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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May 15. 2022

코로나 격리가 퇴사에 미치는 영향

'삼시 세끼'라는 벗어 날 수 없는 굴레

예능 삼시 세끼를 기억하시나요?
저녁을 밤 10시가 다 되어 먹던 이유,
저는 알 것 같습니다.
어엿한 주부 9년 차인데,
끼니 챙기기가 이렇게 어려울 일인가요?



마지막 출근을 금요일로 잡았다. 동료들과 먼 길 떠나는 사람 보내듯 말고, “주말 잘 보내세요.” 가볍게 인사하며 헤어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상무님의 주도하에 그간 고생했다고 잠깐 박수를 받긴 했지만, 내 바람대로 평소와 다르지 않은 퇴근을 했다. 즐거운 주말 보내라는 인사를 주고받으며.


그렇게 주말도 평소와 다를 바 없으리라 하며, 토요일 아침 눈을 떴다. 그런데 컨디션이 예사롭지 않았다. 코로나 간이 검사키트를 꺼냈다. 음성이었다. 하지만 평소와 다르게 ‘이건 감기다.’ 싶었다. 그렇게 토요일 오후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받았고, 남편과 나는 나란히 확진 판정을 받았다. 그동안 자가 격리해보고 싶다고 수없이 농담을 했는데, 말이 씨가 된 걸까.

남편은 출근이 2주 남아 있었기에 회사에 안 가도 된다며 좋아했다. 나는 머리가 복잡했다. 회사에 다니던 중이었다면, 휴가가 생겼다고 좋아했을까. 어찌 됐든 이런 시국에 많은 사람을 만났고, 혹시 내가 누군가에게 알게 모르게 전파했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미안하고 부끄러워졌다.


그렇게 주말이 지나고 다행히 주변에 추가 확진 소식은 없었다. 안심되자, 조금은 억울해졌다. 내 의지대로 내 하루를 채워가겠다고 퇴사했는데, 그 자유를 위해 이런 중차대한 결정을 했는데, 자가격리라니. 아무리 잠깐이라지만 몸도 아프고, 집에 갇혀 지내다시피 해야 하는 일주일은 내가 상상한 퇴직 후의 삶과는 어느 방향이든 거리가 멀었다.

퇴직 후 뭘 해야겠다고 구체적으로 정한 바는 없었지만, 뭔가 자유로운 시간이 날 기다리고 있다는 설렘은 있었다. 또 경험자들은 퇴직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현타를 느끼며 밀려드는 후회를 맞이하는 순간이 온다고 했다. 직후에 느껴지는 그 달콤한 자유를 실컷 즐기라는 말을 얼마나 많이 들었던가. 그러나 달콤한 자유에 대한 나의 상상은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남편은 일주일, 나는 보름은 아팠다. 하지만 내가 힘든 것은 아픈 게 아니라 다른 데 있었다. 바로 삼시 세끼를 챙기는 일이었다. 약을 먹기 위해서라도 먹지 않던 아침까지 하루 세 번의 끼니를 챙겨야 했는데, 정말 쉽지 않았다. 퇴직 후의 삶을 상상할 때마다 떠올렸던 ‘여유’라는 것을 앞으로도 영원히 찾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남편이 먼저 증세가 심해졌기 때문에 며칠은 병간호하는 느낌으로 맛있는 식사를 차려냈다. 사흘쯤 지나 내가 더 아파지면서 배달 음식 비중을 늘렸다. 하지만 배달이라고 마냥 편하지는 않았다. 가뜩이나 몸 상태도 좋지 않으니 바깥 음식이 속에서 잘 받지 않는 느낌이었고, 무엇보다 배달을 한 번 시킬 때마다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는 지긋지긋할 정도였다.

결국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열심히 집에서 요리하며 시간을 보냈다. 남편이야 석 달 열흘이라도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만 있으면 밥 한 그릇 뚝딱일 사람이지만, 나는 아니다. 나는 같은 종류의 음식을 여러 번 먹는 게 힘든 사람이다. 냉장고 털기가 시작되었다. 김치로 찌개를 끓이고, 볶음밥을 만들고, 전을 부쳤다. 애호박과 감자로 된장찌개를 끓이고, 짜장을 만들고, 구운 채소 샐러드를 만들었다. 파스타를 올리브오일, 토마토소스, 크림소스 종류별로 만들어 먹었다.

하루 종일 집에 있다 보니 간식 소비도 늘어나서 블루베리잼과 마늘 버터를 대량으로 만들어 쟁여두었다. 블루베리잼은 스콘에도 발라 먹고, 와플에도 뿌려 먹고, 요구르트 토핑으로도 먹었다. 마늘 버터를 식빵에 발라 굽기도 하고, 바게트에 발라 굽기도 하고, 허니버터맛 반달감자도 만들어 먹었다. 오븐에 한 쟁반씩 구워내야 해서 손 많이 가는 호두정과를 온종일 만들어서 김치통으로 한가득 쟁여놓고 먹었다.


주말까지 총 9일, 집안에 갇혀있던 그 시간 동안 나는 알게 되었다. 남편이 하루에 집에서 몇 끼를 먹느냐에 따라 영식님, 일식씨, 두식이, 삼식놈이라고 부른다던 농담이 왜 생겨났는지 말이다. 사실 남편이 없어도 끼니를 해결해야 하기는 마찬가지고, 요리를 내가 하는 대신 남편이 뒷정리를 전담하기 때문에 남편에게는 불만이 전혀 없다. 하지만 자식들 도시락 싸가며 삼시 세끼를 챙기던 어머니들의 정성과 노력, 그 애환은 알게 되었다.

하루 세 번 약을 먹느라 아침을 챙겨 먹던 보름 사이 적응이 된 것일까. 한 달이 지났지만, 15년 넘게 거르던 아침을 거의 거르지 않고 있다. 우유와 시리얼이라도 챙겨 먹게 되었다. 그리고 제주 한 달 살기를 하는 지금도 나는 하루 한 끼 정도를 제외하고는 숙소에서 요리해서 먹고 있다. 제주 맛집 투어는 물 건너갔다.


그래, 먹고살자고
그렇게 힘들게 일도 했었는데..
그 먹고사는 일에 하루를 다 쓰는 게
무엇이 이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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