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여 동안 브런치를 들여다보지 못한 변명
선거운동이 시작한 날 아침 9시부터 득달같이 전화해서
자전거 도로를 막고 있는 선거차량 때문에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는 본인의 통행권을 침해당했다고
선거운동 기간 공익적 목적을 위한 불편을
내가 왜 감수하냐며 불같이 화를 내던 여자분
선관위는 선거운동을 한다고 차량으로 도로를 점거한
후보의 유세차량을 강제 이동시킬 수 없다며
경찰에 연락을 해야 한다고 했더니
경찰이 선관위에 전화하라고 했다며
도대체 시민의 권리는 누가 지켜주냐며 한숨을 쉬던 청년
자기는 구의원 선거 투표용지에 한 명만 찍어야 한다는
어떤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고
자긴 바빠서 찾아보고 그럴 틈도 없었으니
당장 방송과 뉴스에 그거 알리고
투표소에 해당 공지를 하라고
10분 넘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아주머니
동네 앞에 선거차량이 주차해있어 아이들이 위험하다며
자기가 내는 세금으로 먹고사는 공무원들이 있는데
내가 직접 전화까지 해야 하냐며,
당장 해당 후보 측에 연락하고
그럴 때 자신의 개인정보는 알리지 않아야 하는
개인정보보호법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지 않냐며
계속 사람 무시하는 말투로 지껄여대던 영감님
혹시 상대방 후보의 선거편의를 봐주기 위해
민원전화를 핑계로 자신들 선거차량을 옮기게 한 거냐며
항의전화를 해오던 후보 캠프의 사무장과 후보
실례지만 누구시라고 전해드릴까요..
걸려온 전화를 담당 공무원에게 연결시키려고 하면서
전화를 건 사람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물었더니
한 2초 정도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다가 한숨을 내쉬면서
하.. 그냥 돌려요.. 내가 이름까지 이야기해야 돼.. 라며
공무원도 아닌 니가 왜 내 이름을 물어보냐는 투로,
귀찮게 하지 말고 전화나 얼른 돌리라던 공무원
담당 주무관에게 전화 돌려드리겠습니다.. 하고
전화를 돌리려고 하는 찰나에
들으라는 듯이 ‘나 지금 바쁘니까 전화돌리지 마요’ 하던,
민원인이 문의한 내용을 전화메모로 전달했더니
해당 민원인에게 전화할 생각은 안 하고
해당 내용의 옳고 그름을 나에게 따져대던 공무원들
지방정부의 운명을 가르는 선거에 관련된 민원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시민의 권리 보호와 정의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실은 그들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도로교통에 방해가 돼요”까지라는 걸, 그 이후 이뤄질 조치에 대한 판단과 실행은 그런 권한을 가진 조직과 사람이 하는 거라는 걸, 진짜 모르는 걸까
월드컵 거리응원으로 도로가 심각하게 막힐 때, 전화거신 선생님께서는 어디로 전화를 하실 건가요? 대한축구협회나 붉은악마 사무실에 전화하실 건가요? 그건 ‘경찰’에 전화를 해야 하는 겁니다. 대한축구협회나 붉은악마는 주어진 역할인 ‘거리응원’이 진행될 수 있도록 준비하구요,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의도하지 않은 시민의 불편 해소는 경찰이 하는 거예요. 마찬가지인 겁니다. “소음”이나 “차량의 도보점검” 등의 상황을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을 나라에서 부여받은 경찰 측에 해당 내용을 말씀하셔야 하는 겁니다.
투표 관련 정보를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선관위는 많은 예산을 투입해 다양한 채널을 통해 해당 정보를 국민들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국민들에게 그 내용을 직접 알려드리지는 못합니다. 선생님께 해당 정보가 전달되지 않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것이 선생님이 저에게 10분 동안 폭언을 퍼부을 수 있는 정당한 이유가 되진 못해요. 심지어 선생님이 선관위에게 이래라저래라 지시를 하실 수 있는 권한은 더더욱 없구요. .선관위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더 효과적으로 개선해야 하겠지만, 국민들이 스스로 해당 정보를 찾기 위한 노력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국가권력에 대한 담론을 이야기하는 선거와 관련된 민원을 제기하다 보니 자신이 국가권력을 결정하고 실행할 수 있는 거대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져 문제 해결을 ‘지시’하는 사람들의 폭력에 가까운 민원들에 시달리고,
폭력적인 민원 당사자들의 분노와 답답함을 어떻게든 풀어주려고 마음을 담아 답을 하다가 지치고,
그런 걸 이미 수차례 겪어봐서 계약직 인력을 고용해 민원의 총알받이로 앞세우고는 자신이 그 전화를 직접 받지 않은 것을 맘 속으로 안도하며 그저 이 선거가 얼른 끝나기만을 기다리던 공무원들의 모습에 실망하며,
책 한 줄 읽어지지 않고, 글 한 줄 써지지 않던 삭막하던 지방선거기간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