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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애 Jan 31. 2023

축구는 재밌었고 엄마 꾸중은 재미없었어요



발표하는 시간에 이렇게 얘기했어.

뭐가 재미없었다고?

꾸중!






개학식 첫날 아침 지각 등교는 면하고 싶었는데. 또 지각이다. 엄마는 네가 자주 늦는 아이가 되는 게 걱정돼. 내일은 빨리 가자~. 아이를 학교에 기분 좋게 보내고 싶은데. 그날도 언성이 높아졌다. 저녁에 학원을 다녀와서 막 구운 삼겹살을 오물오물 씹으며 아이가 말했다. 방학 때 무엇을 했는지, 어땠는지 각자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나 보다. 아이는 방학에 축구는 재미있었지만 엄마 꾸중은 재미없었다고 발표했다고 했다. 혹시 다른 친구들 중에도 꾸중받은 친구 있었어? 아니.





학교는 사회로 나가기 전에 연습하는 곳이며 아이들은 충분히 실패해도 된다. 그러니 아침에 제 시각에 가지 못하는 걸 큰 잘못인 양 혼내지 말자. 그리고 어릴 때부터 잡아주지 못한 습관이 초등학교 입학하자마자 될 리가 없지. 엄마만 비장한 아이 기본 생활 습관 잡기 프로젝트는 1년째 진행 중이다. 6개월 동안 생긴 변화라면 늑장 부리는 모습에 화가 덜 난다는 것. 심지에 불을 붙이면 순식간에 타오르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폭탄처럼 쉽게 달아올랐다. 아이를 보내고 집으로 오는 길에는 기분이 자주 상해있어서 마음을 추스르며 돌아오기 일쑤였다. 요즘에는 불씨가 천천히 피어오르는 장작 정도지만 화는 여전히 난다.





화가 덜 나는 이유는 내가 어릴 적 빨리빨리가 안되던 아이여서 그렇고, 다른 엄마들보다 화가 더 났던 건 같은 이유로 인해서. 아이도 늦는 아이가 될 까봐. 초등학생 때 엄마는 나와 동생에게 학교 규칙, 사회 규범에 대해 엄격하게 가르치지 않았다. 가르침을 받은 기억은 없지만 해도 해도 안 돼서 포기한 건지, 다른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우리를 내버려 두었다. 학교에 나는 자주 늦었고 거기에 죄책감도 없었다. 문제는 성인이 될 때까지 그랬다는 것. 잘못되었다는 걸 인지하면 나 스스로가 별로인 사람이 되어버리니 생각하고 느끼는 것조차 피했다. 되려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행동했다. 나쁜 습관은 곧 나였음에도 그것조차 모르고 살았다. 아이만큼은 그러지 않았으면 해서 아이에게 알려주고 있다. 싫어도 해야 되는 일 같은 것들을. 하지만 엄마인 나조차도 늦게 기상해서 간단히 아침 차려주고 등교 준비 도와주며 심하게 늦지 않도록 겨우 학교로 들여보내고 있으니.. 갈 길이 멀다.




산수를 못하는 게 아니라..
내가 이야기해 줄까? 맨날 농땡이 치고
열심히 안 해서 그런 것 같은데?




아들은 학교에서 마법천자문을 접한 뒤로 한자에 관심이 생겨 아침마다 아는 한자 서로 대며 공격 (말)놀이를 하고 있다. 불 화. 물 수. 바람 풍. 막을 방.. 학교 가는 길은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데 그전에 아는 한자가 다 떨어져 게임이 종료된다. 엄마가 한자를 더 많이 알면 아이에게도 도움이 될 텐데. 한자책을 사러 동네서점을 찾았다. 문제집을 파는 층에 있었던 게 기억나서 계단을 오르는데 한 여학생이 천천히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고 있었다. 문제지를 끌어안고 고개를 숙인 채 자그마하게 한 말에 그녀의 엄마가 답했다. “수학을 못하는 이유는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만일 내가 아이가 수학 실력이 부족하다 느껴지는 날이 온다면 더 어려운 문제를 풀어서 수학공부가 얼마나 어려운지 체험해서 저렇게 비난하진 말아야겠다. 아.. 내가 더 일찍 일어나야 되는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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