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브레는 고급진 스테디셀러
내일 캠핑을 앞두고 과자를 사려고 마트의 과자 코너에 갔다.
사브레를 좋아하던 사람이 떠올라 시선이 머물던 찰나에 신랑이 한마디 거들었다.
“으~ 세상 맛없는 과자. 난 누가 줘도 안 먹었어. 사브레는”
살던 곳 가까이에 해태 공장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어른들이 집에 오실 때 꼭 해태 종합 과자박스를 들고 오셨다. 어린 입맛에 맛있는 봉지과자가 오죽 많았을까 싶다마는 오빠는 본인이 싫어하는 양갱과 사브레만 내 몫으로 주었다. 더 달라고 하면 하나 더 내어주는 게 버터링 정도.
사브레도 버터링도 그 당시엔 고급과자였다는 걸 지금은 알지만, 어린 나이엔 그저 봉지에 든 과자가 최고였다. 힘에서 밀리니 군소리도 못하고, 어느 것 하나 입맛 당기는 게 없지만 그래도 안 먹을 순 없으니 입에 넣어는 본다.
양갱을 깐다. 단 걸 좋아하는 내 입에도 달디달고, 어린이들이 좋아하지도 않을 팥으로 만든 과자니, 하나를 뜯으면 앉은자리에서 다 먹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래도 쪼금씩 베어 물다 보면 다 먹기는 했다. 으레 양갱을 받아먹다 보니 나중엔 제법 속도도 붙었다.
버터링은 맛있긴 한데 목이 맥혔다. 그래도 먹을 만은 했다. 신기하게 나이가 들수록 맛있어졌었다.
사브레는 탈락이다. 설탕을 녹여 만든 소보로 빵을 부드럽게 굳힌 거 같은 식감이 영 내 취향은 아니었다. 셋 중에 제일 별로였고, 사실 지금은 어떤 맛이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할 정도.
도저히 못 먹겠는 사브레를 들고 아빠에게 가 속닥속닥 귀속말을 하고 나면 아빠가 “아빠 사브레 먹고 싶네. 아빠 사브레 주고 너는 다른 과자 사 먹어”라고 하시면서 호주머니에 돈을 찔러 넣어 주시면, 그 길로 슈퍼로 달려가 내가 좋아하는 꽃게랑이랑 자갈치 등 봉지과자를 넉넉히 사서 돌아왔다. 해태 과자봉지를 들고 먹는 오빠 앞에서 원하는 과자는 이렇게 얻는 거라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내 과자를 절대 사수했던 기억.
늘 사브레는 그렇게 아빠에게 바꿔 먹었다.
내가 아빠의 취향을 본 대로 기억하듯 오빠랑 엄마도 본 대로 기억한다. 오빠는 연양갱을 할머니들 먹는 과자쯤으로 알고 끔찍이도 싫어했는데 내가 오랜 시간 베어 물고 있으니 아마 아껴 먹는 줄로 단단히 오해한 모양이다. 그래서 여전히 양갱을 좋아하는 줄 알고 가끔 사서 보내기도 하고, 엄마는 반찬을 바리바리 싸주는 틈에 연양갱을 넣어 놓기도 하신다.
양갱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원해서 좋아한 과자는 아니었다. 아빠도 어쩌면 사브레를 원해서 좋아한 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늘 내가 안 좋아하는 과자만 좋아하셨으니깐. 좋아하셨던 과자라 한 번씩 아빠 산소에 땅콩그래를 사들고 갔는데 어지간히 안 좋아하는 과자를 하늘에서도 말 한마디 못 하고 드시고 계실까 봐 걱정이다. 막연히 늘 그렇게 바꿔 주시니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거 같은데 더는 물어볼 수가 없다.
아빠. 진짜 사브레를 좋아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