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20년 전 처음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할 때 보다 아이들이 무기력한 모습을 많이 관찰하게 된다. 내가 처음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할 때 나의 일은 생업으로서의 의미가 더 컸다. 생업이든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든 더 잘하고 싶다면 더 배우고 연습하기 시작하게 되는 것 같다.
남편이 하는 일이 어려워 내가 하는 일에 대한 비중이 커지게되었다. 아이들을 기르는 동안 육아에 더욱 집중하고 싶었으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들이 오기 시작하니 내 능력을 더 키워야 했다. 아이들이 3살, 4살 무렵 나는 대학원 테솔 과정 공부를 시작했다. 2006년 내 나이 서른 넷이였던 해였다. 지금 생각하면 풋풋한 때였다.^^ 그런데 그 때 당시 같은 클래스 동료들은 대부분 나 보다 나이가 어린 친구들이었다. 나는 내가 엄청난 만학도라 생각이 되었고 나 스스로 생업을 위한 만학의 길에 접어들었다 생각했다. 그런데 마흔여덟이 된 지금도 나는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 있다.^^
6개월 과정의 테솔 자격증 코스였는데, 생업을 위한 필요성으로 시작한 공부였다. 그런데!! 늦게 하는 공부가 힘들 줄 알았는데 재밌는게 아닌가? 내 인생 어느 때 했던 공부보다도 더 재미 있었고 아이들을 12시간 어린이집에 맡기고 하는 마음의 부담이 엄청났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이겨낼 수 있을 정도로 내게 의미가 있는 공부가 되었다. 어린 친구들을 가르치면서 처음 나만의 가치와 교육철학이라는 것을 가지게 되었고 단지 생업이었던 일이 너무나 중요한 의미를 가진 일이 되는 시간들이 되었다.
그렇게 한 번 행동으로 옮겨보니 그 다음 행동은 더 결정하고 행하기 쉬웠다. 2010년 우리 아이들이 7세, 8세가 되었다. 초등학교 입학할 시기 즈음은 아이들의 성장과정 그 어느때 보다 엄마의 손길이 많이 필요한 시기인걸 엄마라면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시기에 나는 큰 결심을 했다. 대학원 석사과정에 도전을 하기로 한 것이다. 주변사람들은 돈도 없는데 열심히 돈벌고 애들이나 잘 보지 무슨 공부를 더 하냐고 반대의 의견을 많이 보여줬지만 나는 그 시기에 그걸 하지 않는다면 평생 후회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도 웃픈 에피소드들이 많이 생기곤 했다. 내가 워낙 바쁘니까 아들이 애정이 부족했던지 유치원 종일반을 거부하고 등원 버스의 문을 부여잡고 등원을 거부했다. 아들이 일찍 집에 와 있는 상태에서 일을 했는데, 내가 수업을 하는 도중에 엄마 똥닦아줘~~외치기도 했다. 대학원 수업하는 동안 일주일에 한 번 목요일 저녁 시간에 아이들끼리만 집에 있어야 했던 시기가 있었는데, 대학원 수업을 받는 내내 아이들이 무섭다고 울며 전화를 해서 한 학기 내내 혼줄이 났던 기억이 있기도 하다. 다음 학기엔 당장 주말 8시간 스트레이트 수업으로 변경해서 힘겹게 학업을 이어갔다.
그렇게 아이들을 기르는 동안에도 좀 더 나아지는 나를 위한 도전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우선 첫째, 망설이지 않고 행동한 시간들이 나 자신과 하는 일들에 의미를 부여해 주었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행동하면서 마음도 능력도 조금씩 성장하는 자신을 느끼며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그로 인해 나 자신을, 나의 일을,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기도 했다.
셋째, 그러한 행동과 성장을 하는 동안 나이를 먹어가지만 이제 드디어 제대로 내가 하고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찾게 되었기 때문이다.
14년 전
아이들이 어리다고 당장 눈 앞에 급한 일들만을 해결하고자 현실에 머물러 행동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었을까?
행동을 해보고 도전을 해보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내가 정말 하고싶은 것이, 되고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나는 요즘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낸다는 느낌보다는 하루하루를 누린다는 느낌으로 살고 있다. 인간은 많은 것을 도전해 보며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알아보는 힘이 생기는 것 같다. 지금 주어진 상황과 환경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버리고 무조건 행동하고 도전해 보자. 그러면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싶고 해야하는지가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