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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리카겔 Feb 06. 2022

여담. 만 12년간의 커리어 회고

잠이 안 와서 갑자기 글을 써봅니다. 이제 저도 나이가 40이 다 되어가고 아이의 아빠가 되는지라, 10년 20년 후에는 뭐해먹고 살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다가 이제까지 제가 지금의 채용담당자가 되기까지 어떠한 일들을 겪었는지, 그리고 그 순간에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정리를 해보고 싶어 졌습니다. 본 글은 일기에 가깝기 때문에 재미없으신 분들은 안 보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산업공학 전공자, 우연히 교육업무를 접함


공학을 전공했지만 전공을 크게 살릴 생각은 학부 때부터 없었습니다. 딱히 엄청나게 재밌었던 것도 재미없었던 것도 없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대신 코딩은 절대로 하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큰 기업으로 가면 알아서 내가 할 일을 정해주겠지 생각하고 막연히 기업에 입사지원을 했었고, 운 좋게 3개 기업에 최종 합격하여 고민 끝에 선택한  두산인프라코어란 곳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왠지 두산이란 곳의 이미지가 좋았었습니다.


처음 발령받은 곳은 기술원의 기술경영팀이란 곳이었고, 거기서 기술교육 운영을 담당하였습니다. 신입이었지만 일이 꽤나 많아서 12까지도 종종 일했습니다. 잘 모르는 일이었지만 나름 재밌어서 힘든지도 모르고 했었네요. 그러다가 좋지 않은 일로 3개월 만에 회사를 나오게 되었고, 다시 재취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돌고 돌아 다시 교육업무로


새로 취업한 곳은 LIG넥스원이란 방위산업체였습니다.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과에서 차석으로 졸업한 선배가 취업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관심 가지고 지원하게 되어 합격했습니다. 배치받은 부서는 개발품질팀이란 곳으로, R&D 프로세스를 관리하고 점검하는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전공 연관성도 있고, 일도 편하고, 사람들도 괜찮았지만 왠지 모를 허전함이 있었습니다. 할 만은 하지만 막 재미있지는 않고 못하지는 않았지만 잘하기도 어려운 업무? 의 느낌입니다. 그러다 서브 업무로 품질교육 관련 업무를 하게 되었는데, 이때 짧게 했지만 과거에 했던 교육 업무가 생각나면서 오히려 본업보다도 의욕이 생겼습니다. 혼자서 HRD 관련 서적도 읽으면서 따로 공부도 하고, 강의 준비를 위해 업무시간 외에도 시간을 내서 교안을 만들었습니다. 뭔가 혼자서 해 볼 수 있는 영역이 많다는 느낌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본사에서 교육부서에 자리가 생겼으니, 이동할 생각이 있냐고 제안이 왔습니다. 저는 흔쾌히 수락했고 3년간의 품질 및 기술교육업무를 접고 본사에서 전사 교육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너무 재밌었던 신입사원 교육과 교육체계개발 프로젝트


팀에 와서 처음 담당한 업무는 신입사원 교육이었습니다. 팀 발령 3일 만에 3주간 출장을 간 경험이 있네요... 일찍 일어나고 늦게 퇴근해도 새로운 과정을 운영하는 것은 정말 재밌었습니다. 그 해에 신입을 유난히 많이 뽑았었고, 한 해에만 신입 교육을 4번 하게 되었습니다. 장기간 출장에 몸은 힘들었지만, 그것보다는 재밌다는 생각이 훨씬 컸던 것 같습니다.


그다음 해 초까지 신입 교육을 마치고 이후 진행한 것은 전사 직무역량 교육체계개발 프로젝트였습니다. 기존 교육체계가 많이 미흡하다고 제안하여서 팀장님 승인을 받아 공장에서 교육컨설팅을 담당하셨던 선배님을 불러 두 명이서 별도의 공간에서 근 6개월간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사실 실제 기간은 3개월이고 이후 3개월은 흐지부지한 시간이었습니다...)


경영진과 현업부서를 인터뷰하고, 워크숍을 진행하고, 역량을 도출하여 그루핑 하는 작업들은 책이나 보고서에서만 보던 것이었기에,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실제로 보고서만 300장은 쓴 것 같습니다. 이때 만들었던 교육체계가 제가 나올 때 까지는 계속 쓰고 있었습니다. 당시 연구개발 조직이 꽤나 컸음에도 실제 교육은 없었지만 제가 직접 만들고 운영했다는 자부심은 있습니다. 과정 개발을 할 때 연구개발 조직에 몸담았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커리어 정체기, 대학원으로 극복


재밌었던 교육업무였지만 생각보다 정체기가 금방 왔습니다. 더 이상 새로운 것을 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어서 이제는 무엇을 배우고 더 해야 하나?라는 고민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때 이직을 할까도 고민했지만, 교육업무를 내가 기본이 없이 해서 그럴 수도 있다고 판단하였고 마침 회사도 워라밸은 좋은 편이라 이직보다는 HRD대학원 진학을 결정하였습니다. 연대, 고대, 중대, 한양대 모두 지원하여 합격하였고, 그중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고대 기업교육전공을 선택하였습니다.


대학원의 첫인상은 강렬했습니다. 술을 진짜 너무 많이 먹어서... 다행히 좋은 동기들이 많이 도와줘서 무사히 다닐 수 있었습니다. 이론적인 내용은 생각을 정리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글 쓰는 방법이나 논문 보는 방법도 많이 배웠습니다. 무엇보다 돈 주고도 사기 어려운 네트워크를 얻었습니다. 2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많이 배우고 성장했고, 다소 단조로울 수 있는 업무들도 새롭게 접근하고 다양한 시도를 했습니다.


장거리 생활, 이직 결심


그러던 와중에 대전에 연수원 신축공사가 완료되었고, 팀도 전부 대전으로 이동하여 18년부터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교육담당자에게 자체 연수원이 있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일이지만,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저에게는 큰 시련이었습니다.


기숙사에서 고민을 많이 하다가 결국 이직을 결심하게 되었고, 몇 군데 면접을 본 결과 한 군데 최종 합격을 하게 되었습니다. 팀장님에게 알려드렸지만, 본사로 올려 보내줄 테니 다시 고민을 해보라고 하셨습니다.


이때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본사로 이동하게 되면 HRD업무는 못하게 되는 건데 괜찮을까? 나는 HRD 전문가로 성장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 차라리 이직을 해서 새로운 곳에서 HRD를 하는 게 더 경력에 도움 되는 게 아닐까? 등등입니다. 결국 이직하기보다는 본사로 이동을 결정하였습니다. 이때 크게 작용한 것은 이직한 회사의 처우 조건이 월등히 좋지는 않았던 점과, HRD 전문가로 성장하더라도 HRM업무를 한 번 경험하는 것은 장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근 9년간의 HRD업무를 잠시 쉬고 다른 업무를 하기로 했습니다.


본사로 이동, 채용을 담당


본사에서는 채용과 인사발령, 인원관리 등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그중 채용업무의 비중이 70~80프로 정도였습니다. 사실 당시 몇 년간 회사 상황이 좋지 않아서 채용이 거의 없었던지라 편하게 업무를 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갑자기 채용이 급증하여 공개채용, 수시채용, 추천채용, 인턴채용, 파견직채용, 알바채용 등 각종 채용업무를 담당했습니다. 게다가 채용 프로세스 변경 니즈도 있어서 기획업무까지 같이 하느라 1년간은 정말 바쁘게 살았습니다.


업무는 나름 재미있었습니다. HRD에 비하면 경영진이나 현업의 관심도 훨씬 높고, 업무의 임팩트도 커서 일하기는 수월했습니다. 그리고 HRD에서 했던 업무 경험이 생각보다 많이 도움되었습니다. 면접 평가 문항을 개발하고, 인턴 프로그램을 짜는 것은 HRM담당자보다 오히려 HRD 했던 사람이 역량을 발휘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재미있고 좋았지만, 결정적으로 집이 너무 멀었습니다. 인천에서 판교를 왕복하면 매일 4시간이 걸립니다. 아침 5시 반에 일어나고 집에 오면 9시 생활을 반복하니 몸이 녹초가 되었습니다. 아기가 태어났는데도 얼굴 보기도 힘들더군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다시 이직을 준비하였습니다. 근무지가 가까운 강북권 위주로 찾았고, 최종 합격하여 현재의 회사(당시는 LG상사)에 입사하게 됩니다.


HRD 담당자로 입사, 근데 또다시 채용을?


입사한 팀은 채용과 교육을 같이 하는 곳이었습니다. 저는 입사할 때 HRD를 담당할 예정이었습니다. 제 전임자분은 인화원으로 파견을 갈 예정이었고요. 팀장님이 인수인계를 받기 전에 회사를 빨리 이해하려면 채용을 간단히 해보는 것도 좋다고 하셔서 원래 최대 6개월 정도만 채용을 담당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다 그 해에 유난히 채용이슈가 많아져서 채용을 전담하게 되었습니다. 종합상사에서 개발자 채용까지 해봤으면 말 다한 거 아니겠습니까? 다양한 채용 니즈를 대응하느라 공부도 많이 했지만 새로운 분야라 쉽지는 않았습니다.


업무를 하면서 이전부터 했던 스터디 활동이 크게 도움되었습니다. 분당지역에서 HR스터디를 운영하며 다양한 분들을 만나 뵜었습니다. 유난히 스터디에 채용담당자분들이 많았는데, 이전에는 흘려들었던 이야기도 다 도움이 되더군요. IT 채용담당자분들의 사례를 들으면서 대기업에서는 하지 않던 업무들을 많이 따라 했고, 생각보다 잘 먹혔습니다. 덕분에 좋은 분들을 많이 모셨습니다.


그 이후에 HRD도 다시 잠깐 했지만, 결국은 다시 채용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어느새 채용 경력은 3년을 꽉 채우고 4년을 향해가고 있습니다. 재밌는 건 이전 회사에서 채용을 1년밖에 안 했던 제가 여기서는 채용을 제일 잘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다른 채용업무 경력이 있는 분들도 많은데 말이죠 허허...


앞으로 계획은?


어쩌다 보니 채용을 계속하게 되면서 고민도 많아졌습니다. 일이 재미가 없으면 오히려 고민을 안 할 텐데 나름 이게 재밌습니다. 제가 잘한다고 생각하는 영역이 남의 꺼 잘 베끼는 거, 자료 잘 찾는 거, 글 쓰는 거 정도였는데 이게 생각보다 채용업무에 잘 먹히더군요. 잘 베끼는 거는 타회사 채용 프로세스나 JD를 가져오는 거, 자료 잘 찾는 거는 플랫폼에서 사람 찾는 거, 글 쓰는 거는 링크드인에 글 쓰는 거 등으로 확장이 가능했습니다.


HRD업무 9년 가까이했을 때 보다 인정이나 관심도 더 받는 것 같습니다. 외부 발표, 기고, 링크드인 팔로워 증가 등등.. 제가 나름 관심병이 있어서인지 이런 게 기분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앞으로도 채용을 쭉 할지, 아니면 다시 HRD로 돌아갈지, HR의 다른 업무영역을 할지, 아예 다른 일을 할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예전에는 무조건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어떤 일을 하던지 큰 방향만 틀어지지 않으면 다 배울 것이 있고 궁극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이제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향후 HR 영역에서 저만의 자리를 잡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무언가를 명확히 하겠다는 생각은 이제 안 하려고 합니다. 스티븐 잡스의 커넥팅더닷이 실제로도 정말 맞는 말이라고 생각되네요. 제 사례가 다른 분들에게는 적용이 안 될 수도 있지만, 커리어 고민하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재미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설 연휴도 끝나고 이제 본격적으로 업무를 해야 될 시기네요. 다들 올 한 해도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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