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FLIX 2022 _ ch.02 [ SF ]
포브스 선정 로맨스를 즐겨볼 거 같은 책임 같은 건 없지만, 효브스 선정 SF와 가장 안 어울리는 남자 같은 건 있다. 내가 만들었으며, 1위는 당연히 나다. 보지 않으면 아무도 친구 안 해줄 거 같아서 본 마블 시리즈 몇 편이 전부일지도 모른다. 누군가 너 SF영화 볼래? 돈까스 먹을래?라고 말하면 1초의 고민 없이 돈까스를 먹을 거다. 원래 돈까스란 모두에게 그런 존재인가? 아무튼 SF라는 장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응수에게 있는 순정처럼 나에게도 아껴둔 SF영화 한 편 있다. 나의 술 인생에 상당한 지분을 가지고 있는 친구가 적극, 아니 강력 추천해준 영화 '더 월즈 엔드: 지구가 끝장나는 날'이다. 이 영화의 장르가 SF에 속한다는 사실은 한참 맥주를 들이켜다가 알았다. 처음엔 그냥 술 그리고 우정과 관련된 코미디인 줄 알고 재밌게 봤다. 그러다가 '헐... 이게 뭐지?' 하면 갑자기 SF영화로 바뀌는데, 이런 걸 싫어하는 나지만 끄지 않고 재밌어서 끝까지 봤다.
술을 마시면, 최소 3개 이상의 가게를 가는 것을 즐겼다. 코로나가 오기 전엔. 상수 5코스, 신촌 3코스, 서촌 6코스, 광화문 3코스, 충무로 5코스, 을지로 3코스, 느티 4코스... 이렇게 동네에 좋아하는 가게 몇 개를 정해두고, 맥주 한두 잔 혹은 소주 한 두병만 비우며 이동하는 것. 펍크롤이라고 부르던데 나는 이 영화에서 이걸 처음 배웠다. 이 영화에선 무려 12개의 펍이 나온다. 세상을 즐기겠다던 게리킹과 4명의 친구들, 고등학교 졸업에 맞춰 동네 12개의 펍을 정복하려 하지만 실패하고, 토사물과 피와 숙취로 범벅이 된 상태로 새벽을 맞는다. 그리고 그 새벽을 잊을 수 없었던 게리킹은 나이가 들어 다시 동네 친구들을 모아 '그 짓'에 다시 도전한다는 이야기인데, 아름다운 추억팔이도 잠시 '아? 이거 뭐지?' 하는 수많은 장면들과 마주하게 된다. 술과 자유를 갈망하는 이제는 다 커버린 중년들의 이야기랄까?
어떤 사건을 마주하고 나서, 친구들은 이제 어쩌지?라고 말하고, 게리는 '술부터 마시자'라고 말한다. 그래 일단은 술부터 마시자. 말도 안 되는 공상과학 영화답게 진짜 술부터 마시고, 끝까지 술을 마신다. 그래 이게 바로 우리가 꿈꿨던 그림이지. 어쨌든 아주 어처구니없는 상상력과 어? 이거 뭐지 싶은 그림들이 SF를 싫어하는 누군가를 마블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몰입하게 만든다. 특히 벌집펍에서 이뤄지는 액션 전투신은 태생적으로 싸움을 싫어하는 내가 꼽는 2번째로 멋진 액션 전투씬이다.(첫 번째는 킹스맨에서 머리 터지는 장면)
술이 나오니까 술을 준비하겠다는 어리석은 생각은 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냥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진짜 머리가 아픈 기분이 드니까. 차라리 해장을 위한 음식을 함께하자. 예를 들면 순댓국이라거나, 토마토가 잔뜩 들어간 피자. 영국에선 샌드위치를 해장음식으로 한다던데 서브웨이에서 스테이크치즈를 곁들이자. 아 순댓국은 화목순대국에서!
술과 자유가 있는 리얼 SF라이프를 원한다면, 오늘도 잇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