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으로만 보고 방을 계약해서요
"요즘 애들은 문제예요."
"네?"
"인터넷으로만 보고 방을 계약해서요."
때는 바야흐로 대학교 막학기 때의 이야기다. 학업이라는 긴 여정을 보내고 마지막 터널을 지나는 시점, 코로나로 집에서 비대면 수업을 들으며 취업에 도움이 될 만한 교육을 찾던 참이었다. 마침 막학기라 이력서에 쓸 필요한 교육을 이수할 시간이 있었다. 결국 강남에서 하는 교육을 받으러 가기로 했다.
하지만 경기도에 사는 프로 통학러면 알지 않는가. 아침 9시에 시작하는 교육을 들으러 서울로 가려면 적어도 새벽 6시에 기상해야 했다. 이 짓을 4개월 동안 할 자신이 없었다. 코로나 전에는 4년 동안 주말마다 학교와 집을 오가는 긴 여정을 보냈다. 환승 타이밍이 엇갈리면 30분씩 벤치에 앉아있었다. 회색빛의 지루함을 견디며 지하철을 기다렸다. 편도 2시간, 대중교통에서 오는 피로감을 이만큼 견뎠으면 됐다. 나에게는 교육에 집중하고 휴식할 공간이 하얀빛 공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게 고시원 생존일기가 시작되었다.
고시원을 알아보기 위해서 전문 앱을 깔았다. 괜찮은 곳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4개월이란 시간을 편하게 보낼 안락한 장소를 찾고 싶었다. 때는 5월이었다. 낮에는 아이스크림을 3분 만에 녹일 수 있을 정도로 무더웠다. 바람은 시원했지만 햇빛은 강렬했다. 거리의 건물들은 햇빛을 받아 하얗게 보였다. 이 강남이란 곳에서 내가 살 곳을 내 힘으로 찾아야 했다. 그렇게 가진 거라곤 두 다리뿐인 강남 거리를 활보하기 시작했다.
- 고시원 선택 기준 -
1. 여자층 남자 층 구분되어 있을 것
2. 외창이 나 있을 것
3. 월세가 45만 원을 넘지 않을 것
4. 교육장소와 가까울 것
< 첫 번째 고시원 >
첫 번째 고시원은 교육장소에서 거리가 가까웠다. 고시원 소개를 봤을 때도 꽤나 깔끔해 보였고 가격도 40만 원 정도로 합리적이었다. 건물은 들어가자마자 무척 넓고 울리는 어두컴컴한 옛날 건물이었다. 옛날 건물에서 오는 서늘한 찬바람과 그림자가 냄새가 났다. 요즘 건물과 다른 널찍하고도 진한 고동색 나무색 복도를 지나 '고시원'이라고 써진 불투명 필름지가 붙여진 유리문을 열었다.
"아. 오늘 연락하신 분이죠?"
"네. 연락한 사람이에요."
"방 한번 보여드릴게요."
두피에서 1cm 정도로 깔끔하게 머리를 정리하고, 중간중간 흰머리가 희끗희끗. 갈색의 약간 각진 뿔테안경을 쓴 관리자분이 나왔다. 옷은 나름 깔끔하게 셔츠와 체크무늬 카디건 조합이었다. 고시원의 느낌은 건물에서 느꼈던 느낌과 동일했다. 어두컴컴하고도 넓었다. 모든 방들이 창가 쪽으로 나 있어서 복도가 어두웠다. 마치 두더지가 된 것 같았다.
"여기에요."
"아... 샤워실이랑 방이 따로 있는 거예요?"
"네. 여기는 샤워실, 화장실, 방이 따로 있어요."
"아... 네."
보여준 방은 창문이 없었다. 내측 창문이 나있었고 약간 회색빛이 들어간 흐릿한 하늘색 벽지의 방이었다. 이건 고사하고 방과 샤워실이 따로 있었다. 모퉁이 방이었는데, 방문 옆에 수직으로 샤워실 문이 있었다. 옛날 집에 있는 실외 화장실 같은 느낌이었다. 좀 웃긴 상상이지만 샤워를 하면 그때마다 축축해진 머리를 수건으로 동여매고, 방문을 열고, 닫고 머리를 말리고.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으면 또 방문을 열고...... 헬 대중교통을 피해 방을 찾으러 온 나에게 이건 또 다른 번거로움이란 말이다. 심지어 남녀 층을 나누기에는 공실이 생기기 마련이라, 남녀 구분이 되어있지 않고 운영되었다. 방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주위를 살피고. 방문을 닫고. 방문을 열고 들어가야 한다는 무언의 두려움 한 스푼도 추가될 터였다. 아. 이곳은 아니군.
"요즘 애들은 문제예요."
"네?"
"인터넷으로만 보고 방을 계약해서요."
"아... 네."
방을 살피러 복도를 지나 던 중, 방문 앞에 테이프가 칭칭 감긴 우체국 박스 3개가 쌓였던 방이 있었다. 사장님은 인터넷 사진만 보고 방을 계약한 사람이 있다고. 그래서 저렇게 짐을 보내놨다고. 그 이후에는 말을 잇지 않았는데, 마치 이런 말이 들리는 것 같았다.
"인터넷으로만 방을 보고 계약했다가 생각보다 달라서 다시 나가는 사람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