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1일, 아홉째 날
내일을 향한 눈을 떴을 때 찜질방은 여전히 시끄러웠다. 어제 찜질방에 들어올 때 해가 중천에 있었는데. 시간을 봤다. 오전 6시. 이 동네 사람들은 대단하다. 시간을 등지고 저렇게 떠들 수 있다니. 낮과 밤의 경계가 무너진 세상 같았다. 그러고 보니 누나의 전화를 무시하고 잤었다. 얼마나 연락을 했을지 확인하기가 두려웠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확인했다. 전화를 많이 할 줄 알았는데 내가 잔 이후로 1통의 전화가 다였다. 그런데.
“어? 뭐야.”
내 통장에 입금된 50만 원. 누나가 보내준 돈이었다. 누나한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끊고는 메시지가 하나 왔다.
-이상한 데서 자지 마라. 그러다 뒤진다. 나한테.
심장에 강한 꽃 펀치로 쓰러질 뻔했다. 이런 감동이 없었다. 고마움에 누나에게 고맙다고 장문의 메시지를 남겼다. 하지만 누나의 답장은 없었다. 평상 시라면 답장도 안 한다며 욕했겠지만 지금은 츤데레한 모습에 한번 더 감동했다. 돈도 생겼으니 근사한 아침거리를 찾았다.
근사한 편의점에서 풍성한 반찬들이 담겨 있는 도시락을 샀다. 거기에 사치를 좀 부려 컵라면까지.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그런데 편의점이 비좁아 서늘바람이 가득 매운 야외 테라스에서 먹게 됐다. 이런 들 어떠하리. 내겐 뜨끈한 라면 국물이 있는데. 도로에 감을 한가득 실은 트럭이 지나가는 게 보였다. 붉은 끼 나는 주황색이 멀리서부터 바람을 타고 달달한 맛이 느껴졌다.
끼익!
그런데 사고가 났다. 감을 실은 트럭이 급 브레이크를 밟다 그만 박스와 함께 감들이 쏟아 졌다. 수많은 감들은 정 없어 보이는 검은색 아스팔트를 매웠다. 이를 어쩌나. 손해가 꽤 있겠는데. 걱정도 잠시였다. 주변에 있던 상인들이 달려와 감을 줍기 시작했다. 심지어 운전자들도 각자의 차에서 내려 이에 동참했다. 나 또한 성큼성큼 다가가 마지막 봉사자가 되었다. 1시간 이상 걸릴 거 같은 작업이 순식간에 끝났다. 모두의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순간 웃음이 났다. 모두가 함께 아름다운 행실을 했다는 거에 기분이 좋아서 가 아니라 정 없는 타국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모두가 챙겨 가려고 이를 악물고 감을 사냥하고 가져갈 통이 없어 그 추운 초겨울에 옷을 벗어 보자기를 만들 거 같았다. 주인은 한 손을 깊게 뻗으며 그만 가져가라고 애원 할 것이다. 그럼 모두가 비웃으며 신나게 달아날테다. 뭐, 이곳에선 있을 수 없는 상상이지만.
감의 주인인 아저씨는 모두에게 감사하다며 고개 숙여 인사했다. 원하시면 감을 좀 가져가도 된다고 했지만 모두가 사양했다. 도로 끝에 버려진 깨진 감들에게 미안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떠나고 난 버려진 감들 중에 그나마 말짱한 감 하나를 주워 먹었다. 비록 상품성을 잃었지만 여전히 가치 있는 맛이었다.
대한민국에 산은 정말 많다. 하루도 빠짐없이 의도치 않은 산을 계속 탔다. 오늘 타는 산의 이름은 모른다. 분명 불러지는 이름이 있을 텐데. 여태 정복한 산들의 이름도 몰랐으니 이 산의 이름을 굳이 찾을 필요는 없었다. 만일 이 산을 타는 게 여행의 목표였다면 난 분명 이름을 찾아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이 산과 지나간 산, 그리고 앞으로 탈 산들은 그저 쇄빙선이 가야 할 길에 놓인 얼음과도 같았다. 산 정상에 올랐을 때는 이제 하산의 기쁨일 뿐 그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시골 마을 슈퍼에서 점심거리로 간단한 빵을 먹었다. 마을 끝에서 묶여 있는 개들이 보였다. 개 집에는 대문장 만하게 흰둥이와 누룽이라고 적혀 있었다. 개들은 나를 보며 꼬리를 흔들고 잔잔히 짖어 댔다. 그 모습에 반가워 절로 미소가 지어져야 되는데 내 안에 미움이 젖혀 버렸다. 개들이 싫다. 당분간은 죄 없는 개들을 미워할 거다. 그 새벽에 마주한 들개들의 기억이 추억이라는 안주거리가 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