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고 그리울 사람들에게
퇴사 메일 같은 것을 왜 쓰느냐던 저는
메일 화면에 뿌려진 디지털 활자가 차갑게 느껴질까 봐
손수 만년필로 쓴 편지를 스캔해서 보냈습니다.
저도 몰랐습니다. 제가 이렇게 질척댈 줄은...
우리 회사는 사실 최근 많은 변화를 겪으면서 퇴직자가 많이 발생했다. 덕분에 나는 작년부터 수없이 퇴사 메일을 받았다. 친한 동기나 업무상 투덕거리다 정이 쌓여 이제는 단짝이 된 동료, 업무 연락만 어쩌다 주고받던 분이나 같은 층에 근무하며 오다가다 인사만 하며 지낸 사람들까지.
하지만 퇴직 메일을 읽으면서 무언가 감흥을 느낀 적은 별로 없었다. 나는 가까운 동료가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 다시 그런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될 수 있으면 식사를 대접한다. 그동안의 고마움을 전하고 새출발을 응원하는 나만의 방식이다. 그런 사람들과는 이미 얼굴 보며 작별 인사를 나누었으니 퇴사 메일이 새삼스럽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관계가 두텁지 않은 사이니, 메일을 읽는다고 작별이 아쉬워질 리 없다. 그래서 ‘퇴사 메일을 왜 쓰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퇴직을 결정하기 불과 몇 주 전에 남편과 나눈 대화 중에도 얼마 지나지 않아 후회할 말을 하기도 했다. “나는 퇴직하면 메일도 안 쓰고 나올 거야. 인사하고 싶은 사람들한테는 직접 보고, 전화하고, 카톡이며 회사 메신저며 얼마나 방법이 많아. 이 사람 저 사람한테 단체 메일 쓰는 이유를 모르겠다니까.” 이런 멋모르는 소리를 해댄 것이다. 어쩌면 이 말을 뱉을 때조차도 내가 정말 회사를 그만두리라고는 생각을 못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정말 퇴직하는 순간이 오자, 그게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는지 깨닫게 됐다. 나는 부서 이동 직후에 퇴직하는 경우라 인수인계 사항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퇴직일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동료들과 작별인사하는데 많이 할애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소식을 들으면 섭섭해할 것 같은 순으로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아주 가까운 분들은 되도록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같이 하려고 했다. 퇴직일까지 2주, 주말을 제외하면 열흘의 시간이 있었는데 나는 그 열흘을 정말 알차게 매 끼니 약속을 정해서 사람들을 만났다. 식사 시간 외에도 틈틈이 지방에 계신 분들께 직접 전화도 드리고, 다른 팀 동료들과 티타임도 가졌다. 퇴직 인사를 아주 적극적으로 긴 시간 한 셈이다.
내가 매일 약속을 잡아 저녁을 밖에서 먹고 들어오는 통에 남편의 저녁은 외로워졌다. 심지어 지방에 있는 공장으로 옮기신 전에 함께 일했던 팀장님과 동료들 몇몇을 뵈러, 반차를 내고 청주까지 다녀오기도 했으니 말이다. 남편이 퇴사 메일도 안 쓰겠다던 사람이 새삼 무슨 인사가 이렇게 장황하냐고 불평한 것도 이해할만하다. 그럼에도 직접 인사드릴 수 있는 범위는 좁을 수밖에 없었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도움을 받았던 많은 동료에게 일일이 인사를 하지 못함이 미안해졌다.
나는 깨닫게 되었다. 내가 받은 퇴사 메일에 적혀 있던 직접 찾아뵙고 인사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었음을. 그리고 나에게 퇴사 메일을 보낸 그분들에게 결국 나에게 전하고 싶은 고마움이나, 적어도 다시 보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는 사실을.
그렇게 나는 퇴직을 결심한 지 사흘 만에 퇴사 메일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매일 저녁 약속을 잡으면서도 집에 오면 틈틈이 작성하고 고치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마침내 결심하고 말았다. 퇴사 메일을 손 편지로 쓰겠다고 말이다. ‘모니터에 뿌려진 디지털 활자로 보내기에는 뭔가 아쉽다. 고마운 마음을 그렇게 차갑게 읽히지도 않고 지워지도록 보내기는 싫다.’ 그런 생각이었던 것 같다.
주말에 퇴직 인사를 만년필로 좋은 종이에 쓰기 시작했다. 예쁘게 쓰고 싶었는데, 오히려 인사를 쓰려니 내 감정이 요동치는 통에 몇 번을 다시 썼다. 스캔하면 또 더 마음에 들지 않아 몇 번을 다시 쓰던 끝에, 결국 마지막 출근 날이 되어서야 완성할 수 있었다. 종이를 여러 장 구겨버리는 나를 보며 남편은 말했다. “도대체 퇴사 메일도 안 쓰고, 뒤도 안 돌아보고 나오겠다던 사람 어디 간 거야? 왜 이렇게 질척대? 나 퇴직 메일 손으로 쓰는 사람 처음 봐!!”
손 편지는 확실히 놀라운 일이었는지, 나의 퇴사 메일에는 많은 답신이 있었다. 직접 인사를 드리지 못한 분들에게 전화도 많이 받았고, 메일이나 메시지도 정말 많았다. 그리고 너무 뭉클하고 감동적이었다, 눈물 났다는 피드백이 많았다. 누군가는 “이건 반칙이다. 퇴직을 이렇게 하면 무조건 재입사 통과다! 한 1년만 쉬고 복귀해.”라며, 농담하기도 했다.
다행이다,
내 진심을 동료들이 느낄 수 있었다니.
동료들의 마음을 울리는 편지로
마침표를 찍을 수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