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상우 Aug 23. 2018

우리 입장 바꿔 생각해보자

주부의 마음은 주부만이 알 수 있다고 하는데, 내가 주부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이 말의 뜻을 알게 되었다. 세상에는 크게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 사회생활하는 사람과 집안일을 하는 사람. 이 두 부류의 인간이 공존하면서 만들어가는 게 세상인데, 집안일을 하는 사람은 너무나 부당한 평가와 형편없는 대우를 받고 있다. 나는 제1세계(사회생활하는 인간의 세계)에서 제2세계(주부의 세계)로 전입하면서 이에 대해 뼈저리게 느꼈고, 지난날을 진심으로 반성하게 되었다.


제네바에 오기 전에 주부가 되면 막연하게 사무실 출근도 안 하고 자유인으로서 여유 있게 생활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였는데, 주부 첫날부터 이게 얼마나 같잖은 생각이었는지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서서히 주부로서의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하게 되면서, 아내의 행동이 하나부터 열까지 맘에 안 들기 시작했다. 누구는 왕년에 사회생활한 적이 없나. 더욱이 나도 똑같이 외교부에 다녔던 만큼, 종일 무슨 일 하는지 뻔히 아는 데도 집에 돌아와서 무슨 엄청난 일을 하고 온 마냥 피곤해하는 것이 영 못마땅했다. 


특히, 퇴근 후 집에까지 일을 싸 와서 밤에 일할 때는 진짜 서운했다. 온종일 아내 퇴근하는 것만 바라보면서 버텼는데, 집에 와서까지 일을 하다니. 이에 더하여 퇴근 후에도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전화와 카카오톡 알림까지. 가장 참을 수 없던 것은 휴가 중에도 수시로 사무실에서 연락이 오는 것이었다.


물론 이성적으로 생각하자면 이 모든 것은 아내의 잘못이 아니라 근무시간 후 개인의 사적인 공간과 시간을 존중하지 않는 우리의 후진적인 회사 문화 때문인 것을 알지만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회사에서는 똑 부러진 사람이라는 평판을 듣고 있는 아내가 집안일과 관련해서는 완전히 고문관이 따로 없었다. 퇴근길에 뭘 사서 와 달라는 부탁을 까먹는 건 예사이고, 잊지 않고 용케 뭘 사 오면 꼭 엉뚱하거나 필요 없는 것만 골라서 사 왔다.


처음에는 나랏일 하시는 바깥양반이 집안일에 신경 쓰지 않게 하는 것이 집사람의 도리라고 생각해서 아무런 내색하지 않고 속으로 꾹 참았다. 그러나 무작정 속으로 삭이려고만 하다 보니까 이러다가 화병에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나둘씩 아내에게 지적하기 시작했다. 왜 빨래는 아무 데나 놓고 다니느냐, 물건을 쓰면 제자리에 왜 안 갖다놓느냐 등 잔소리를 하기 시작하니까 끝이 없었다.


물론, 아내를 이해하기 위하여 최대한 노력하였다. 사실 아내가 갑자기 나를 골탕먹이려고 일부러 집안일을 사보타주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아내나 나나 집안일에는 젬병이었다. 아이가 생긴 이후에도 맞벌이할 때는 집안일을 돌봐주시는 분이 있었고, 아내가 휴직 중일 때도 육아만 직접 하고, 살림은 장모님께 많이 의지했기 때문에 둘 다 살림에서는 무능력자나 다름없었다.


그런데도, 집안일에 대한 아내의 무신경과 무성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사정없이 지적하면서 잔소리를 퍼부으면 아내는 대체로 반성 모드로 들어가 바로 잘못을 인정하곤 했다. “일부러 그런 거 절대로 아니야. 당신 힘들게 해서 정말 미안해.”라고 이야기하고 바로 그다음 날 또 침대 서랍을 안 닫아 내 하루가 침대 서랍에 치이면서 시작되었다.


사실 아내에게 바가지를 긁으면 그 순간만 시원할 뿐이고, 일상생활은 별로 나아지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제백회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제백회 회장님은 이러한 현상은 남녀의 역할이 갑자기 바뀌는 초창기에 모두 겪는 것이고, 이때 아내를 너무 닦달하면 아내의 건강을 해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하셨다. 제백회 모임을 하면서 나의 고민을 공유할 수 있으니 확실히 정서적으로 빠르게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나와 아내가 ‘집사람’과 ‘바깥사람’이라는 각자의 새로운 정체성에 익숙해지면서, 주부 변신 초창기에 가졌던 세상을 향한 이유 없는 분노가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원래 아내 못지않게 털털하고 집안일이라고는 전구 갈아 끼우는 것조차 못하던 나였지만, 점차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변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주부가 나의 적성에 맞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무리 집안일이 힘들어도 애들을 위한 것으로 생각하면 어느새 힘이 솟았다. 내가 만든 밥을 아내와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면 가장 기뻤고, 여러 고생스러운 일을 하면서도 행복감이 컸다. 그런데 내가 주부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해갈수록 나의 외교부 동료를 비롯한 남성 직원들에게는 공공의 적(?)으로 낙인찍히기 시작했다. 남성 직원들이 아내에게 내가 불순한 사상을 전파하니까 나를 가까이하지 말라는 지령을 내렸다는 첩보(?)까지 들려왔다.


아내도 점점 바깥사람으로 변해 갔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빠삭하지만, 주방에 뭐가 어디에 있는지, 냉장고에 뭐가 있는지는 전혀 몰랐다. 주말에 나를 도와준다고 주방에 들어오면 주방을 완전히 엉망으로 만들곤 했다.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애들에게는 평상시 함께 하는 시간이 적어서 미안한 감정 때문인지 너무 관대해져서 내가 실컷 만든 규율을 다 흩트리곤 했다.


한편 주부 생활이 길어질수록 내가 직장 생활했던 때를 반성하는 횟수도 늘어갔다. 무슨 대단한 일이 일어난 것도 아니었는데, 퇴근한 이후까지도 직원들에게 일을 시키면서 무수히 많은 이들의 가정을 괴롭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으며 진심으로 반성하였다. 한편으로는 사회 구조적으로 저평가 받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 주부의 현실에 대해서도 분개하게 되었다.


이전 09화 정보의 전쟁터에서 살아남는 육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