 조금 달라졌을 것 같다. 방에 갇힌 기분이 끔찍이도 싫은 건 누구나 다 알지 않는가. 교육을 듣느라 매일 아침 8시 반쯤 밖으로 나가서 저녁 6시 반쯤 돌아오곤 했으니까, 딱 알맞은 시간 동안 바깥바람을 쐬고 왔다. 고시원은 나머지 12시간 동안 안락한 휴식처가 되어주었다. 주말이면 시간이 가득 차고도 남았다. 나른하게 방에 있으면 퍼질 것 같았다. 가방 보따리를 차곡차곡 싸매 들고 대형 카페로 갔다. 볕 잘 들고 콘센트 있는 자리에 앉아서 공부했던 내용들을 복습하고 태블릿에 정리했다.
이렇게도 나에게 단 하나밖에 없는 포근하고 안락한 공간이었지만, 나는 고시원에 사는 것을 당당하게 말하지 못했다. 종잇장처럼 얇은 '자존심 테이프'가 입을 막고 있었다.
"여기 근처에서 자취한다며? 나 언제 놀러 가도 돼?"
"아, 언니. 나 말 안 했는데 고시원 살아..! 그래서 초대는 어려울 거 같아ㅜㅜ."
이렇게 말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알량한 자존심 같은 것인데, 그때 고시원에 산다고 말하는 게 상대방에게 내 약점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럴 수도 있는데, 차마 그것까지 말하기 싫었다. '그 말'이 입술 사이를 비집고 나오지 못하고 고꾸라졌다. 그 누구보다도 어떻게든 살아내 보려고 안간힘을 썼던 사람인 건 맞는데. 그럼 당당해야지 맞는데.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나 보다. 그것도 노란색. 노란색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서 샛노란 개나리 같은 내 모습은 보지 못했나 보다. 그래서 거무죽죽한 어두운 그림자들만 보여서, 제 풀에 죽어서. 나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내지 못했나 보다. 그래서 그랬나 보다.
지금은 물론 다르다. 세상에 나와서 이런저런 풍파를 겪으면서 '알빠노' 마인드를 가지게 되었다. '알빠노' 란 말을 들었을 때 처음엔 가희 충격적이었다.
"사실 이런 일이 있었어."
대충 이런 뉘앙스로 나보다 6살 더 많은 동기 오빠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그랬겠네. 근데 알빠노~"
"...?"
솔직히 처음에는 과장되게 말하면 죽빵을 날리고 싶었다. 마치 종이에 손이 베인 것 같았다. 그 말이 저릿저릿 신경 쓰였다. 근데 곰곰이 상처 난 곳을 보니. 내가 보였다. 너무 많은 곳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애써도 어쩔 수 없을 때가 있다. 파노라마 뷰처럼 넓은 시야로 사람들의 반응과 표정을 보고 있었다. 그래서 이젠 조금 시야를 좁혀서 주변시야는 조금 흐릿하게. 주 시야는 또렷하게 보려고 한다.
----- 다음화-----
천국 같던 고시원에 기묘한 사건이 발생하는데...
<고시원 생존일기 4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