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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상우 Aug 09. 2018

한 푼이라도 아껴야 산다

세계적으로 물가가 비싸기로 소문난 스위스에서 알뜰하게 살림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주부가 된 이상 최대한 한 푼이라도 아껴서 살림하기 위해 노력했다. 먼저 체계적으로 수입과 지출 내역을 정리하기 위해 가계부 작성을 시도해 보았는데, 한 달도 못 가서 포기하였다. 갑자기 주부로 변신하면서 새로 배워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니었는데, 가계부 정리까지 하려니 현실적으로 무리였다.


그리고 정착 초기에는 아무래도 큰 지출이 많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정착을 다 한 후 고정적인 월평균 수입과 지출을 파악할 수 있을 때 더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합리화하면서 가계부 정리를 중단했다. 그 대신 생활 속에서 절약하는 방법을 열심히 찾았다.


주부 초창기에는 그날의 떨이 상품이 거의 반값 할인까지 들어가는 마트 영업시간 끝나기 두어 시간 전을 자주 찾았다. 얼마 동안은 떨이 상품을 사는 데 재미를 붙여서 저녁에 장을 보러 다녔는데, 문제는 그날 들어온 신선한 식료품은 대부분 다 팔리고 없다는 점이었다. 알뜰하게 사는 것도 좋지만, 식구들에게 떨이 상품만 먹이면서 사는 것은 좀 아닌 것 같았다. 떨이 상품 집중 공략 전략은 이내 포기하였다.


결국, 오전에 장을 보는 대신 포인트 적립카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전략을 세웠다. 유럽에도 한국처럼 마트마다 포인트 카드가 있는데, 마트별로 혜택이 달라서 각각 장단점이 있었다. 일단 가장 편리한 포인트 카드는 프랑스 까르푸였다. 일정 수준 이상으로 포인트가 쌓이면 결제할 때 바로 현금처럼 쓸 수 있었다.


그런데 현금화 가능한 포인트 기준이 높다는 것이 단점이었다. 반면 스위스의 대표적인 대형 마트 미그로(Migros) 적립카드는 한 달에 한 번씩 적립된 포인트에 따라 특정 품목을 구입할 때 쓸 수 있는 할인 쿠폰과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현금 상품권을 우편으로 보내줬다. 가장 고급 마트인 마노르(Manor)는 적립카드 대신 부활절, 여름방학, 크리스마스 등 정기세일 기간 중 최대 50~70%까지 대폭 할인했다. 평상시 필요한 물품을 눈여겨보고 있다가 세일 기간에 사곤 했다.


스위스 마트는 영수증만 있으면 제품에 특별한 하자가 없어도 별문제 없이 상품을 교환해줬다. 그래서 늘 영수증을 챙겨두었다. 이 중 가구, 전자제품과 같이 꽤 가격이 나가는 물건의 영수증은 별도로 ‘주요 영수증 파일’을 만들어서 모아두었고, 나머지 영수증들은 영수증 보관함을 마련해서 보관했다. 그리하여 장을 보고 오면 그날의 영수증은 자동으로 영수증 보관함에 들어갔다. 이렇게 모은 영수증은 나중에 스위스를 떠날 때까지 보관하였다.

한번은 대표부 직원 부인을 통하여 우리 동네 동사무소에서 마노르 상품권을 사면 액면가의 10% 할인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200프랑짜리 상품권을 할인받아서 180프랑에 살 수 있는 것이다. 고급 마트인 만큼 가기가 무척 망설여지던 마트였는데, 동사무소에서 상품권을 정말 팔까 하는 마음으로 반신반의하면서 동사무소에 갔다.


동사무소 직원이 “200프랑, 500프랑, 1,000프랑 중 어떤 것을 원하세요”라고 물어왔다. 믿을 수 없었다. 200프랑짜리를 180프랑에 사니 마치 20프랑을 번 기분이었다. 왜 동네 주민이라고 특별히 우대하면서 이런 밑지는 장사를 할까 싶었던 의문은 금세 풀렸다. 상품권이 있으니까 평소 잘 안 가는 값비싼 마노르 마트에 가게 되었고, 상품권의 특성상 일종의 매몰 비용으로 생각하게 되어서 현금이나 신용카드보다 더 헤프게 쓰는 경향이 있었다. 결국, 마노르 상품권은 세일 기간 또는 마노르에서 꼭 필요한 물건을 사야 하는 경우가 생겼을 때만 예외적으로 샀다.


마노르가 고급 마트이긴 하지만 푸드 코트는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음식 대기 시간도 짧았다. 게다가 조그마한 야외 놀이터까지 있었다. 우리 아이들이 즐겨 먹었던 피자는 한 판에 우리나라 돈으로 만5천 원, 스파게티는 만 원 정도로, 스위스 식당에서 앉아서 먹을 수 있는 음식 중에는 가장 저렴한 음식이었다. 피자와 스파게티를 주문하면 나하고 두 아이가 충분히 먹고도 남을 양이었기에 외식하기 좋은 장소였다.


스위스에서는 아마존(인터넷 쇼핑몰)도 스위스 물가로 판매하기 때문에 가격이 너무 비싸서 엄두를 못 냈다. 그런데 미그로-에콜 불어 강좌를 들으러 다니면서 알게 된 동료 주부로부터 기가 막한 생활 정보를 얻었다. 프랑스 아마존에서 물건을 주문하고, 우리 집에서 가까운 프랑스 디본느(Divonne) 우체국 사서함을 이용해서 물건을 받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사서함 사용료도 아마존에서 부담해서 추가 부담이 없었다. 그래서 불어책을 살 때는 스위스 아마존이 아닌 프랑스 아마존을 계속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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