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펜슬 스커트 May 18. 2021

딸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것들

엄마가 알려주지 않은 삶의 지혜

엄마에게 하나 아쉬운 것이 있다면, 엄마가 여성으로서 우리보다 인생의 선배였음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별로 가르쳐주지 않은 것이다.

여성으로서 많은 실패와 좌절이 있었을 것이고 또 성취도 맛보았을 것이다.

어떤 것들은 스스로 부족하다고도 느꼈을 것이다.


엄마가 앞으로 본인이 살아왔던 삶의 궤적과 비슷한 루르로 살아가게 될 가능성이 큰 딸들을 위해서 진지한 조언을 자주 해줬더라면 얼마나 큰 위안이 되었을까 종종 생각해본다.

그것이 꼭 커다란 미래의 꿈이나 거창한 인생의 지표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저 작은 습관이나 행동에 대한 것들이었을지라도 내 삶에 깊이 스며들어 부지불식간에 나의 행동과 생각들을 달리 만드는 데 도움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엄마가 당신은 너무 고생스러운 인생을 살아왔으니, 딸들이 당신이 살아온 삶의 트랙과 다른 인생을 살기를 원했으면 어땠을까..


그래서 내게 딸이 있다면 해주고 싶은 이야기, 엄마에게 들었으면 좋았을 만한 이야기들을 골라보았다.

어쩌면 이 글은 내가 가지 못한 인생의 길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한 글이 될 수도 있겠다.


1. 항상 깨끗하게 하고 주변 정리를 잘 하는 것이 좋다.


나는 어려서는 좀 잘 안 씻는 아이였다.

엄마가 딱히 크게 잔소리를 안했기 때문에 위생이나 청결에 크게 신경 안 쓰고 살았던 것 같다.

지금은 내 몸 하나 깨끗하게 하는 것은 잘 하는 편이지만 주변 정리가 서툴다.


딸에게는 어려서부터 본인의 몸을 깨끗하게 하고 주변을 잘 정리하는 습관을 가지게 해주고 싶다.


요즘 나오는 TV예능 "신박한 정리" 의 신예라를 보면 정리정돈하는 습관은 가풍이었을 것 같고 오랜 삶의 습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요리나 주방관련 유투브, 블로그를 보면서도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깔끔하게 주방을 정리하고 요리를 하는 것도 엄마로 부터 배운것 아닐까..하는 생각.

내 딸이 살아가면서 오랫동안 스며나오는 자연스러운 인생의 습관들이 좀더 긍정적인 모습일 수 있도록 어린시절부터 함께 그런 긍정습관을 가르쳐주고 싶다.


2. 속옷은 깔맞춤해서 입어라.


나는 깔맞춤 속옷이 존재한다는 것을 대학교 엠티를 가서 처음으로 알았다.

후배들과 함께 샤워를 같이 하는데 어떤 후배가 뽀얀 아이보리 컬러에 앙증맞은 리본이 달려있는 위아래 세트로 된 속옷을 가지고 온 것이다.

솔직히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집에 있는 거 닥치는 대로 주워입었었기 때문에 나름 그때 신선한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엄마는 특히 딸들의 속옷에 무신경했다.

그냥 시장에서 되는대로 골라서 사다 주셨는데, 속옷도 상하의를 깔맞춤해서 입는다는 생각은 아예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작은것이라도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법이다.

나는 세트 속옷의 세계를 모른채로 20년을 살았던 것이다.


속옷 얘기를 하는 것은, 여성의 은밀하고 드러나지 않는 부분들의 단편적인 상징이라고 생각해서이다.

여자를 관리하는 기본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폼클렌저로 얼굴을 씻고 로션을 바른 다음에는 꼭 선블록을 써야 한다든지, 보풀이 폈거나 실밥이 튀어나온 옷은 꼭 정리하고 입어야 한다든지, 이런 작지만 유용하고 몸에 배면 습관처럼 별것 아닌 일들.

나는 그런 작은 것들에 신경쓰는 것을 배우지 못했고, 그래서 디테일이 약한 편이다.

살림살이도 똑떨어지게 깔끔하게 하고 여성으로서 몸가짐을 관리하는 손길도 어딘지 모르게 조심스럽고 섬세한 친구들을 보면 '엄마가 저런 사람이셨나보다'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다고 엄마를 탓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아무래도 내가 가지지 못한 다른 사람의 장점이 좀더 크게 부각되어 그런것 같다.

여튼 내게 딸이 있다면 작은 관리의 디테일을 섬세하게 가르쳐주고 싶다.


3. 끝났다고해서 끝난 게 아니다. (삶은 계속된다.)

고3때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만 입학하면 인생의 모든 난관이 다 해결되는줄 알았다.

대학교 졸업반이었을 땐 대학만 졸업하고 취직을 하면 모든 인생의 고민이 끝나는 줄 알았다.

결혼하면 죽을 때까지 행복할 줄만 알았고, 애만 낳으면 저절로 다 크는 걸로 착각했다.


사람이 태어나고 나이를 들어감에 따라 어떤 특정 연령에 이르렀을 때 맞닥드리게 되는 삶의 숙제들이 있다.

이 숙제를 어떤 방식이든 어렵사리 해결을 했다고 해서 인생이 완성형에 이르지 않는다는 것을, 그 숙제를 해결하고 있는 동안에는 깨닫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숙제를 해결하는 데 온 정신을 집중하고 전력질주를 해서 숙제를 완성한 다음에도 그저 '나는 나'이지 어떠한 것도 마무리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멘붕이 온다.

산의 봉우리에 올라서면 모든 광경이 펼쳐지고 이걸로 등산이 끝나는 줄 알았기에 사력을 다해 올라봤더니 바로 앞에 더 큰 산봉우리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 형국이라고 할지.


그런데 대체로 부모들은 이 고비만 넘기면 되는 것처럼 아이들을 훈육한다.

특히 공부에 있어서 그런것 같다.

'어느 대학만 가면,' '어느 과만 가면' ..

세상에 그런 일은 없다. 그 대학, 그 과를 가더라도, '그 대학교 다니시는군요.'가 되는것이지 그 순간이 이후의 삶을 절대 결정해주지 않는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부모에게 심한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내게 딸이 있다면 나는 꼭 알려주고 싶다.

"지금은 이게 니 인생에서 제일 큰 일이겠지만 지나고 보면 기나긴 인생의 점같은 것이기도 해. 노력하고 열심히 해보되 지치지 말았으면 좋겠다. "


4. 남자를 잘 만나라.


엄마는 왜 아빠를 만나서 평생 후회하고 살았으면서 딸들에게는 어떤 남자를 만나라는 지침을 내려주지 않았을까? 내게 딸이 있다면 나는 꼭 남자 만나기에 대한 조언을 해주고 싶다.

처음으로 연애를 시작할 때 우리는 반대의 성에 대해서 거의 지식이 전무한 상태이다. 그리고 내가 앞으로 만나서 연애를 하고자 하는 상대의 진짜 모습은 거의 모르는 채로 연애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알랭드보통의 책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 보면 사랑을 시작했다가 관계가 발전하거나 혹은 파국으로 치닿는 매커니즘에 대해서 잘 설명하고 있다. 사랑에 실패하는 주요 요인중 하나가 '상대에 대한 정보부족'이라는 것이다. 사랑의 승률이 극히 낮은 이유는 데이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에 대한 정보를 획득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항상 이길 것이 보장된 게임을 시작할 정보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래도 가급적 최대한 이길 가능성이 1%라도 높은 연애 게임에 베팅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엄마가 연애 경험이 많았을지 적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우리보다는 남자를 좀더 만나봤을 것이고 그런 엄마의 경험에 미루어보아 어떤 행동이나 태도를 가진 남자가 좋은 남자일 가능성이 크다는 작은 팁들은 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나는 정말 천만다행으로 착한 남자와 결혼을 했다. 그러나 결혼전 거쳐간 나의 연애는 많이 힘들었다. 데이트 폭력에 시달리기도 했고 유부남임을 속인 남자와 연애를 하기도 했다. 힘겨운 연애를 돌아보면 항상 문제가 있었던 남자들은 어떤 가벼운 혹은 반복되는 문제의 징후들을 보였는데, 사랑의 감정에 푹 빠져 눈멀어버린 나는 그것들을 보지 못했다.


엄마가 평생 살면서 돈때문에 힘들어했으니 딸들에게는 돈 많은 남자를 만나라고 조언을 해줄 수도 있었을것이다. 그러나 엄마는 신기하게도 어떤 남자를 만나라고는 한번도 말하지 않았다. 딸들을 믿어서 그랬던 것일까..? 아니면 결혼 상대는 정해진 운명이 있다고 생각하셨던 것일까..


내게 만약 딸이 있다면 나는 이 아이가 성장해가는 시기별로 반복적으로 나쁜 남자를 걸러내는 방법과 좋은 남자를 알아차리는 안목에 대해서 가르쳐주고 싶다. 그러려면 남자를 좀 관찰할 수 있어야 하는데, 덥썩 사랑에 빠지기 전에 그를 탐색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마음을 조심스럽게, 신중하게 여는 성격부터 길러줘야 겠다.


5. 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는 없다. '너'의 본질을 살아라.


나는 여전히 오늘도 나의 내면을 강하게 벼리기 위해서 노력한다. 글쓰기도 마음근육을 기르기 위한 트레이닝의 일부이다. 나는 딸부잣집 셋째로 태어나 물질적, 정신적 결핍에 시달리면서 성장해왔다.

이러한 결핍이 내게 준 긍정적인 면은 욕심이 많고 무엇이든 열심히 하려는 태도를 길러준 것이다. 반면 어두운 측면은 언제나 늘 사랑받기를 갈구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에게 잘 보이고 싶어 노력하고 남들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며 자랐다. 사랑받지 못할 때는 심하게 좌절했다.


학창 시절 성적은 나름 상위권을 유지했는데,  진짜 공부를 잘하고 싶었다기 보다는 잘한 성적표를 받고 싶었다. 엄마를 기쁘게 해주고싶었기 떄문이다. 선생님들께 칭찬받고 싶어서 수업시간에 집중하였고, 모범생이 되었다. 친구들과 놀때는 친구들이 뭘 하자거나 먹자고 제안했을 때 거절하면 상처받고 나랑 안 놀아줄까봐 나는 '응~다 좋아.' 라고 답하는 쿨해보이는 무취향의 인간이 되었다. 연애하면서는 나에게 관심이 식어버린 남자의 마음을 얻고자 내 소중한 시간과 열정을 낭비하기도 했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이 나를 사랑하도록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고달팠다. 많은 마음의 상처는 그러한 나의 기대로부터 기인했다고 본다. 내가 다른 사람을 바라보기 전에 나의 내면을 먼저 들여다봤더라면 상처의 순간들은 덜했을 것이다.


사랑받고 싶은 기질은 우리집에서 태어나 자라오면서 지속적으로 길러진 것이었기 때문에 뿌리는 단단하고 깊었다. 내가 사랑과 인정을 갈구했던 사람들로부터 수없이 많은 내쳐짐을 당하면서도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마음을 얻기위해 도전하고 깨지던 시기가 있었다. 정도는 덜하겠지만 나는 여전히 그렇게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나의 성격은 소심하게 변하고 생각의 그릇은 작아진것 같다.


마흔이 훌쩍 넘은 지금, 모두에게는 사랑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비로소 받아들였다.

내가 이런 것을 좀더 일찍 엄마로부터 배웠더라면 나는 어린시절 개구지고 탐구심과 호기심이 강하고 뭐든 물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열린 마음을 가진 아이의 모습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나는 오랫동안 모두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나를 부정해왔다. 그저 내가 듣고싶었던 말은 "괜찮아"였다. 지금의 너로 충분히 괜찮다는 말, 실패해도 괜찮다는 말..


내게 딸이 있다면 자주자주 괜찮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너라서 괜찮고, 니가 하는 일이라서 괜찮다고. 다른 사람과 눈높이를 맞추기 전에 너의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하고싶은 것이 무엇인지, 되고싶은 것이 무엇인지..혹은 아무것도 안되어도 괜찮다고. 니가 그저 너로서 내 딸이기 때문에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전 10화 총 일곱 명의 아이를 키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