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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애 Feb 28. 2023

선택하는 인생

어른의 선택




마음이 더 편안한 쪽으로 지내도록 키운 게 독이 되었는지 아이는 참지 않는다. 먹고 싶지 않은 반찬 손대지 않고. 김치를 꺼내려고 하면 냄새조차 맡기 싫어 짜증을 낸다. 학교에서 어차피 하는 글쓰기와 연산은 집에서 할 필요가 없다고 하며. 집안일이라도 시킬라 치면 뭐 줄 거냐고 보상을 요구한다. 하고 싶은 대로, 원 없이..





아이는 7시에 집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은데. 방학인 요즘에는 방과후수업 40분을 하고 나머지 시간 (7시간 정도) 바깥에 있다가 돌아온다. 바깥에서 놀만큼 놀면 집으로 일찍 돌아오는 날이 곧 올 줄 알았는데. 아이는 1년째 집에 일찍 들어오지 않는다.





들어줄 거면 시원하게 들어주고 막을 거면 단호하게 막으라고, 오은영 박사님이 말했거늘. 시원~하게 놔두지 않고 자꾸 시비를 해서 그런가.. 이도저도 아닌 게 된 듯하다. 노는 걸로 뭐라 하진 않았다. 공부는 진즉에 내려놓았고 (완전히는 아니다!) 아침에 늑장 부리는 모습, 반찬투정 하고 매일 먹고 싶은 메뉴만 요구하는 태도 그리고 티비와 게임시간 지키지 않는 일. 이런 부수적인 일에 종종 감정이 터진다.





아이가 공부에 손을 놔버려도 정말 괜찮은 건가? 가만히 답을 구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아니라는 답이 나왔다. 공부 안 해도 괜찮다고 겉으로 말만 하고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괜찮다고 때때로 다독거리며 갈 수 있었던 이유는 신생아 때부터 해오던 책육아를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책을 읽어주며 아이가 연필을 쥐지 않아도 공부하는 느낌을 받았다.





환상이 깨진 건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고 첫 상담날. 남들이 왜 이것저것 시키는지 그제야 납득하고 여름방학부터 뒤따라가보자는 심정으로 육아서를 줄줄이 읽었다. 책장 속 전집들을 정리하고 있는 한 달 전부터 이제는 엄마 뜻대로 책육아가 이어지지 않는다는 걸 깨달으며 좌절했다. 차라리 네가 공부 안 하고 놀고만 있으니 걱정이 된다고 말해야 할까. 솔직하게.





아이의 인생이니 너 알아서 하라는 심정이 되면서도 금세 그건 아니라고 되돌아와 다시 잔소리를 한다. 아침 먹자마자 침대 이불속으로 들어간 아이를 내버려 뒀다가 3분도 채 되지 않아 각방에 이불을 다 접어버리고 소파에 펼쳐진 담요를 치워버렸다. 아침마다 반복되는 레퍼토리에 나 자신도 질려버려, 그래..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 나 혼자만 나갈 채비 끝내 놓고 소파에 앉아서 기다렸다.





아이들은 서툴고 미숙하기 때문에 기다려줘야 한다는 말을 육아서에서 반복적으로 읽었으면서. 실천하지 않는 배움은 말짱 도루묵이다. 시간만 축낸다. 그 시간에 밀린 설거지를 하고 쌓인 옷가지를 개키는 게 더 현실적이다. 자괴감이 들었다. 아이가 엄마 눈치를 보더니 오늘은 혼자 가겠다는 걸 이를 악물고 평온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같이 가자고 했다. 기분이 태도가, 표정이 되지 않으려고.





아이의 짜증을 더 큰 엄마의 짜증으로 짓누르면 아이는 더 큰 짜증을 엄마는 그보다 더 큰 짜증을 내고. 문제는 증폭된다. 짜증과 분노를 올바르게 다루는 법을 엄마로부터 배우지 못하고 엄마와 똑같이 행동한다. 두껍고 질긴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누군가 그만두거나 바뀌어야 하는데. 엄마인 내 몫이겠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고 과정이라 여기며 끝내 성공할 거라고. 성공한 사람이 될 거라는 게 아니라 미숙한 일들에 능숙해지면서 성장한 사람이 될 거라고. 나와는 다르게 자기애로 가득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아이를 신뢰하고 지지해주어야 한다. 되는 상황이 되기 전까지 되지 않는 상황을 무수히 만날 텐데. 그 속에서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지난 1년간 아이 취미 발견, 능력 계발, 습관 개선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시간 속에 성취감을 느꼈던 사건은 나타났다. 배드민턴 채에 셔틀콕을 맞추지 못해 시작과 동시에 짜증 내고, 이기지 못하는 체스판을 뒤엎고, 생각한 대로 접히지 않으니 색종이에 손도 대지 않던 아이. 그런 아이가 배드민턴 수업이 재미있다고 연달아 세 시간을 듣고, 다음 수를 생각하며 체스판에서 기물을 움직이며, 자기는 학 접기를 제일 잘한다며 그것을 응용하여 종이팽이 하나를 완성하게 되었다. 못하는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무언가를 잘 해내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니 아침에 깨워도 오랫동안 일어나지 못하고, 늦어도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아이를 다그치지 말자. 어릴 때 엄마가 붙잡고 알려주지 않아 형성된 나쁜 습관이라는 생각과 다 커서 고치기 힘든 현재가 맞물려 있다. 어릴 때부터 습관을 잘 잡아줘야 한다는 집념으로 아이를 아침마다 닦달한다. 지금도 늦게 일어나고 시간 관리를 못하는 엄마와는 다른 사람이 되도록. 다그칠수록 아이는 그런 사람과 멀어진다. 다그치지 말고 보여주자. 아이는 아이대로 괜찮은 사람이 될 것이라고 믿으며 그렇게 살지 못한 지난 삶을, 살고 싶었던 인생은 내가 다시 살자. 바꿀 수 없는 과거의 아이는 이미 커버렸다. 지금의 아이는 그때와 다른 아이다.





아이를 최대한 웃으며 교문으로 들여보내고 횡단보도에 멈춰 섰다. 힘들어. 원래 나는 라면만 먹는 사람이었어. 건강한 아침을 챙겨 먹는 사람이 아니야. 건널목 편의점을 바라보았다. 지금 라면을 먹으면, 나는 라면을 먹는 사람이다. 초록불로 바뀌어 걸음을 내디뎠다. 집에 있는 식빵을 굽자. 그 위에 크림치즈를 바르자. 커피도 내리자. 횡단보도를 건너서 앞으로 쭉 걸어 나갔다. 라면 먹는 것도 내 선택이었구나. 인생은 선택이다. 그러니 웃기로 선택할 수도 있는 거다. 인생 별 거 없다고 인상 쓰며 큰 소리로 말하던 엄마에게, 그 말이 맞다고 웃으며 대답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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