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가진 느낌, 취향, 스타일, 성향, 감정, 분위기... 말로 정확히 설명할 수 없지만 곁에 있으면 느낄 수 있는 무언가를 '결'이라고 부른다. 성품의 바탕이나 상태라는 사전적 의미보다 조금 더 넓게. F들이 지겹도록 하는 말 '뭔지 알 거 같아'에 상응하는 의미와 빈도로 '결'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당신의 결이 좋아요"
결은 사람의 무늬다. 오랜 경험이 새긴 태도, 반복해서 쌓아 올린 감성 혹은 일상에 배인 사소한 습관들이 만든 무늬. 보통의 무늬처럼 겉으로 쉽게 확인할 수 없고 천천히 시간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어떤 이는 아름답고, 어떤 이는 유쾌하고, 또 어떤 이는 보고 싶지 않다. 겉모습과는 다른데, 희한하게 사람의 결을 보고 나면 겉모습도 좀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나는 보통 의식하지 않은 순간에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무심하게 나오는 말, 그리고 그가 좋아하는 것들을 그 사람의 진정한 결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 순간을 마주하게 되거나 혹은 그가 애정을 쏟는 것들을 보고 좋아지거나 싫어지거나 한다. 최근엔 혼자서 서툴게 걷는 아이를 보고 걸음을 늦추는 사람과 짧은 한 끼에 정성을 다하는 사람의 결이 참 좋았다. 그런 사람들을 오래오래 만나며 살고 싶다.
"우린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이었네요"
세상은 다양성을 지향하지만 인생은 결국 '끼리끼리'다. 아는 사람의 숫자에 대비해 친구의 숫자가 점점 줄어드는 시기가 오면 확실히 알게 된다. 자주 만나고, 자주 못 만나더라도 마음이 가는 사람은 다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들뿐이다. 서로 다른 무늬를 가진 사람들이 모이면 삶은 확실히 다채롭고 풍성해짐을 느낀다. 하지만 그만큼 피곤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조금 지루하고 단조롭더라도 비슷한 마음을 가진 편안한 사람들을 찾게 된다. 그렇게 점점 세계는 좁아지는데 그 변화가 나쁘지 않다. 새로운 친구를 만나는 일보다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을 곁에 두는 일이 나에겐 더 의미 있다.
"정말 한결같으시네요"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을 때도 있고, 기분이 나쁠 때도 있다. 예전처럼 좋은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말로 들릴 때도 있고, 어쩜 변한 거 하나 없이 그 모양이니라고 들릴 때도 있다. 근데 생각해 보면 이건 칭찬도 비난도 아닌 말이다. 결이라는 건 살아온 인생이 그저 표현된 거니까. 그냥 자신답게 잘 살아오고 있다는 정도로 받아들이면 될 거 같다. 가끔 누군가의 인생을 오해하고 잘못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냥 내 무늬가 그렇게 보였다고 생각하는 수밖에.
사람의 결, 그것은 우리 곁을 끊임없이 흐르는 작은 물결이고, 사람을 연결하는 통로고, 오늘을 함께 살아가게 하는 숨결이다. 그러니까 결이 좋은 비슷한 결의 사람과 한결같이 사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