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유 Aug 02. 2021

네 선택을 언제나 응원하고 싶어

“오늘은 둘 중 어떤 옷을 입을래?”


아침 식사 후 세수까지 마치고 나면 나는 아이 티셔츠 두 개를 들고 나온다. 티셔츠 두 개를 아이 앞에 펼쳐두고 아이에게 골라달라고 한다. 19개월 아이는 씨익 하고 웃으면서 주저 없이 하나를 손으로 찍는다. 그 순간에 “이거!”하고 옹알거리는 귀여운 목소리까지 덤으로 들을 수 있다. 아이가 15개월이던 봄부터 한여름이 된 지금까지도 나는 아침에 티셔츠 두 개를 들고 아이에게 말을 걸고 있다.


  아이는 좋고 싫음이 분명하다. 언제나 고민 없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한다. 선택을 망설이는 내 모습과는 달랐다. 옷 한 벌을 고르려고 해도 ‘혹시 촌스러운가’, ‘이상하게 보일까’’ 고민이 덧 데어 지면서 선택의 시간은 길어졌다. 나도 우리 아이만 할 때는 선택이 쉬웠을 텐데 말이다.

 

 육아휴직을 하기 전에는 회사에서 회식 메뉴 고르는 일이 내게 오는 게 그렇게도 싫었다. 다른 직원들이 모두 만족할 만한 메뉴를 선택할 자신이 없었다. 원래 선택을 잘 못하는 일명 ‘선택 장애’이기도 했다. 친구와 밥을 먹을 때도 ‘너 먹고 싶은 거 골라’라는 말이 세상 난감했다. ‘뭐 먹고 싶어?’라는 질문이 쏟아지는 기간이 있는데, 바로 임신기간이었다. 처음에는 난감했던 이 질문이 점점 슬퍼졌다. 정말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문득 내가 선택해서 만들어 온 인생인데, 만족스럽기는 커녕 슬퍼지기도 한다. 그 이유는 아마 지금까지 한 선택이 나를 위한 것만은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TV 채널을 돌리다가 5살 배기 남자아이 하나를 봤다. 많은 장난감이 놓인 방에 엄마와 남자아이가 있었다. 놀잇감으로 아이 심리를 파악하는 방이었다. 남자아이는 가지고 놀고 싶은 장난감을 골라서 놀면서도 엄마 눈치를 봤다. 엄마가 표정이 심드렁하자 자신이 고른 장난감을 제자리에 두고, 엄마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들고 엄마에게 갔다. 5살 배기 아이의 선택에는 이미 엄마의 시선 포함되었다. 내 선택에 남의 시선이 포함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성장과정인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면 타인이라는 개념이 약한 15개월 아이가 선택을 주저 없이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 된다.


  우리 아이가 앞으로도 주저 없이 선택할 수 있으면 좋겠다. 선택을 할 때, 타인의 시선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타인의 시선 속에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걸 잃지 않으면 좋겠다. 그런 소망을 담아 나는 아이의 선택의 선택을 언제나 응원하는 엄마가 되고 싶다.


  아이는 오늘도 내가 가져온 티셔츠  개를 두고 거침없이 선택했다. 빨간 자동차가 그려진 티셔츠를 골랐다. 내가 티셔츠를 들고 다가가니 아이는 도망가려 했다. 아이는 자신이 고르긴 했지만, 입지는 않겠다는 듯이 몸부림을 쳤다. 아이를 달래 가며 겨우 옷을 입혀두고 보니 그날따라 빨간 티셔츠와 파란 바지의 대비되는 색감이 눈에 띄었다. 그래도 우리 아이가 입으니 예쁘기만 하다. 나는 아이를 향해 엄지를  들어 올렸다. ‘ 골랐다. 너무 예쁘다하고 말해주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 아빠는 당황하지 않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