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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나 Jul 13. 2023

행복의 척도

 


잠들기 전 간혹 신랑의 행복지수를 점검하고는 한다.



나: 오늘의 행복의 척도는 0부터 10까지 몇 점이야?
신랑: 7점?
나: 요새 너무 행복해 보였는데, 고작 7점이야?
신랑: 고작이라니. 그거 높은 점수고, 행복한 거야.
나: 10점 만점이 행복한 거 아니고?
신랑: 글쎄... 10점 만점의 행복이 가능할까?
나: 7점이면 왠지 완전한 행복이 아니라 꼭 불행이 끼어 있는 것 같잖아. 온전하지 않은 느낌.
신랑: 행복의 척도를 물었지, 불행의 척도를 물은 건 아니지 않아? 행복과 불행이 같은 척도 안에서 행복의 척도에 묻어가진 않아.
나: 행복의 반대말이 불행인데, 불행이 당연히 행복척도에 반영되어서 점수가 나오는 거지.
신랑: 그렇더라도 7점. 대신 불행하단 생각은 전혀 없어.
나: 그럼 됐어. 불행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리고 며칠 후에 또 비슷한 질문을 이번엔 신랑이 물었다.


나: 우리 앞으로 돈 벌 수 있겠지?
신랑: 응. 얼마를 버느냐의 문제지만, 돈은 벌겠지.
나: 그렇겠지. 요새 내가 다시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오네?
신랑: 요새 안 행복해?
나: 아니 행복해. 근데 이상하게 전처럼 10점 만점은 아니야.
신랑: 몇 점인데?
나:... 6점?
신랑:...(그리고 딴짓)


전 같으면 점수가 10점이 안되는데 왜 나를 걱정하지 않냐고 옆에서 닦달을 했을 텐데, 신랑에게 6점은 아주 행복한 점수니 걱정스러운 점수는 아닐 테고, 말을 더 이어가지 않아도 나도 이제는 괜찮다.


나에게 행복 점수는 늘 0점 아니면 10점이었다. 늘 나의 답은 극단적이라고 할 만큼, 좋으면 10점, 안 좋으면 0점이었다. 그 사이값은 Yes or No로만 표기하면 선택권이 줄어드는 것 같으니 그저 보여주기용 숫자들인 것처럼. 조울증이냐는 말도 많이 들을 정도로 흥이 차오를 땐 술을 마시지 않아도 천장 뚫을 기세로 하이텐션이 되었다가도, 기분이 별로일 땐 저 바닥 끝이 어디까지인지 기어이 확인을 하고야 마는, 극단적 성격의 소유자.


그런 나에게 신랑의 행복 척도는 신혼일 때 꽤나 나를 괴롭혔다. 그의 행복 점수 6-7점이 그가 느낄 수 있는 꽤나 행복한 상태인 것을 모르고, 만점이 아닌 점수에 우리의 결혼은 어딘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그즈음 “결혼하니 행복해?” 혹은 “신혼이라 너무 행복하지!”라는 주변의 관심에 선뜻 “네, 너무 행복해요”란 답이 안 나오는 것도 한몫했다. 이 결혼 자체가 애초에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 때, 결혼을 10년 전에 한 J(늘 나에게 관점전환은 J, 너였구나)가 결혼이 꼭 두 사람의 행복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요. 결혼을 했어도 각자 인생은 독립적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꼭 행복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에 어찌나 마음이 놓였는지 모른다.  


결혼 직후 왜 행복하지 않았는지는 나중에 알았다. 결혼 6개월 동안, 연애시절 참 맞는 게 많았다고, 그래서 연분이라고 생각한 그와 참으로 안 맞는다는 사실만 차근히 확인해 나갔다. 어느 날 아침에 짜증을 확 내는 나에게 신랑이 처음으로, “너도 저 속옷 서랍 참 안 닫아. 나도 한 번씩 저게 나온 줄 모르고 무릎도 부딪치고 그래서 멍도 들고는 하는데, 나는 그냥 가만히 닫아줘. 네가 정신이 없어서 깜빡했겠지 하고. 나라고 네가 하는 게 온전히 다 괜찮을까? 근데 그냥 말하는 대신 그 행동을 내가 하고 말아. 나는 그래. 나는 그렇다는 걸 알아줘.”


그날 하루 종일 그의 말이 생각났고, 그 뒤로 며칠간 내가 열고 닫지 않은 그 서랍이 빼꼼하고 있을 때마다 나는 얼마나 부족한 인간이었나 하는 생각에 괴로웠다. 결혼을 앞두고 몸이 아파 신혼집을 구하지 못하고 내가 있던 오피스텔에서 신혼살림을 꾸린 우리는, 신혼살림이랄 것도 없이 전적으로 그냥 내가 살던 곳에 신랑만 작은 캐리어를 하나 들고 왔을 뿐인 그 집에서 나는 텃세라는 걸 부리고 있었다. 그동안 살아온 내 방식에 그를 욱여넣어가며, 갖가지 텃세를 부렸다.


결혼을 했음에도 공간의 주인이 우리가 아니라 여전히 나였던 그 공간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행복점수 6-7점을 이야기했건만, 그 행복지수도 오롯이 10점이 아닌 게 잘못되었다고, 그래서 우리 결혼이 행복하지 않은 거라고 답을 내고 있었다.


어딘가에서 주워들은 결혼에 대한 각종 환상을 차곡차곡 ‘결혼이란 이래야 돼’의 주머니에 모아두고, 그 주머니에 없는 온갖 인상이 찌푸려지는 것들이 하나하나 생길 때마다 나의 결혼은 잘못되었다고 답을 맞혀가는 방식에서 어찌 행복이란 단어가 연상될 수 있었을까.


내가 참고한 결혼생활은 다시 태어나도 아빠를 만나겠다는 엄마의 소박한 결혼이 아니라 아직도 방귀를 안 텄다는, 아직도 쌩얼을 공개하지 않았다는 한껏 부풀려진 화려한 연예인들의 결혼이었으니, 환상 주머니에 얼마나 많은 강박이 담겨 있었던지는 차마 부끄러울 지경이다.


신랑의 그날 아침 일침 이후로 우리의 결혼생활은 조금씩 나아졌다. 결혼 권할만하냐는 질문에 우리는 마침내 결혼이 온전한 행복을 가져다주는 건 아니지만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이야기는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더 이상 10점의 행복을 바라지 않는다. 10점만큼 행복해야 해, 불행이 끼어들 틈을 주면 안 돼, 그럴 땐 웃어야 해, 지금 이 경험은 너무 환상적인 거니 너는 행복해야 해 하는 강박이 끼어들면 온전히 그 순간을 즐길 수 없다.


Here and now. 

지금 여기에서 솔직하기. 불행한 만큼, 행복한 만큼 가감 없이 그저 순간을 살기로 다짐했다.




엄마는 죽을 용기로 살아야 한다고 했고,

나는 오죽했으면 그랬겠냐고, 그 끝이 참 슬프다 했다.


자살 기사를 접하면 엄마와 내가 자주 나누던 대화다. 아마 엄마는 살고 싶어도 살 수 없었던 아빠에게 감정이입을 했을 테니, 누군가는 간절했던 삶을 등지는 건 내내 용납될 수 없었을 거다.


우리나라는 점점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있고, 어릴 때 배웠던 경제대국들 사이에서도 결코 뒤지지 않을 만큼 성장했다. 하지만 그 이면엔 다른 오명의 타이틀인 자살률 1위가 따라붙는다.


3년 전 어느 가을, 단단했던 분의 비보에 그해 겨울을 꽤나 앓았었다. 잘 포장된 단단함과 웃음이 그 분과 매칭이 안된다고 생각했기에 충격은 꽤나 오랜 시간 유지되었다. 눈물이 마치 나약함의 상징이라도 되는 양 눈물을 함부로 보이지 말라는 사회의 암묵적 무게가 어쩌면 그분을 거기로 몰았는지도 모르겠다.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마음의 감기를 빨리 알아채는 게 내 과제라도 되는 것처럼 이따금씩 신랑의 우울을, 행복을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분의 비보 이후로도, 자식이 있는 가장들이 주로 그런 선택을 했다는 비보를 연달아 들은 탓에, 신랑에게 우울감이 끼지는 않는지 수시로 더 살피는 연유가 되었다.





요새 자주 듣는 이야기가, 퇴사하고 진짜 괜찮냐는 질문이다. 아직 답을 하기엔 고작 3개월 쉰 거고, 아직 퇴직금빨이 있어서 괜찮은 상태라, 사실 나의 답은 너무 쉽게 Yes다. 하지만, 그 이면에 진짜 괜찮은 건 따로 있다.


각종 강박에서 자유로워지고 있다는 거다. 행동이 많이 굼뜨고, 걸음이 많이 느린 내가, 세상의 속도에 맞춰 뛰느라 힘들었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남들 일할 때 일해야 한다는, 남들 결혼할 때 결혼해야 한다는, 남들 집 살 때 집을 사야 한다는, 남들 승진할 때 승진해야 한다는 묘한 경쟁심이 부추겨온 뜀박질에 왜 뛰는지도 모르고 뒤처지지 않겠다고 일단 뛰고 봤다.


모두가 뛸 때 천천히 걷는 사람이 신랑이었다. 막판 스퍼트인 양 다 같이 맹렬한 속도로 달리는데, 마치 신랑이 있는 화면만 슬로모션인 것처럼. 아니 마치 정지화면처럼. 여유가 있는 신랑의 삶이 매력적이라 그에게 반했을 거면서, 결혼하고 내 속도를 강요했다. 내 속도가 나도 버거우면서도, 집 없이 시작한 우리가 집을 가지려면, 그래서 벼락거지를 면하려면 더 뛰어야 한다고.


그런 강박에서 자유로워지니 실로 가볍다.

원래 제 속도로 살아온 신랑을 내 속도로 강요하지 않으니 싸울 일도 없다.


간혹 멈춰갈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친구들의 연락에, 놀고 있는 자로써 이리 오라고 손짓하는 게 좀 염치없지만, 혹시 가벼운 감기라 생각하고 애써 참아버리는 건 아닌가 싶어 걱정이 될 때가 많다. 놀아도 된다는 시원시원한 답도 무책임하고, 더 일하라는 채찍질도 어쩐지 가혹하여 애매모호하게 둘러대며 나쁘지 않다고 하는데, 이게 또 그들에게는 환상을 심어 주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든다.


근데 진짜 괜찮다는 이야기는 해주고 싶다. 여행이나 가야 좀 융숭한 대접을 하는 우리에게 인생여행에도 좀 융숭한 쉼을 주면 어떨까 싶은데, 이건 또 노는 자의 입장에서 무책임하게 들릴까 싶기도 해서.


To K언니, 그리고 Y동생.

 

요새 답을 찾느라 책에 파묻혀 살고 있다는, 그리고 마음이 어지러워 템플스테이를 간다는 소식에, 마음 한편 걱정이 되었어.

잠시 책을 덮고, 잠시 눈을 감고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충분히 갖기를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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