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선물은 무엇을 담았는가
커피를 홀짝이고 있는 정오 갓 넘은 시간에 『샤넬 코드 컬러 팝업 초대장』 문자가 왔다.
예전에 립스틱을 사면서 회원 가입을 해둔 터라 이따금씩 이런 문자가 오고는 했지만, 「검사 그만뒀습니다」라는 책을 보며 ‘자연스러움’에 대해 생각하던 터라 이 문자가 썩 거슬렸다. 이제는 더 이상 설레지 않는 ‘샤넬’이라는 두 글자를 보며 어떻게 하면 이 문자를 받지 않을 수 있을까를 잠시 생각했다.
누군가의 생일, 생일이 아니더라도 축하하거나 위로할 일이 생겼을 때 가까이에서 챙길 수 없는 경우 카카오톡 선물하기를 이용해 선물을 보내곤 한다.
고등학교 시절의 연으로 나의 20대 전부 그리고 30대 초반을 함께 했던 나보다 결혼을 먼저 하고 아이를 먼저 낳은 결혼선배, 육아선배인 친구 S의 2년 전 생일날, 무엇을 줄까 고민하다가 샤넬 립스틱을 보냈다. 화장을 거의 하지 않고 아이 엄마로 지내고 있는 대학 동기에게 그 신랑이 립스틱이라도 발랐으면 좋겠다고 했던 말이 떠올라 립스틱 선물을 생각했고, 여자라면 설레는 샤넬이 좋겠다 생각한 터였는데,
“역시 너의 취향은 럭셔리하당^^”이란 답장을 받고 꽤 많이 불쾌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말이 아닌데, 당시에는 아무 변화도 없이 역시나 너는 아직도 명품을 밝히고 있구나로 읽혔었다. 부정할 것도 없는 fact였고, 그러려고 보낸 선물은 아니었나 생각했다. 순수할 때 만났던 친구에게 마음을 읽혔을 뿐이었는데 왜 나는 불쾌했을까.
친구의 그 문장이 그 친구에게 연락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됐고, 우린 그 이후로도 간간이 소식은 전하지만 얼굴을 본 적은 없다. 한 때는 마음 한구석 작은 티끌도 꺼내 보이던 둘도 없는 친구에서, 지금은 한껏 멀어진. 많이 불편해져 버린 관계는 비단 그 일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그리고 작년 초, 내가 상처받을까 봐 유난히도 나를 걱정해 주는 또 다른 친구 S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온 마음이 촉촉해져서 또 내 딴에 같은 마음으로 샤넬 립스틱을 보냈다. 재작년에 이미 샤넬 립스틱을 선물하고 생각이 많아져놓고, 나는 망각의 동물답게 같은 선물을 보냈다.
S는 감사하다고 나에게 책을 보냈다. 책을 받고 이내 립스틱을 선물한 내가 부끄러워, “나도 책 선물할걸. 립스틱이 부끄러워진다”고 답했다. S는 “나도 샤넬 써보고 좋다. 이럴 때 써보지 언제 써봐”했다. S가 얼마나 명품 따위에 관심이 없는 걸 알면서도, 얼마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알면서도 무엇을 선물할까 생각할 때 내가 좋아하지 않던 책은 내 의식 어디에도 머물지 못했었다.
아직도 모르겠다.
선물은 내 의도를 상대방이 신선해하기를 기대하면서 내가 즐겁자고 하는 것인지, 상대방의 마음에서 상대에게 필요한 것을 해주는 게 맞는 것인지 답을 내지 못했다.
그래서 생각을 바꿔봤다. 선물을 받는 입장에서 나는 선물이 어땠으면 좋겠는지를.
받는 걸 그냥 좋아하는 나라서 내가 필요한 것을 해주는 것도 기쁘지만, 내가 몰랐던 것을 새롭게 선사해 주는 선물도 의외의 맛이 있어서 좋았다. 아무리 그래도 샤넬립스틱은 그 어떤 의미도 없어 보였다.
손등에 짜 놓은 샤넬 핸드크림을 쓱쓱 비비는 엄마에게
나: 엄마 그거 샤넬이야.
엄마: 어쩐지 향이 참 고급지다. 좋아.
엄마에게도 샤넬의 이미지는 럭셔리다.
샤넬이어서 럭셔리하게 느껴졌는지, 아니면 그 향 자체가 진짜 럭셔리였는지 모르겠다.
작년에 퇴사한 후배가 OJT를 마치고 감사의 의미로 준 이 샤넬 핸드크림도, 내가 샤넬립스틱을 선물한 그 이유와 같은 이유였을까. 엄마와 나는 여자라면 설레하는 샤넬 핸드크림에서 낯설지만 고급진 향을 잠깐이나마 공유했다.
앞으로 내가 다른 이에게 샤넬립스틱을 선물하는 날은 없을 거다. 설령 샤넬을 좋아하는 사람이더라도^^
하지만 어울리지 않을지라도 샤넬립스틱을 나에게 선물하는 날은 또 올 거라 믿는다. 버렸다 믿었지만, 버리지 못한 작은 사치를 나는 한 번씩은 하고 싶을 것 같다.
자연스러움의 가치를 동경하지만, 아직은 덜 자연스러움에 발을 담그고 있는 모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