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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애 Mar 10. 2023

엄마 같은 사람은 되지 마

노력하면 돼



“엄마는 어릴 때 어땠어?“

“엄마는…”






학원차에서 내린 아이의 모습이 헐렁해 보여 물으니 학원 차 타기 전부터 외투와 책가방이 없었다는 말에  학교로 향했다. 차량 선생님과 찾다가 못 찾고 학원으로 곧장 갔다고 하니 운동장에는 없을 테고. “지난번에 그네에서 옷 찾았다며? 그네부터 가보자.”, “없어!” 대답 뒤에 뭔가 생각났다는 듯 아이는 몸을 틀었다. 허옇고 구불구불한 형체가 공원 의자 위에 툭 튀어나와 있었다. ‘찾았네.’





“나도 어릴 때 많~이 잃어버렸다.” 가방과 점퍼를 찾으러 학교 옆 공원에 도착했을 때 남편 전화가 걸려와서 자초지종을 대략 알려주니 남편이 말했다. 수화기 너머의 남편 목소리는 떨어진 거리만큼이나 이 일과는 무관한 듯했다. 들이지 않아도 될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느낌. 없는 체력을 아껴 쓰는 중인데 아이는 나의 에너지를 완전히 소진시킨다. 그 일에 일가견이 있다. 일부러 그러겠나.. 다스리지 않으면 화가 어디로 튈지 몰라서 (보통은 아이에게 튄다) 마음 수련 중이다.





오늘 아침에는 아이가 20분 늦게 등교했다. 지각이다. 5분, 10분이 아닌 20분. 책가방과 외투를 찾으러 가는 길에 물었다. “오늘말이야. 초등학교 인생에서 최고로 늦었는데.. 괜찮았어?” “교실 뒤에서 5분 동안 뒤돌아 있었어. 혼은 안 났어!” 아이에게 혼난다는 건 무섭게 말로 야단받는 일인가 보다. 잘못을 했으니 마땅한 벌을 받긴 받아야지. 지각 이야기는 그렇게 마무리하고 자신이 학급 임원이 된 이야기를 반복했다. 아이들이 자신을 많이 뽑았다며. 뽑히고 나서 축구선수들이 동료들과 안는 포즈를 자신을 뽑아준 친구들과 했다나.. 선수들이 어깨를 서로 감싸 쥐고 엎드려 파이팅 하는 모습을 두고 하는 말이라 짐작했다.






아침 20분 지각 이야기는 전날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새 학기 시작 후 공부습관을 잡기 위해 매일 해야 하는 숙제를 정하고 요일별 약속을 지키고 있었다. 어제저녁, 아이가 숙제를 안 하면 안 되냐고 했다. 자신은 학교와 돌봄 교실에서 이미 국어와 수학을 한다며.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아이가 대는 근거도 똑같고. 1학년 때는 아이말이 일리 있다 여기고 잠시 쉬어보자 했지만. 2학년 시작된 지 얼마 됐다고 또 이러나.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고민 끝에 아이 손을 들어줬다. 일상생활습관 잡아주는 걸 목표로 하자. 계획을 변경했다.





“아이스크림 먹어도 돼?” 엄마를 꼭 시험하는 것 같았다. 숙제도 안 해, 샤워도 나중에, 치우는 것도 있다가.. 그런데 아이스크림? 통에 남아있던 아이스크림을 싹싹 긁어 초코시럽을 뿌려 주었다. “엄마 먼저 씻을게” 먼저 씻기 싫어해서 엄마 먼저 씻는다고 으름장 놓듯 씻으러 갔다가 “씻으니 이렇게 개운하고 좋다~” 오버스럽게 액션을 취했는데. 이런 것도 이젠 안 먹힌다. 전기장판을 미리 틀어 뜨끈한 이불속에서 <하루 3줄 초등 문해력의 기적>을 읽었다. 아침에 어린이 신문을 읽고, 엄마가 읽으라고 권해주는 세계명작을 읽고, 한자와 영어를 공부하고, 교과서 복습을 놓치지 않는 집공부. 남은 1/3은 읽지 않아도 되겠다. 아무래도 나와 아이는 책 속 아이와 엄마처럼 절대 할 수 없을 테니. 지금의 아이를 떠올리니 더 확실해졌다.





40분 끝에 물소리가 멈췄다. 드디어 끝났네. 로션 발라주러 가야 되겠다. 몸을 일으켜 아이에게로 다가갔다. 로션을 짜고 등에 발라주었다. “바닥에 있는 외투, 옷장 안에 정리해~” 내복을 입으려고 옷장이 있는 방을 향하는 아이에게 말하는 순간, 아이는 짜증을 냈다. 이번엔 지지 않으려 방 앞에 굳게 서있었다. “아~ 한다 해!” 곱지 않게 받아치더니, ‘후우~~~~’ 크게 한숨을 쉬며 구시렁대기 시작했다. “내가 큰 잘못을 저질렀구나~” 볼멘소리를 다 듣지 못하고 소리를 꽥 질렀다. 옷 정리하는 일이 그렇게 힘든 일이니? 그리고 하고 싶은 일만 쏙쏙 골라서 하고 해야 할 일 안 하냐고. 정말로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고 싶냐고. 나의 잔소리 레퍼토리가 시작되었다. 아이는 엄마의 큰 목소리를 듣자마자 눈물을 뚝뚝 흘렸다. 좋게 이야기해도 안되고.. 정말 혼이 나고 싶어 저런가 생각이 들 정도로 제멋대로인 아이는 나의 지난 육아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엄마 잘못이겠지.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가고 아이와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있으니 아이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금방 그 손을 잡고 엄마도 용서를 구했다. 화해하자 아이는 아빠가 어릴 때 집 바깥으로 쫓겨난 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괜찮았네 그래도 옥상으로 쫓겨났으니 말이야. 아빠는 할아버지한테 배운 건가? 예전에 나 집 바깥으로 쫓아내려고 했잖아. 그래.. 그랬지 참.. 아이는 몇 년 전 아빠에게 심하게 혼났던 이야기를 한다. 남편도 사과했지만 그때가 종종 생각나나 보다. 딱히 할 말이 없어 가만있다 내가 말을 꺼냈다. 내일은 일찍 일어나야지. 내일도 늦으면 안 될 거 아냐. 내일은 일찍 일어나서 준비해 볼게. 그래..





전날보다 더 늦게 일어났다. 그래도 지금부터 준비하면 늦지 않는다며 아이에게 시간도 몇 차례 알려주고 남은 시각도 두 번 정도 알려주었지만 평소와 다름없었다. 오늘도 늦는구나. 나는 최선을 다했어. 그래, 오늘 어디까지 늦나 한 번 보자. 먼저 준비를 마치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가만히 기다렸다. 구슬로 축구를 하고, 포켓몬 카드를 뒤적이고, 다시 구슬을 발로 차고. 차라리 눈을 감는 게 나았다. 이미 도착해있어야 하는 시각에 아이는 거실에 있었고 맨발이었다. 그래.. 기다리자. 지각은 네 몫이다. 평소와는 다르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엄마가 더 무서웠는지 10분 뒤부터 준비를 시작했다.





“혼자서 준비 잘하네~ 엄마가 말 안 해도 알아서 하네? “ 최대한 비꼬지 않고 이야기했다. 아이는 고개를 약간 숙인 채 아무 말이 없었다. ”진짜야. 엄마가 말 안 하고 준비해서 평화로운 아침이었던 것 같은데?“ 정말 진심이었다. 어차피 말해도 안 듣는데.. 방법을 바꿔보고 싶던 차였다. 기분 나쁘게 학교 가지 않게, 엄마와 관계가 나빠지지 않게 하는 일도 중요하단 생각도 들었고. 아이가 다 듣고 입을 뗐다. “근데 늦었잖아.” 참나.. “다 가질 순 없어.” 꾹 참고 답했다.





괜찮다고 생각하며 돌아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갑자기 부아가 치밀었다. 늦는 게 뭐 대순가! 앞으로 알아서 가라지. 그럼 지각하는 아이가 되겠지. 온갖 부정적 생각이 들었다. “그래.. 너도 나 같은 사람이 돼!” 내 귀로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나 같은 사람이 되지 않게 하려고 애써왔구나. 나는 아직도 나를 사랑하지 못하고 있구나. 과거의 나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구나.






“엄마~ 엄마는 어릴 때 지각 안 했어?”

“어.. 엄마도 지각했지. 자주 했어. 엄마는 외할머니가 알려주지 않아서 너무 힘들었어.”



일상에 필요한 기본적인 습관들을 알려주지 않고 그저 내버려 두며 키운 나의 엄마 같은 사람이 되기 싫어서 나는 사소한 것도 알려주고 키웠는데. 결론적으로 나도 엄마 같은 사람인 거네. 그러니 아들, 너도 엄마 같은 사람이 돼. 엄마처럼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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