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 생존일기 2
<티익스프레스 고시원>
첫 번째 고시원은 그렇게 이별을 했다. 두 번째 연락했던 고시원으로 걸어갔다. 어플에 여성분들의 후기가 많았다. 고시원 주변이 아파트 단지라 아늑한 분위기가 있다는 평이 있었다. 아. 아파트의 너른 한 분위기. 알지. 아이들이 까르륵 거리고 잔잔한 느낌. 약간은 한적한 느낌. 그 느낌 알지. 그렇게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가격은 45만 원 정도. 괜찮은 만큼 비쌌다.
하지만 문제는 티익스프레스 급의 언덕이 있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모두 언덕이 있는 학교를 다녀서 종아리 알은 어느 정도 단련이 되어있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단 말이다. 언덕의 경사는 어느 정도였냐면, 겨울에 눈이 오면 차량 운행이 전면 통제될 정도의 경사였다. 언덕 오르는 동안 등에 그림을 그렸다. 고시원은 언덕을 넘고도 한참을 걸어가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하니 고시원은 말 그대로 깨끗했다. 남녀 층 구분이 되어있지 않았지만 남녀 구역이 커튼으로 나눠져 있었다.
'무단으로 커튼을 넘을 시 강제퇴실!'
문구가 써져 있었다. 다만 매일 아침 이 언덕을 지나 교육장소로 갈 종아리 근육이 없었다. 시설이 아무리 좋고 아늑하다고 해도 말이다. 화장실이 있는 방, 없는 방이 있었다. 화장실 없는 방은 공용 욕실, 화장실을 사용해야 했다. 마치 대학생 기숙사에 돌아온 듯한 기분이었다. 화장실 있는 방에는 외창이 나있었는데 아파트 단지랑 이어져서 그런지 시원하고 서늘한 바람이 들어왔다. 약간의 외부 소리도. 세탁기를 돌리는 것에는 돈이 들었다. 세탁 한 번에 천 원. 세상 밖으로 나오니 모든 게 돈이 들었다.
------
<보안은 굿. 하지만 관짝 고시원>
세 번째 고시원은 빌라 단지에 있는 고시원이었다. 유일한 여성 전용 고시원이었다. 방을 보러 들어갈 때 육중한 철문의 비번을 누르고 들어갈 수 있어 안심이 되는 느낌이었다. 다만 너무 아쉬웠던 건 방이 너무 좁았다. 딱 가로 세로 길이가 2m x 2m 느낌이었다. 여성 전용이라고 해도 방안에 갇힌 느낌이 들 것 같았다. 여긴 관짝이구나. 패스.
------
<초품고 말고요. 피미고요 >
네 번째 고시원으로 발품을 팔았다. 이왕 온 김에 하루에 모든 고시원을 보고 가기로 했다. 앱에 나와있는 사진을 보니 복도에 그림이 걸려 있었다. 화이트 톤 아늑한 느낌의 고시원이었다. 근데, 어라라? 2층, 3층이 피아노 학원과 미술학원이 있네? 4층에 있는 고시원까지 피아노 소리가 쫄랑쫄랑 따라왔다. 복도에서는 아이를 데리러 온 학부모님들의 반가운 소리와 아이들 까르륵하는 소리가 귓바퀴를 간지럽혔다. 여기는 초품아 아니고(초등학교를 품고 있는 아파트) 피미고라고 부를 만 했다. 피미고.(피아노 학원과 미술학원을 품고 있는 고시원) 피아노 학원 미술학원까지 아주 따따블이다.
4층에 도착하니 최소 50 짝은 돼 보이는 신발들이 한데 엉켜있었다. 신발장이 없다 보니 고시원에 살고있는 분들이 그냥 신발을 벗어놓고 고시원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신발은 검은색의 큼지막한 사이즈들이 많았다. 아 여기는 아니구나. 안내해 주시는 분도 10분 정도 늦게 나왔다. 라면냄새가 얼큰하게 풍겼다. 공용 부엌도 매우 협소했다. 방도 예상한 느낌 그대로였다.
<내창이여도 괜찮아요>
다섯 번째 고시원에 방문했다. 아쉽게도 외창은 없고 내창만 남아있다고 했다. 가격은 39만 원. 오 합리적이야. 현관 입구에서부터 깔끔하게 정돈된 느낌이 들었다. 개인 신발장이 있어서 신발을 두 켤레 정도 여유 있게 넣을 수 있었다. 신발장 키도 있어서 어느 날 내 신발이 사라질 이유도 전무했다. 방으로 들어가니 이제껏 봤던 방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다. 침대도 누우면 벽에 발이 닿을라 말라할 정도였고 방도 적절히 넓었다. 책상 위 6칸의 수납장도 넉넉했다. 다만 복도 쪽으로 창문이 나있는 내창이었는데, 방 안에, 화장실에 환풍구 각각 있어 환기 걱정이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오히려 날씨에 영향을 안 받을 것 같아서 좋을 것 같았다. 폭우가 쏟아져도 방이 습해지지 않을 것이고, 미친 듯이 더운 여름이어도 뜨거운 바람이 날 건들진 않을 테니까. 항상 방은 그대로 일 테니까.
방안에는 미니 냉장고도 있었다. 음. 달걀을 사서 먹어도 되겠다. 공용 부엌에는 공짜로 먹을 수 있는 밥과 진라면이 준비되어 있었다. 개인 식기만 챙겨 휙휙 휘저어 보글보글 라면 끓여서 방으로 와서 먹어도 되었다. 세탁기, 세제 사용도 공짜였다. 아. 이 곳은 천국인가? 기숙사에 살 때도 세탁기 이용은 무조건 천 원이었는데. 아, 여기가 내 집이구나.
"교육 들으려고 전 기수에서 고시원에서 살았던 교육생도 있었더라고요. 고시원에 사는 사람 있나요?"
"....."
4개월 동안의 나를 지켜준 아늑한 집이 되었다. 여름에는 시원한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왔고 배고플 때면 주린 내 배를 따끈하게 채워주었다. 난 내 고시원이 좋았다. 하지만 나는 교육을 들으며 선뜻 고시원에 산다고 말하는 용기를 가지지 못했다.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