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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상우 Aug 16. 2018

정보의 전쟁터에서 살아남는 육아

두 아이가 학교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나의 주부 생활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나 같은 초보 주부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살림 정보를 구하는 것이었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집과 사무실만 오가던 사람이 갑자기 살림하려니까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그나마 검색 엔진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모르는 게 있으면 일단 초록창에 검색해보았다. 오이는 냉장고에 두면 통상 며칠 가나? 달걀은 며칠 가나? 고기는 녹였다 다시 얼려도 되나? 고기용 도마, 채소용 도마, 생선용 도마 다 따로 써야 하나? 아이들 옷에 묻은 매직펜 자국은 어떻게 지우나? 행주 소독은 어떻게 하나? 등등 말이다.


정보를 검색하면서 살림 관련 블로그를 운영하는 대한민국 여성분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요리 레시피를 전통 버전에서부터 초보자를 위한 간편 버전까지 정리한 글들이 많았고, 특히 아이들이 좋아하는 반찬 요리를 소개해주는 고마운 분들이 정말 많았다.


한 가지 함정은 대부분의 블로그가 당연하게도 한국을 기준으로 요리법을 소개하기 때문에 제네바에 재료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나처럼 한국 식료품점이 없는 타국에서 생활하면서 요리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들을 찾아야 했다. 프랑스나 영국처럼 한국 사람이 많은 곳에 사는 사람들의 블로그보다는 포르투갈이나 독일 같은 곳에 사는 한국인의 블로그가 상당히 유용했다.


이처럼 네이버를 통하여 요리와 집안 살림과 관련된 주된 정보를 얻었지만, 정작 제네바에서 생활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찾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당장 급한 정보는 내가 사는 동네에서 식료품을 살 수 있는 곳을 찾는 것이었다. 마침 우리 집 근처에 쇼핑센터가 있어서 초반에는 주로 그곳에서 장을 봤다. 채소, 과일, 고기 등 기본적인 먹거리와 집안 용품들을 주로 샀는데, 스위스답게 모든 것이 매우 비쌌다. ‘역시 스위스군. 뭐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내가 간 곳이 스위스 마트 중에서도 가장 비싼 마노르였다. 우리로 치면 백화점 식품관 같은 곳에서 장을 본 것이었다. 어쩐지 마트가 엄청나게 고급스러워 보인다고 생각했었다. 한마디로 초보 주부가 살림을 거덜 내고 있었다.


스위스 학교는 수요일에 오전 수업만 하기 때문에 통상 수요일 오후에는 학교나 학원에서 운영하는 여러 가지 방과 후 활동을 한다. 우리 애들은 대표부 직원이 소개해준 축구교실에 다녔고, 이어서 한글학교에 갔다. 덕분에 수요일 오후는 정말 바빴다. 학교에서 애들을 픽업해서 집에 돌아오자 마자 미리 준비한 점심을 먹이고, 축구복으로 갈아 입힌 뒤 집에서 1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축구교실에 데리고 갔다. 축구교실이 진행되는 한 시간 반 동안 같은 축구교실에 아들을 보내는 부인들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었다.


보통 새로운 근무지에서의 필요한 생활 정보는 부인들 간 네트워크를 통하여 자연스럽게 전파된다. 그러나 나는 애당초 제네바 대표부 부인들 네트워크에 끼지 못했다. 그나마 자연스럽게 부인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수요일 오후 애들 방과 후 활동(축구교실) 때와 한글학교에 데려다 줄 때, 그리고 일요일 제네바 한인교회에 갈 때였다. 일주일간 궁금했던 것들을 메모해서 갖고 있다가 이때 다 물어보곤 했다.


한편, 우연히 나랑 비슷한 처지에 있는 한국 남성 두 분을 한인교회에서 만나게 되었다. 이 분들은 7~8년전에 부인들이 각각 제네바 소재 국제기구와 NGO에 취직하게 되자, 본인들은 한국의 안정적인 직장을 뒤로 하고 제네바에서 주부로서의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의 정기 모임을 가졌는데, 주로 평일 점심 때 만나서 아이들 학교 픽업시간에 맞춰서 헤어졌다. 모임 이름은 제백회 - 제네바 백수회. 제백회의 이 회장님은 주부 경력이 가장 오래되었으며, 정말 요리를 잘하셨다. 정기 모임을 이 회장님 댁에서 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그날은 몸이 호강하는 날이었다. 육개장, 콩 비지, 양념치킨, 냉 콩국수 하여간 한국에서 먹던 웬만한 요리를 다 하셨고, 한국에서 먹는 것 보다 더 맛있었다.  이회장님은 전혀 귀찮아 하지 않으면서 나의 각종 요리에 대한 질문에 초보 남자 주부 눈높이에 맞춰서 친절하게 답변해 주셨다. 


무엇보다도 제백회 모임 덕분에 심적으로 많은 의지가 되었다. 스위스에 와서 갑자기 주부가 되어버리니까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었다. 아내가 퇴근할 때까지 하루 종일 어른과 한마디 대화도 못 나눌 때가 많았다. 특히, 남자 주부로서 느끼는 여러 가지 스트레스를 어디에 하소연할 수도 없는데, 제백회를 통해 동병상련을 할 수 있는 분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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