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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서리 Feb 07. 2021

내가 빠뜨리고 사는 한 가지

나의 아침에는 이것이 빠져 있다

  아침이 되자 요란하게 알람이 울린다. 짜증이 한껏 몰려오지만 피할 수 없는 출근은 그를 결국 일어나게 만든다. 잠을 깨려 침대에서 잠시 멍하니 앉아있다 벌떡 일어나 비척비척 욕실로 향한다. 칫솔을 물고 나와 밤사이 쌓인 쓸데없는 알림을 하나하나 확인한다. 그렇게 양치질을 끝낸 그의 다음 코스는 샤워. 입을 속옷과 수건을 챙겨 무거운 발걸음으로 다시 욕실로. 빠르게 머리를 감고 몸을 씻은 그는 책상에 앉아 스킨, 로션을 순서대로 바른다. 그 후엔 물기를 탈탈 털며 드라이기로 머리 말리기까지 완료. 그는 옷까지 야무지게 챙겨 입고 버스를 타기 위해 유유히 집을 나선다.


  여기서 문제. 이 평범하기 그지없는 출근 준비 장면에서 빠진 것은? 그리고 여기 등장하는 ‘그’의 성별은?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이상한 점을 발견했을지도 모르겠다. 20대 중반 여성 직장인인 나의 출근 준비에는 '화장'이 빠져있다. 입사한 지 두 달이 넘도록 나는 매일 맨얼굴로 출근하고 있다. 그리고 면접 볼 때에도 나는 화장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렇게 나는 3년째, 화장 없이 살아가고 있다.


  3년 전 휴학을 하고 학원에서 초등학생에서 중학생을 데리고 수업하며 아르바이트를 하던 때였다. 어느 날, 중학교 2학년 학생 한 명이 마스크를 쓰고 왔다. 지금처럼 코로나가 유행하던 때도 아니었기에 나는 의아했다. “이슬(가명)아 어디 아파?” “쌤, 저 지금 쌩얼이라서..” 응? 뭐라고? 나는 처음에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리고 이어진 침묵과 충격. 나는 분명 스무 살이 되고 나서야 처음 화장을 시작했고, 화장을 하지 않은 맨얼굴이면 밖에 나가지도 못하는 외모 강박도 그때부터였다. 하지만 그 학생은 고작 열다섯 살인데도 외모 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나는 그날 집에 돌아와서도 학원에서의 일을 잊지 못하고 생각에 잠겼다. 화장을 하는 행위는 도대체 무엇인가. 그게 뭐길래 수많은 여성들이 아침마다 시간을 빼앗기는 걸로도 모자라서 맨얼굴로는 당당하게 돌아다닐 수도 없게 만드는 걸까. 심지어 어린 학생들까지도. 그러다 문득 그 학생이 평소에 보는 성인 여성은 모두 화장을 한 상태라는 걸 깨달았다. 학교 선생님, 학원 매니저, 심지어 알바생까지 전부 화장을 하고 바깥 활동을 했다. 그리고 그건 내가 학생일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본 어른은 여성이면 최소한 속눈썹이 올라가 있거나, 입술엔 꼭 색이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화장을 하지 않은 채로는 밖에도 잘 나가려 하지 않았다. 그놈의 화장이 뭐라고.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만약 그가 마주하는 성인 여성 중에 한 명이라도 화장을 안 한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 내가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그 날 부로 화장을 그만두었다. 머리도 내 인생에서 가장 짧게 잘랐다. 물론 내가 3년 내내 쭉 화장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머리도 길었다가 짧았다가 했다. 학생들도 당장 화장을 멈추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그 작은 변화로 언젠가 누군가 하루 정도는 맨얼굴로 밖에 나갈 수 있게 된다면, 나는 그걸로도 충분했다.


  지금의 나는 화장을 하고 싶을 때만 하고, 시간이 없거나 하고 싶지 않은 날에는 맨얼굴로 출근하고, 거리를 활보하고 다닌다. 이러다 보면  옆의 우리 팀원도 하루는 화장을 하지 않고 출근할  있는 때가 오겠지. 그리고 이건  옆의  다른 동료에게도 영향을   있을지 모른다.  영향이 돌고 돌아 지금은 나와 마주하지 않는  학생에게도  닿을  있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 오늘도 나는 일부러  가지를 빠뜨리고 출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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